김소현·채종협의 해동된 첫사랑, 과연 우연일까('우연일까')
[엔터미디어=정덕현] "와, 얘 뻔뻔한 거 봐. 우리 버스에서 처음 만난 날. 내가 너 챙겨서 내리고 교문까지 부축도 해주고 너는 아프니까 내가 독박도 써줬잖아." 술에 취한 이홍주(김소현)는 10년만에 만난 강후영(채종협)에게 학창시절 처음 그들이 만났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건 일종의 기억의 조작이다. 사실 버스에서 처음 만났을 때 챙겨서 내려준 건 강후영이었고 교문 앞에서 이홍주가 다리를 다친 강후영을 부축하는 척 했던 건 지각에 늦은 핑계거리를 찾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홍주가 벌을 받은 건 독박을 써준 게 아니라 그냥 그 사실이 들통나서였고.
tvN 월화드라마 '우연일까'가 꺼내놓은 건 첫사랑의 기억이다. 그 첫만남부터 이홍주가 제멋대로 기억하는 것처럼, 첫사랑이란 기억해내는 이에 의해 마음대로 채색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더 아련해보이고 이뤄지지 않았다면(대부분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더더욱 애틋해 보인다. 시간의 흐름은 그 아련함과 애틋함을 더해 기억을 조작시키기도 한다. 이홍주가 강후영과의 첫만남을 그렇게 조작해 기억하는 건 과연 우연일까.
이홍주는 강후영에 대해 당시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것처럼 말한다. 심지어 과거의 강후영과 현재의 강후영이 너무나 다르다고 생각한다. "너 강후영 아니지? 걔는 이렇게 안웃어. 표정 없고 의리 없고 인간미도 없는 머리만 좋은 미취학 아동 같은 강후영. 그쪽이랑 좀 다르지 않아?" 실제로 당시 절친인 김혜지(김다솜)가 강후영을 좋아해 대신 편지를 전해주기도 했던 이홍주였다. 그런데 진짜 강후영에 대한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걸까.
반면 강후영은 10년 전 이미 이홍주에 대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우연히 소개팅 자리에서 이홍주를 만나고 또 버스정류장에 앉아 있는 그를 보게 되고 떡볶이를 먹는 그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게 됐다. 일 때문에 오랜만에 귀국한 것이지만, 그 우연한 만남은 강후영에게 첫사랑의 기억을 소환하게 했다. 10년 전 계속 눈길이 갔던 이홍주에 대한 첫사랑의 기억을.
'우연일까'는 이처럼 10년 전을 달리 기억하고 있는 이홍주와 강후영의 재회로 시작한다. 강후영은 다시 본 그 순간부터 이미 과거의 시간대로 돌아가 이홍주에 대한 마음을 드러내지만, 이홍주는 애써 부정하는 느낌이다. 사랑 따위는 시간 낭비, 돈 낭비, 에너지 낭비라 생각하게 된 그의 이러한 부정은 진실일까. 갑자기 떠나버린 강후영에 대해 정말 당시 아무런 감정도 없었던 걸까. 어쩌면 거꾸로 그때 뒤늦게 남은 감정들이 이홍주를 사랑에 대한 회의주의자로 만든 건 아닐까.
그래서 이홍주와 강후영은 '첫사랑'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드러낸다. 이홍주는 학창시절 자신이 읽고 있던 '나의 아방가르드한 그이'에서 밑줄을 그어 놓은 문장, '첫사랑이 특별한 건 생에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야.'라는 말을 꺼내 첫사랑이 '냉동식품'이라고 말한다. "첫사랑이 특별한 건 생에 단 한 번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첫사랑이 뭐다? 냉동식품이다. 꽁꽁 얼려야 돼. 그럼 처음 그때처럼 풋풋하게 오래가. 근데 그걸 꺼내서 녹여 버린다? 아니야. 절대, 절대 녹이면 안돼."
그런데 술에 취해 굳이 '첫사랑'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를 꺼내 놓는 건 누구 때문일까. 그날 다시 만나게 된 '나의 아방가르드한 그이'의 작가 방준호(윤지온) 때문일까. 한때 이홍주가 1호팬이었던 작가였고 또 사랑했던 사이였던 그 때문일까. 아니면 다시 불쑥 자기 앞에 나타난 강후영 때문일까.
이홍주는 그 '냉동식품' 같은 첫사랑을 녹이면 "첫사랑의 유통기한은 끝난다"고 말한다. "다시는 처음의 감정으로 기억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강후영 넌 절대 첫사랑 만나지 마." 그렇게 선을 긋는다. 하지만 강후영에게 이홍주가 건넨 냉동만두에 써진 '해동 후 다시 냉동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구처럼 그의 마음은 이미 녹기 시작하고 있다. "어쩌지? 내 건 이미 녹기 시작했나 봐."
과연 녹아버린 강후영의 첫사랑은 이홍주의 말처럼 유통기한이 끝나버린 채 끝날 것인가. 아니면 첫사랑은 단 한 번뿐이라 특별하다는 그 문구와 달리 또다시 소환된 첫사랑이 현재진행형으로 바뀔 것인가. 또 방준호는 그에게도 첫사랑이었던 이홍주를 다시 만나 그 사랑을 이어갈 수 있을까. 과거의 사랑들이 현재로 다시 소환된다. 그리고 그 사랑들이 그저 지나치는 우연이 아닌 계속 이어지는 운명이 될 수 있는가를 묻는다. '우연일까'가 꺼내놓은 첫사랑 소환 서사가 주는 설렘이다.
정덕현 칼럼니스트 thekian1@entermedia.co.kr
[사진=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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