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에 ‘무고한 죄인’은 김여사 뿐인가 [아침햇발]

이춘재 기자 2024. 7. 23. 15:2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024년 7월8일(현지시각) 미국 하와이 동포간담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춘재 | 논설위원

지난 5월19일 서울중앙지검 공정거래조사부에서 수사를 받은 한 피의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감리 용역에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전직 교수였다. 청탁 업체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서 압수수색과 함께 소환 조사를 받은 뒤였다고 한다. 검찰은 “압수수색 후 통상 절차에 따라 수사를 했다. 불행한 일이 발생해 안타깝고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족분들께 위로를 드린다”고 밝혔다. 정중하게 애도의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지만, 방점은 ‘통상 절차’에 찍혀 있는 입장문이다. 검찰이 ‘늘 하던 대로’ 수사했다고 밝힌 것은, 죽음의 원인이 검찰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한 수사팀에서 7개월 만에 무려 4명이나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면, 검찰 수사에 뭔가 문제가 있다고 의심해봐야 하지 않을까. 지난해 10월에도 같은 수사를 받던 업체의 직원 한명이 숨졌다. 엘에이치의 감리 용역을 수주하는 영업 직원이었다고 한다. 올 1월에는 엘에이치 퇴사 뒤 같은 건축사무소에서 일하던 직원 2명이 숨졌다. 회사가 엘에이치의 설계·감리 용역을 수주하려고 담합을 했는지 참고인 조사를 받은 직후였다. 담합 비리 수사는 관련자들의 자백이 수사의 성패를 가른다. 검사가 자백을 받아내려고 무리하기 쉬운 수사다.

과거에도 검찰 수사를 받던 이들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검찰의 대처 방식은 달랐다. 검사장은 물론이고 검찰총장이 직접 유감을 나타내거나, 민감한 사건은 진상조사를 지시했다. 2005년 국가정보원 도청 사건 수사 때 전직 국정원 고위 간부가 숨지자, 당시 검찰총장은 별도의 팀을 만들어 수사팀을 상대로 진상조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나중에 흐지부지되더라도 당장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누그러뜨릴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윤석열 사단이 장악한 검찰에선 이런 시늉조차 없다. 같은 수사를 받다가 무려 4명이나 죽었는데도 아무 일 없다는 듯 조용하다. 그래서 검찰에 물어봤다. 검찰 수사에 문제는 없었는지? 수사 검사 교체는 왜 안 했는지? 감찰 계획은 있는지? “현재 서울중앙지검 인권보호관이 규정과 절차에 따라 진상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당시 수사 과정, 사망 경위 등을 확인한 결과, 현재까지 강압 수사나 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다. 조사 결과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서울중앙지검 공보관)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정확한 이유는 알 도리가 없다. 윤석열 대통령도 말했듯, ‘검찰에 기소당하면 인생이 결딴나기’ 때문에 극단적 유혹에 빠지는 건 아닐까.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는 “법률적으로 숙련된 검사를 만나서 몇년 동안 재판을 받으면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자유로워지는 게 아니다. 그래서 검찰의 기소라는 게 굉장히 무서운 거다”라고 말했다. 기소는 ‘죄’를 처벌하는 게 목적일 텐데, 지금 검찰은 ‘죄인’의 인생까지 결딴내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중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더라도 회복이 안 된다.

‘대장동’ 일당 김만배와 돈거래를 했다가 검찰 수사를 받던 한 언론인이 지난달 말 야산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는 1년여 전 돈거래 사실이 드러나 30년 가까이 기자로서 쌓아온 사회적 자본을 한순간에 잃었다. 그 여파에서 가까스로 벗어나 일상을 겨우 되찾은 지난 4월 검찰은 1년3개월 동안 묵혀둔 이 사건을 다시 꺼냈다. 돈거래 대가로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유리한(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기사를 써줬다는 황당한 혐의를 들고나왔다.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됐던 다른 언론인들은 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지인들은 그가 언론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심이 무너진 고통을 견디기 힘들어했다고 전한다.

‘열 명의 범인을 놓치는 것이 한 사람의 무고한 죄인을 만드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 지금 검찰은 10명의 억울한 사람쯤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일단 수사망에 걸려들면 당사자는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탈탈 턴다. 기간도 1년 넘게 이어지는 수사가 수두룩하다. 그동안 수사 대상자는 출국은커녕 사람도 제대로 못 만나고 통화도 맘 놓고 못 한다. 직장을 잃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다. 그런 검찰이 유독 한 사람에게는 관대하기 이를 데 없다. 최근 서울중앙지검 수사팀에 패싱당한 이원석 검찰총장은 ‘김건희 출장조사’에 대해 “법 위에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민주주의는 무너진다”고 했다. 항상 공허한 말뿐이다.

cjlee@hani.co.kr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