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제약 해외 성적표] 중국에서 선전한 한미약품, 틈새 소아 시장서 성공

허지윤 기자 2024. 7. 23.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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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매출 기록 경신하며 한미약품 실적 이끌어
경쟁자 적고 수요 큰 어린이 의약품 공략
북경한미의 2023년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보다 13.41% 늘어 약 3977억원, 순이익은 전년보다 10.12% 증가한 787억원을 기록했다./북경한미

기업들의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가운데 한미약품의 중국 자회사 북경한미약품유한공사(북경한미)가 실적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북경한미는 한미약품이 지난 1996년 중국 시장 진출을 위해 베이징 자죽약업과 합작해 설립한 계열사다. 한미약품 지분이 73.7%, 자죽약업유한공사 지분이 26.3%다.

23일 대신증권은 한미약품의 2분기 실적 전망에 대해 연결 기준 매출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12.5% 증가한 3856억원, 영업이익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74.8% 늘어 579억원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이 회사의 고지혈증 치료제 로수젯과 자회사 북경한미가 실적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북경한미의 실적은 성장세다. 올해 1분기 매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15.5% 늘어 약 1277억원, 순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21.1% 증가한 약 33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는 설립 이래 최대 실적을 냈다. 북경한미의 2023년 연결 기준 매출액은 전년보다 13.41% 늘어 약 3977억원, 순이익은 전년보다 10.12% 증가한 787억원을 기록했다.

현재 북경한미는 중국 내 어린이 의약품 브랜드 1위다. 기침가래약 ‘이탄징’과 어린이 장기능 개선제 ‘마미아이’, 소화제 ‘나얼핑’을 비롯한 20여 제품을 판매 중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중국만 가면 맥을 못 추는데, 한미약품은 어떻게 중국 시장에서 성공했을까. 제약업계는 한미약품이 중국에서 경쟁자가 적은 틈새 시장을 잘 찾아 현지에 맞는 마케팅을 펼친 결과라고 분석했다.

◇중국 유행 잦은 폐렴·독감 치료제가 실적 견인

북경한미의 실적 성장세는 1995년 국내 제약업체 중 가장 먼저 중국에 진출한 GC녹십자그룹이 수익성 악화를 겪다 최근 중국 법인과 자회사를 현지 제약사에 매각한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선 공략한 의약품과 마케팅·현지화 전략이 두 회사의 중국 사업 희비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왔다.

녹십자는 중국 자회사 GC차이나를 통해 희소질환 환자에게 쓰는 혈액제제를 앞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했다. 반면 북경한미는 중국에서 틈새시장으로 여겨지는 어린이 의약품 시장을 노렸다. 이와 함께 진해거담제나 기침가래약 같은 대중적인 의약품으로 현지화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최근 북경한미의 실적 성장을 이끄는 주요 제품은 유아용 기침가래약 ‘이탄징’, 성인용 진해거담제 ‘이안핑’이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작년 중국에서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이 퍼지면서 주력 제품인 호흡기질환 의약품 매출이 크게 증가해 2022년에 이어 최대 매출을 경신했다”고 밝혔다.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은 마이코플라스마 폐렴균에 감염돼 발생하는 급성 호흡기 감염증이다. 초기 몇 주 동안은 섭씨 38~40도 고열이 지속되고 콧물과 인후통, 가래, 잦은 기침이 나타나다가 결국 폐렴으로 번진다. 대개 1주일 정도 증상이 나타나는 감기와 달리 마이코플라스마 폐렴은 3~4주간 지속된다.

북경한미는 중국에서 꾸준히 유행이 잦고 확산세가 큰 폐렴·독감을 겨냥해 안정적인 실적 성장을 이룬 것이다. 앞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시기에도 이탄징 수요가 급증했다.

북경한미 연구센터에서 중국인 연구원들이 생물 의약품을 만드는 세포 배양기를 점검하고 있다./한미약품

◇어린이 의약품 틈새 시장 노려

북경한미의 성공은 중국 사회의 변화와 이에 따른 의약품 수요를 먼저 포착한 데서 비롯됐다. 창업자 고(故) 임성기 한미약품 회장은 한중 수교 이전인 1992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의료 시장을 분석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어린이 의약품이 없다는 점이었다. 1가구1자녀 정책으로 아이들을 ‘소황제’로 불릴 정도로 귀하게 키웠지만, 정작 아프면 어른 약을 잘라 먹이는 상황이었다. 당시 중국 어린이 의약품 시장은 중국 전체 의약품 시장에서 5%를 차지하는 틈새시장이었다. 항암제나 희소질환 치료제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데 집중해 온 대형 글로벌 제약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큰 시장은 아니었다.

