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수가에 '사고 처리 비용' 포함…1조원 넘는 이 돈부터 활용해야"
2000년부터 환자단체를 이끌며 보건의료 분야에서 목소리를 내온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가 최근 머니투데이와 만나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에 대한 소신을 밝혔다. 그는 "의사, 특히 생명을 다루는 진료과일수록 의료 사고에 큰 부담을 느낀다"며 "형사처벌을 밀어붙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료사고 피해 보상에 대해서는 이미 의료 수가(비용)마다 '위험도'라는 명목의 비용이 책정돼 있다며 조(兆) 단위의 이 돈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기적으로 근로복지공단이 산업재해(업무상 질병·산재) 판정을 내리듯 의료사고도 정부·병원의 재원을 활용해 '제3의 기관'에서 중재·배상·처벌 등을 관할해야 한다고 내다봤다. 다음은 윤 대표와 일문일답.
-사회복지사이면서 20년 넘게 대한의사협회·보건복지부 산하 위원회에 다수 참가했다. 특히 건강보험 분야에 전문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는데 배경이 궁금하다.
▶건강보험, 국민연금,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 4대 사회보험은 사회복지학 전공자의 전문 분야다. 사회복지는 개론적으로 크게 사회 정책, 공적 구조, 사회복지 서비스로 구분되는데 사회 정책의 핵심이 바로 사회보험이다. 전통적으로 정부공공기관, 민간단체에서도 의료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사회복지사가 주요 보직을 맡고 정책을 추진해왔다.
-환자단체는 의료사고처리 특례법에 대해 반대하는 경향이 있다.
▶의사들은 누구나 의료 사고에 부담을 느낀다. 생명을 다루는 진료과일수록 의료사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형사처벌을 밀어붙이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만, 형사처벌을 하지 않으면 환자 입장에서 보상액이 준다. 이걸 보완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형사처벌이 충분한 보상과 어떤 관련이 있나.
▶민사소송만으로는 실질적인, 다시 말해 환자 피해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없다. 운전자 보험의 경우에도 핵심은 형사 합의금이다. 충분히 보상받아 처벌 불원서를 받으면 판사가 형량 결정에 인용한다. 형량을 낮추거나 아예 처벌하지 않는다. 의료사고도 마찬가지다.
-배상 금액을 늘리는 게 중요하단 뜻인가.
▶배상을 늘리면서 형사처벌을 줄이는 게 합리적이라고 본다. 우리나라는 민사소송 배상금액이 매우 작다. 51세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척추 시술(신경근 차단술)을 받다가 전신마비가 됐다. 한 달 신고 소득이 약 1100만원, 은퇴 연령 65세를 기준으로 치료비, 간병비, 예상 소득, 위자료를 합산한 금액이 총 11억원가량이었다. 2004년 소송을 걸었는데 법원 최종 판결까지 12년이 걸렸다. 의학 지식이 풍부한 의사가 오랜 시간을 들였는데 이 정도 금액밖에 받지 못한다. 더군다나 일반 시민은 민사소송만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할 것이다.
-의사의 부담이 커질 수 있다.
▶의료수가는 3가지로 구성된다. 업무량(인건비), 진료비용(의사 외 간호사 의료기사 등 인건비. 장비 감가상각비, 재료비, 부동산 비용 등 포함), 그리고 위험도다. 위험도는 의료사고 배상을 위해 들어간 항목이다. 회사가 산재보험을 내듯 의료사고에 쓰라고 책정된 돈이다. 어떤 의료 행위든 일정 비율로 사고 날 수밖에 없으니 위험도를 의료 수가에 넣어둔 것이다. 이 돈을 써야 한다.
-규모가 작지는 않나.
▶위험도 수가는 의료수가 중 평균 1.2% 정도다. 의료 행위 위험이 클수록 이 비중도 커져서 외과 수술은 4%대로 높아진다. 우리나라 상급종합병원은 이 돈을 안 쓴다. 회계 공시로 볼 때 의료사고 배상액이 매출의 0.1~0.2% 수준에 불과하다. 대학병원은 고난도 수술이 많아 위험도 수가 비중이 1.2%보단 높을 텐데 실제 배상에 쓰는 금액이 턱없이 낮은 것이다. 이 돈으로 전문인력 고용해 의료 분쟁 도와주고 형사합의금을 내달라고 의사가 병원에 요구해야 한다. 나아가 충분한 '보상 시스템'을 갖춘 병원을 의사가 선택해야 한다. 그래야 병원이 바뀐다.
-의료 소송이 많으면 비용 지출도 늘 텐데.
▶2014년부터 2020년까지 의료분쟁 건수가 확 늘었다가 차츰 줄고 있다.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 통계와 법원의 의료사고 감정서 접수 건수 등을 볼 때 모두 동일하게 감소한다고 나온다.
-병원이 책임지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궁극적으로 산재보험처럼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산재 청구 시 근로복지공단이 관련 절차를 책임지듯, 의료사고도 공단 같은 제3의 기관을 만들어 의료사고 피해를 분석하고 선보상하는 것이다. 중대한 의료 과실이 입증되고 형사처벌이 필요하면 공단이 추진하고 해당 의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하면 된다. 의사는소송 주체가 되지 않아 시간·경제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의료수가 중 위험도 항목에서 일정 부분을 빼 재원을 마련하면 1년에 1~2조원 정도는 어렵지 않게 채울 수 있다. 제3의 기관을 만들자는 건 대한의사협회도 동의하는 부분이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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