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부영화에는 왜 보안관만 나오고 검사는 안 나올까?

박용현 기자 2024. 7. 23.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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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현의 ‘검찰을 묻다’ 2회
박용현의 ‘검찰을 묻다’는?

검찰공화국을 사는 요즘 시민들에게 검찰에 대한 상식은 교양필수가 됐습니다. 무겁지 않게 검찰에 대한 질문을 하나씩 던지고 독자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겠습니다. 격주 화요일 낮 12시에 새로운 글이 올라옵니다.
이원석 검찰총장은 22일 김건희 여사 ‘출장조사’와 관련해 “여러 차례에 걸쳐 법 앞에 예외도 특혜도 성역도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나 대통령 부인 조사 과정에서 이런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며 “국민들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으로 출근하는 이 총장.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김건희 여사에 대한 검찰의 굴종적인 ‘황제조사’를 보면서 ‘이런 검찰이 왜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품은 게 저만은 아닐 겁니다. 지금의 검찰은 애초부터 공정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는 제도가 아닌 것 같다는 근본적 의문이 뒤따릅니다. ‘검찰총장 패싱’은 누가 대통령과 가까우냐에 따라 조직의 무게추가 흔들리는 검찰의 비민주성·전근대성을 보여줍니다. 분노한 시민들 속에서 ‘검찰 해체’라는 요구가 들려옵니다. 대책 없는 주장 아니냐는 반론도 섞여 들려옵니다. 검찰은 필수불가결한 제도일까요? 지금의 형태가 고정불변인 제도일까요? 하나의 정답이 있는 제도일까요? 검찰 제도는 누가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요?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 연재 구독하기)

이번 이야기는 이런 근본적 질문과 관련된 것입니다. 하지만 좀 엉뚱할 수도 있는 호기심에서 출발해 보겠습니다.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는 검사가 주요 인물로 자주 등장합니다. 주인공이든, 악역이든 말이죠. 그런데 유독 서부영화에는 검사가 거의(제 경험으로는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당시에는 검사가 없었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검사는 그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서부 영화에는 보안관만 나오고 검사는 안 나올까요?

보안관은 ‘영웅’, 검사는 ‘미미한 존재’

미국의 서부 개척시대는 들소떼만 노닐던 허허벌판에 마을이 들어서고 도시로 번창하는 초단기적 문명화를 경험한 시기였습니다. 인간이 공동체를 형성하고 정치·경제·사회 제도를 만들어온 인류 역사를 아주 짧은 기간에 재연한 셈입니다. 세련되게 다듬어지기 이전의 각종 제도의 원형을 엿볼 수 있는 곳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거친 카우보이와 소도둑, 강도들이 들끓던 무법자들의 세상이었으니 법과 정의를 세우는 형사사법제도의 본질과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던 시대였습니다.

서부영화 ‘3:10 투유마’의 한 장면. 한겨레 자료사진

그 시대를 무대로 악당을 물리치고 정의를 세우는 법집행자들의 영웅담이 이른바 서부영화의 주축을 이룹니다. 그 주인공은 대부분 ‘보안관’입니다. 기본 자치정부 단위인 카운티의 치안을 담당하는 셰리프(sheriff)와 카운티에 속한 시티·타운 단위의 치안 담당자인 마셜(marshal), 연방 정부 소속의 연방 마셜(U. S. marshal) 등이 그들입니다.

영화는 대개 이들이 총격전 끝에 악당을 체포하거나 처단하는 것으로 끝납니다. 대부분의 영화에서 검사는 그림자도 비치지 않습니다. 필자가 과문한지 모르겠으나 검사가 단역으로라도 등장하는 서부영화는 여태껏 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서부 영화는 법정 드라마가 아닙니다. 활극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기소·재판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무법자와 보안관의 대결, 그것도 날것 그대로의 물리력을 통한 결판이야말로 세련된 문명화가 자리잡기 이전 서부 시대의 현실적 특질이자 그 시대를 그린 전설적 스토리의 핵심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악당을 추적하고 체포하는 과정에서 검사의 역할이 전혀 없었다는 건 의아합니다. 검사와 경찰이 서로 협조하거나 갈등하면서 사건을 해결해가는 요즘 영화의 흔한 스토리 라인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악당을 물리치는 일은 오로지 총을 든 보안관의 신성한 임무이고, 보안관만이 서부의 외롭고 거친 마을에 평화와 안정을 찾아주는 영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영화 ’오케이 목장의 결투’ 속 한 장면. EBS ’세계의 명화’ 갈무리

그렇다면 서부영화가 다루지 않는 스크린 너머의 기소와 재판 과정에서 검사의 역할은 어땠을까요?