바꿔 생각하면 한미약품으로선 중국 어린이 의약품 시장이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요가 크지만 막강한 경쟁력을 지닌 경쟁사들이 많지 않았던 셈이다. 북경한미는 처음에는 한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들여와 판매하다가 나중에는 현지 연구개발센터, 생산시설을 설립해 현지화하고 규모를 키워갔다.

중국에서 의약품 안전 문제가 불거지면서 중국 브랜드보다 비싼 가격임에도 외국 브랜드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 업계 관계자는 “자녀에게 아낌 없는 투자를 하는 중국인들은 어린이 의약품을 고를 때 안전성을 매우 중시한다”며 “품질이 좋은 약품은 가격이 비싸도 마다하지 않고 구매한다”고 말했다. 중국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작년 기준 중국의 0~14세 인구는 2억 2978만명이다. 한국은 작년 14세 이하 인구가 570만 5235명이다.

북경한미 공장에서 생산되는 소아용 유산균제제인 '마미아이.' 한미약품의 중국 시장 공략 첫 제품이다. /북경한미

◇생산시설, 영업·판매, R&D 모두 현지화

북경한미는 연구개발(R&D)부터 생산, 판매·마케팅을 모두 현지에서 한다. 올해 6월말 기준으로 티베트를 제외한 중국 전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업사원 652명과 연구원 181명 등 1271명이 근무 중이다. 한미약품에서 북경한미로 수출하는 비중은 1% 수준이다. 북경한미가 판매하는 약은 대부분 자체 생산한다. 작년 말 기준 북경한미 생산시설의 평균 가동 시간은 연 249일로, 한미약품의 팔탄사업장(242일)과 평택사업장(233일)보다 많다.

북경한미의 경쟁력 핵심은 70%가 의·약사인 전국 각지의 영업사원들이다. 북경한미는 일찍이 중국 내 중소 도시와 중소형 병원 영업망 구축에 집중적인 투자를 했다. ‘모바일 오피스(mobile office, 움직이는 사무실)’를 도입해 영업사원이 모바일로 매출을 실시간으로 보고하면, 북경한미의 사무실엔 10초 간격으로 중국 전역의 매출 상황이 갱신된다. 중국 현지 보육원과 탁아소에 의약품을 기증하고, 현혈 캠페인을 벌이는 등 사회공헌활동도 꾸준히 전개하며 인지도를 높여왔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히 치료제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중국 시장 수요에 맞는 의약품을 개발·공급했다”며 “현지 업체와 합작, 전략적으로 제휴해 중국 전역에 영업망을 갖춰 현지화를 이룬 게 북경한미의 성공 비결이라고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다만 최근 중국의 저출산 추세와 중국 정부의 약값 인하 정책은 지속적인 성장에 걸림돌로 꼽힌다. 이에 북경한미도 중국 출산율 하락 추세에 맞춰 ‘성인용 의약품’으로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 2022년 고혈압 치료제 ‘메이야핑(한국 제품명 아모잘탄)’이 중국 국가의약품감독관리국(NMPA) 시판허가 승인을 받고 출시된 것도 한 예다.

북경한미는 한미약품과 함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신약도 개발하고 있다. 북경한미가 개발해 한미약품과 공동 개발에 들어간 이중항체 면역·표적항암제 후보물질인 BH3120가 대표적이다. 현재 글로벌 임상시험을 하고 있다.

보통 중국 제약사의 연구개발(R&D) 투자액이 연 매출의 3~4% 수준인데 북경한미는 연 매출의 8~10%를 R&D에 투입해 왔다. 한국엔 없는 영장류 실험시설도 있다. 북경한미의 연구 인력은 베이징대, 칭화대 같은 중국 최고 수준 대학 출신이다. 임해룡 북경한미약품 총경리(대표)는 “중국 바이오 산업이 계속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R&D도 화학 신약보다 바이오 신약에 집중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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