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몽키킹’이 될 상인가? 우두머리 원숭이는 표정이 풍부하다

김지숙 기자 2024. 7. 23.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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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댕기자의 애피랩
표정이 풍부한 히말라야원숭이 수컷 우두머리는 무리를 더 잘 이끌고 구성원을 결속시키는 힘이 강하다는 연구가 나왔다. 픽사베이

자연과 동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경이롭습니다. 한겨레 동물전문매체 애니멀피플의 댕기자가 신기한 동물 세계에 대한 ‘깨알 질문’에 대한 답을 전문가 의견과 참고 자료를 종합해 전해드립니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동물 버전 ‘댕기자의 애피랩’은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은 언제든 animalpeople@hani.co.kr로 보내주세요!(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Q. 원숭이 등 영장류들도 인간처럼 무리 내에서 복잡한 사회생활을 한다고 알고 있어요.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보면 수컷들이 우두머리가 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는데요, 단순히 힘이 센 원숭이들만 우두머리가 될 수 있는 건가요?

A. 영장류의 무리 생활은 침팬지, 오랑우탄, 고릴라 등 종에 따라 다양한 사회 구조를 지녔지만, 오늘은 최근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된 히말라야원숭이에 대해 들려드릴게요. 붉은털원숭이라고도 불리는 히말라야원숭이는 우리에게 익숙한 동물이에요. 흔히 원숭이를 떠올리면 생각나는 붉은 얼굴과 긴 꼬리, 회색 또는 갈색의 털을 지닌 몸집이 작은 원숭이죠.

아프가니스탄, 인도, 네팔에서부터 미얀마, 태국, 라오스, 중국 남부에 이르기까지 아시아에 넓게 서식하는데, 인간과는 유전자 93%가 일치해 인간을 위한 다양한 실험에도 동원되고 있어요. 광견병·천연두 백신, 후천면역결핍증(에이즈) 치료제 개발 실험에 이용됐고, 아르에이치(Rh)식 혈액형 또한 히말라야원숭이를 이용한 실험에서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1949년 미국의 로켓을 타고 최초로 우주로 간 영장류도 히말라야원숭이 ‘앨버트 2세’였어요.

히말라야원숭이 한 무리는 20~200마리로 이뤄진다. 위키피디아코먼스

푸에르토리코 카요 산티아고 섬에 서식하는 히말라야원숭이의 사회 구조를 분석한 2011년 미국 시카고대 연구를 비롯한 여러 자료를 종합하면, 히말라야원숭이는 20~200마리가 모여 한 무리를 이룹니다. 기본적으로 암컷이 중심인 모계사회를 이루고 암컷과 수컷은 별도의 계급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암컷은 평생을 어미 곁에서 지내며 무리를 떠나지 않지만, 우두머리가 되지 못하거나 지배 그룹에 들지 못한 수컷은 4~5살 무렵 무리 밖으로 쫓겨납니다. 무리 내 암컷과 수컷의 비율은 4:1 정도라고 해요.

무리에서 쫓겨나지 않고 우두머리가 된 수컷은 무리 내에서 가장 많은 짝짓기 기회를 가지면서, 식량이나 휴식 장소에 대한 우선권을 가집니다. 대신 무리가 외부로부터 위협을 받을 때는 무리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죠. 그러다 보니 수컷 우두머리는 강한 체력과 높은 공격성을 갖춰야 하지만, 동시에 무리 내의 다른 수컷들을 결속시키는 사회적 행동과 리더십을 가질 필요도 있습니다.

히말라야원숭이는 20~200마리가 모여 한 무리를 이룬다. 기본적으로 암컷이 중심인 모계사회를 이루고 암컷과 수컷은 별도의 계급을 가지고 있다. 픽사베이

최근 영국 노팅엄 트렌트대 제이미 화이트하우스 박사 등 연구진은 히말라야원숭이 수컷 우두머리의 표정이 다양할수록 무리를 더 잘 이끌며, 구성원들을 결속시키는 힘이 더 강하다는 분석 결과를 담은 논문을 17일(현지시각) 국제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 B’에 공개했습니다.

히말라야원숭이는 비명·호출 등 음성 신호뿐 아니라 그루밍(털 고르기), 복종 행동 등 신체적 행동, 이빨을 드러내기나 찡그리기 등 다양한 표정으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데요, 연구진은 이 가운데서도 우두머리의 표정이 무리 사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살펴본 것입니다.

연구진은 분석을 위해 영국 한 영장류연구센터에서 동일한 환경에서 사육되는 히말라야 원숭이 9개 무리(66마리)를 관찰했습니다. 주요 관찰 대상은 각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는 수컷 9마리와 성체 암컷 6~9마리였습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개발한 ‘안면 동작 코딩 시스템’(MaqFACS)을 활용해 수컷의 안면 근육을 17가지 표정으로 구분하고 기록했습니다. 이어 각 무리에 속한 원숭이들의 접촉을 정량화해서 얼마나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는지, 얼마나 자주 친근한 상호작용을 보이는지 등을 측정했습니다. 입술 늘어뜨리기, 코 주름 만들기, 아랫입술 내보이기 등 각 표정의 비율과 지속성, 다양성 등을 개체별로 계산해 점수를 매기고 이에 따른 무리 내 구성원들과의 관계를 평가한 것입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위해 개발한 ‘표정 인식 프로그램’(MaqFACS)을 활용해 수컷의 안면 근육 17개를 기준으로 표정을 기록했다. 제이미 화이트하우스/노팅엄 트렌트대 제공

그 결과, 다양한 표정을 짓는 수컷이 무리 내에서 더 중심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더 강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이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우두머리 수컷의 사회적 표현력이 강할수록 무리 구성원들끼리의 교류도 더 고르게 분포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연구진은 그동안 히말라야원숭이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영장류의 표정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연구해왔는데요, 지난달 과학저널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논문에서는 표정이 풍부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얻기 쉽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습니다.

연구진은 인간 또한 사회적 소통의 수단으로 얼굴 근육의 움직임을 진화시켰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번 연구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노팅엄 트렌트대 브리짓 월러 교수는 “인간은 매우 복잡한 안면 근육 구조를 가지고 있고, 놀라울 정도로 풍부한 표정을 짓는다”며 “수컷 히말라야원숭이에 대한 이번 연구는 표정이 진화 과정에서 우리에게 어떠한 이점이 되었는지 설명하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습니다.

인용 논문
Proceedings of the Royal Society B, DOI: 10.1098/rspb.2024.0984
Scientific Reports, DOI:10.1038/s41598-024-62902-6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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