보안관은 미국 건국 초기에 도입될 당시부터 ‘법 위반자를 체포하고 기소하는’ 직책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경찰과 검사의 역할을 겸한 것입니다. 반면 건국 초기의 검사는 역할과 권한이 미미한 존재였습니다. 법원 소속의 하급 공무원으로, 판사의 보조자 정도로 여겨졌습니다. 시민들로부터 더 많은 존중과 관심을 받는 직책은 보안관이었습니다. 단적인 예로, 1816년 뉴욕주 변호사협회가 신규 회원들을 위해 제작한 교육자료는 보안관의 역할을 자세히 다루고 그 밖에 20개 정부 직책의 업무를 소개하는 반면 검사에 대해선 한마디 언급도 하지 않았습니다. 검사는 주지사나 법무부 장관, 법원이 임명하는 자리였던 반면, 보안관은 선거로 선출되며 민주적 정당성과 독립성을 얻어갔습니다. 형사사법체계에서 가장 중요하고 숭배받는 인물은 단연 보안관이었습니다.

형사사법제도에서 일반 시민의 역할도 더 컸습니다. 보안관뿐 아니라 일반 시민도 형사재판을 요구할 수 있었고, 재판 과정에서도 피해자 쪽 변호사나 가족이 검사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는 미국 검사와 비교하면 천양지차가 느껴집니다. 현대 미국 사회에서 검사는 기소권한을 전담하며 기소 여부에 대한 막강한 재량권을 누리는 등 형사사법체계의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검사가 관할 지역의 형사사법 정책 방향을 결정하다시피 합니다. 검찰 제도가 상전벽해의 변화를 겪은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서부시대를 통해 볼 수 있듯 물리력으로 치안을 확보하는 보안관(경찰)과 재판을 통해 법적 심판을 내리는 법원이라는 두 축이 형사사법제도의 원형적 구조를 이뤘는데, 이 둘을 매개하는 검사라는 직책이 점차 제도적 위치를 확보하며 ‘수사-기소-재판’의 분리라는 현대적 체제를 갖춰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미국 뉴욕시 맨해튼 지방검찰청이 들어선 건물. 맨해튼 지방검찰청 홈페이지 갈무리.

살아 움직이는 검찰 제도, 설계자는 주권자 국민

미미한 존재였던 검사가 본격적으로 부상한 전환점은 19세기 중후반에 걸쳐 도입된 ‘검사 선출제도’였습니다. 1828년 앤드류 잭슨 대통령이 선출된 뒤 민주화 열기가 미국을 휩쓸었습니다. 투표권이 점차 확대되고 더 많은 정부 직책들을 선거로 선출하는 흐름이 형성됐습니다. 많은 주에서 시민 대표들이 모여 헌법을 개정하거나 별도의 법률을 만들어 판사·검사를 선출직으로 바꿨습니다. 서부 지역은 이 흐름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졌지만, 남북전쟁(1861~1865년)이 끝나고 20년가량이 지난 뒤에는 대부분 주에서 이같은 변화가 마무리됐습니다. 이 즈음 서부시대도 저물게 되니, 위상이 높아진 선출직 검사는 서부영화에 출연할 기회가 없었던 것입니다.

미국의 검사 선출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독특한 창조물입니다. 이 제도가 도입된 구체적 배경과 과정, 그 명암에 대해선 다음 이야기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서는 이 제도가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두가지 의미를 짚고 싶습니다.

