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할 시간도 안 주고···이스라엘군, 가자지구 ‘인도주의 구역’ 또 폭격, 최소 70명 사망
가자 인구 80%, 더 비좁은 구역으로 밀려
9개월간 누적 사망자 3만9000명 넘어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미국 방문길에 오른 가운데 이스라엘군이 피란민들이 몰려 있는 가자지구 남부 ‘인도주의 구역’을 공격, 최소 70명이 죽고 200명 이상이 다쳤다. 이스라엘군은 공격 전 ‘대피 명령’을 내렸으나 정작 피란민들이 대피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22일(현지시간)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남부 최대 도시 칸유니스 일대에 탱크를 재차 투입해 지상전을 재개하는 한편 공습을 단행했다. 칸유니스는 지난 5월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지상 작전을 시작하며 민간인들에게 대피하라고 명령했던 도시다.
알자지라 등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군 탱크는 칸유니스 동쪽 바니 수하일라 지역까지 2㎞ 이상 진군하며 도망치는 피란민들을 상대로 포격을 가했다.
이스라엘군은 이날 칸유니스와 서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알마와시 일대에 설정된 ‘인도주의 구역’의 경계를 조정한다고 밝히며 이곳 주민들에게 대피 명령을 내렸다. 알마와시 일대는 전쟁 초기부터 이스라엘군이 인도주의 구역으로 지정해 피란민들에게 안전 보장을 약속했던 지역이지만, 이곳에도 하마스 세력이 숨어들었다며 공격을 이어왔다. 최근에는 하마스 사령관을 제거하겠다며 이곳 텐트촌을 폭격, 최소 92명이 죽고 300여명이 다치는 참사가 발생하기도 했다.
이번 조치로 피란민 약 180만명이 몰려 있는 인도주의 구역의 면적은 65㎢에서 48㎢로 줄었다. 가자지구 전체 인구 230만명 가운데 80%가 비좁은 인도주의 구역에서 피란 생활을 이어왔는데, 이제 더 비좁은 지역으로 몰리게 된 것이다.
AP통신은 ‘인도주의 구역’이라는 이름과 달리 이 일대에 인도적 지원이 거의 없으며, 급조된 텐트촌은 위생시설과 의료시설이 부족한 데다 식수 오염과 넘쳐나는 쓰레기로 매우 열악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날 이스라엘군의 공격은 대피 명령을 내린 직후 이뤄져 피란민들이 안전하게 몸을 피할 시간조차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현지 와파 통신은 대피를 명령하는 전단이 공중에서 살포된 직후 폭격이 시작됐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관리들은 공격 표적이 된 지역에 약 40만명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사상자가 가운데 상당수가 여성과 어린이 등 민간인이라고 밝혔다.
피란민 아부 칼레드는 로이터통신에 “마치 종말의 날과 같았다”면서 “많은 사람들이 총격을 피해 도망치다가 도로에서 죽거나 다쳤다”고 말했다. 일부는 대피 명령을 아예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번 공격으로 가족을 잃은 아메드 사무르는 “아무도 우리에게 대피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면서 “이스라엘 군대가 피란민들이 살던 4층 건물을 무너뜨렸고, 우린 찾을 수 있는 시신들을 수습해 영안실로 옮겼다”고 말했다.
희생자 시신을 실은 구급차를 타고 칸유니스 나세르병원에 도착한 한 남성은 “아이들을 포함해 한 가족 전체가 잠을 자던 중 공격을 받아 모두 갈기갈기 찢겼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전쟁을 끝내라는 압박을 받아온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미 의회의 초청으로 방미길에 올랐다. 그러나 방미 와중에도 가자 전역에 대한 공격을 계속하면서 사상자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이날로 가자지구 누적 사망자는 3만9000명을 넘어섰다. 가자지구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3만9006명이 사망했고, 8만9818명이 부상을 입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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