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막은 蘇장교 판단력과 1천500만명 굶겨 죽인 마오의 아집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1962년 10월 소련이 쿠바에 미국을 겨냥할 중거리 탄도미사일 기지를 건설 중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기감이 고조했다.
같은 달 27일 존 F. 케네디(1917∼1963) 미국 대통령과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쇼프(1894∼1971)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전쟁을 막기 위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동안 소련 잠수함 B-59호는 대서양에서 미 항공모함 랜돌프호를 15㏏(킬로톤) 핵 어뢰로 부수려고 했다.
당시 B-59호는 탐지를 피해 깊이 잠수하는 바람에 통신 두절 상태였다. 공기정화장치 고장으로 내부 온도가 50도를 넘기고 식수가 부족해 하루 물 한 잔으로 버티는 극한 상황이었다. 미 함선이 투하하는 폭뢰로 잠수함이 계속 흔들리자 발렌틴 사비츠키 함장은 "전쟁이 난 것 같다"며 타격을 명한다.
핵 어뢰를 쏘려면 함장 외에 정치장교와 함대장의 승인이 필요했다. 정치장교는 발사에 동의했고, 바실리 아르키포프 함대장에게 3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수도 있는 핵무기 발사 여부가 달린 상황이었다.
아르키포프는 핵 어뢰를 쏘면 전면적인 핵전쟁이 벌어진다며 반대한다. 대신 해수면으로 올라가 모스크바와 통신을 재개하자고 설득한다. 그 무렵 백악관은 상황을 보고받은 뒤 잠수함이 소련으로 무사 귀환하도록 조치한다. 수십 년 후 조지워싱턴대 국가안전보장아카이브 책임자인 토머스 블랜턴은 "바실리 아르키포프라는 사람이 세상을 구했다"고 평가한다.
반면에 어리석은 판단은 비극을 초래한다. 마오쩌둥(毛澤東·1893∼1976) 주석이 이끌던 중국 공산당은 1950년대 파리, 모기, 쥐와 함께 참새를 해악으로 지목하고 박멸에 나선다. 공산당은 참새가 곡물을 먹어 치운다면서 프롤레타리아를 착취하며 기생하는 부르주아 같다는 이미지를 씌운다. 1년도 안 돼 참새 약 10억 마리가 죽었고 중국에서 참새는 멸종했다.
하지만 참새를 부검해보니 주식은 곡물이 아니라 곤충이었다. 저명한 조류학자 정쭤신(鄭作新)은 참새가 해충을 통제하는 중요한 동물이라고 경고했다. 정쩌신은 반동분자로 몰려 사상재교육과 강제노동을 선고받았다.
진실을 곧 드러났다. 참새가 사라지자 메뚜기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곡물을 먹어 치웠다. 중국은 급기야 소련에서 참새를 수입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1959∼1961년 3년에 걸친 대기근으로 1천500만∼4천400만명이 굶어 죽었다.
아일랜드의 물리학자이자 생물통계학자이며 저널리스트로도 활동하는 데이비드 로버트 그라임스는 최근 번역·출간된 '페이크와 팩트'(디플롯)에서 심사숙고와 합리적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못된 결정을 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처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일깨운다.
책은 미디어 발달이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가속한다고 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TV, 신문, 라디오보다 더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전통 미디어에 적용되는 규제와 검열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온라인에서 정보를 공유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예측 변수는 격렬한 감정이며 사람들은 진실이나 사회적 가치를 고려하지 않고 흥미 위주로 콘텐츠를 선택하게 된다고 책은 지적한다.
집단적인 분노는 카타르시스를 주지만 해결책을 찾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분노는 복합적인 인물을 영웅이나 악당으로 비트는 등 이분법을 조장하며, 사람들은 편견과 기존의 신념을 확인하는 정보를 증폭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배제하게 된다는 것이다.
2006∼2017년 뉴스 12만6천건을 분석한 학술지 '사이언스'에 2018년 소개된 연구에 의하면 사실보다는 날조와 소문이 담론을 지배하는 힘이 더 강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거짓 정보가 진실보다 "심각하게 더 멀리, 더 빨리, 더 깊이, 더 폭넓게 확산했으며 테러나 자연재해, 과학, 도시 괴담, 금융 정보를 다룬 거짓 뉴스보다 정치를 다룬 거짓 뉴스의 효과가 더 뚜렷했다"고 책은 전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러시아의 조작이 판을 쳤으며 이런 선동은 결과를 흔들기에 충분했다고 미 정보기관의 합동 보고서가 지적한 점도 비슷한 맥락에서 새겨볼 만하다.
거짓에 속지 않으려면 과학적 방법을 활용해 주장을 발전시키고 엄격하게 검증하라고 책은 조언한다. 사람이나 상황을 '좋다' 혹은 '나쁘다'로 단순화한다면 제대로 파악하는데 오히려 방해가 된다. 인상적인 주장과 매혹적인 약속에 대해 증거를 요구하고 잘못된 판단을 내린 것을 알았다면 유연하게 수정하라고 책은 덧붙인다.
"때로 잘못된 생각도 있으며 새로운 정보를 수용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감탄할 만하며, 증거를 보고도 마음의 변화를 거부하는 것이 진짜 부끄러운 일이다."
김보은 옮김. 544쪽.
sewonlee@yna.co.kr
▶제보는 카톡 okjebo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 검찰 '교제살인 의대생' 사형 구형…유족, 판사 앞 무릎 꿇어(종합) | 연합뉴스
- "불편하면 안해야"…김남길이 거절한 '참교육' 어떻길래? | 연합뉴스
- '보험금 왜 안 줘' 차로 아내 충격, 살해 시도 60대…2심서 집유 | 연합뉴스
- 8년간 외벽 타고 200만원 훔친 '서울대 장발장'…풀어준 검찰 | 연합뉴스
- '강남 7중 추돌' 운전자 혈액서 신경안정제…'약물운전' 추가 | 연합뉴스
- 도박 빠진 아들에 상습 폭행당한 어머니, 항소심서 선처 호소 | 연합뉴스
- 도로 통제 중이던 신호수, 트럭에 치여 숨져…20대 운전자 입건 | 연합뉴스
- 차 몰면서 행인들에게 비비탄 발사…20대 3명 검거 | 연합뉴스
- '굶주린 채 사망, 몸무게 20.5㎏'…아내 감금유기 남편 징역 2년 | 연합뉴스
- 박지성 "대한축구협회, 신뢰 잃은 게 사실…기꺼이 돕고 싶어"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