첫째, 검찰 제도(나아가 형사사법제도 전반)는 살아 움직인다는 점입니다.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지금의 형태로 주어진 게 아닙니다. 미국은 그 극적인 사례입니다. 검찰 제도는 나라마다 역사적 경험과 시민들의 요구, 또 때로는 우연한 계기를 통해 만들어진 발명품이며, 끊임없이 그 설계도가 수정되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각 나라에서 발달한 제도가 상호작용하며 서로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의 극적인 변화는 영국에서 일어났습니다. 검찰이라는 국가기관이 따로 없던 영국은 독립된 기소 전담기관인 기소청(Crown Prosecution Service)을 1986년에야 창설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과 유사점이 있는데, 경찰(보안관)에 집중됐던 수사·기소권을 분리해 검찰이 기소권을 전담하는 방향으로 설계가 이뤄졌다는 점입니다. 영국처럼 극적인 변화는 아니더라도 다른 나라들의 검찰 제도 역시 상당한 변화를 거쳤거나 거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형사사법제도의 상징적 존재인 ‘예심판사’ 제도의 존폐를 둘러싸고 오랜 논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둘째, 검찰 제도의 설계자, 즉 검찰을 어떻게 구성하고 어떤 권한을 부여할지 결정하는 주체는 주권자인 국민이고, 검찰은 국민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 역시 당연한 말이지만, 미국 사례는 그 원형을 보여줍니다. 국민의 의지를 반영한 헌법 개정 등을 통해 검찰의 위상과 역할, 권한에 직접 변화를 주는 과정을 거쳤기 때문입니다.

특히 검사 선출제도를 채택함으로써 검찰을 국민의 직접적 통제 아래 두고자 했습니다.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검사의 권한은 시민들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기에 그 권한이 집중·강화되는 데 맞춰 시민의 통제 장치도 강화한 것입니다. 검사가 시민 위에 군림하는 폭군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주기적인 선거를 통해 심판하거나 재신임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한 것입니다. 쉽게 말해 검찰이 국민의 눈치를 보게 만든 것입니다.

미국 변호사들이 한국 대법원 앞에서 한국 법조계 인사들(앞줄 가운데 왼쪽부터 김용무 대법원장, 이인 검사총장, 김병로 사법부장)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1948년 4월30일.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일제 때 이식된 검찰 제도, 80년간 국민은 국외자였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우리의 검찰 제도는 일제 강점기에 이식된 이래 큰 틀에서 변한 게 없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근대적인 형사사법시스템이 우리 민족의 자력에 의하여 완성되기 전에 일제에 국권을 침탈당하여 법치국가의 실질에 부합하기보다는 일제의 식민지수탈 목적에 부합하는 형사사법시스템이 구축되었고 이러한 시스템을 통하여 근대적인 형사사법을 체험하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나아가 그러한 형사사법시스템 속에서 길러진 형사사법관료들을 지배하였던 의식이 독립국가를 건설한 후에도 –그리고 60년에 걸친 국가적 성장과 국민의식 수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의 형사사법의 편성과 운영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 온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김선택, 영장청구권 관련 헌법 규정 연구, 2008년)

그동안 검찰 제도에 부분적인 변화가 있었지만 이는 과거 독재권력이나 검찰 자체의 필요와 요구에 의한 것일 뿐 검찰 제도의 형성·변화에 주권자의 의지가 적극 반영된 적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국민은 철저히 국외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우리나라 검찰 제도의 역사는 한겨레 기사 ‘124년의 검찰권력, 일제가 낳고 보안법이 키웠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결과 검찰은 민주적 통제와는 거리가 먼 집단이 됐습니다. 통치자의 편리한 도구로 쓰이거나, 스스로 절대화한 권력을 아무런 견제 없이 행사하는 괴물 같은 기관이 됐습니다. 과거에는 국민 눈치를 보는 시늉이라도 했는데, 이젠 더 이상 국민의 눈치를 보지도 않는 것 같습니다.

이제 낡은 검찰 제도의 폐해가 충분히 축적됐다고 할 것입니다. ‘검찰 정권’이 들어섬으로써 그 정점을 찍고 있습니다. 일제에서 해방된 뒤 근 80년이 지났습니다. 우연스럽게도, 앞서 살펴본 것처럼 미국 건국 뒤 검찰 제도에 대대적 변화가 일기까지 걸린 기간과 엇비슷합니다. 우리도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검찰 제도에 커다란 변화를 모색할 필요성이 무르익었다고 봅니다. 기존 검찰 제도에서 개선할 점을 찾고, 우리에게 맞는 새로운 검찰 제도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때입니다. 무엇보다 검찰에 대한 주권자의 민주적 통제를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창조적 지혜를 모으는 게 절실한 때입니다. 새로운 검찰 제도의 설계자는 우리 모두입니다.

8월6일 세번째 질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박용현 논설위원 pi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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