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기른 수염 밀고 ‘초심’ 외쳤지만…‘주가조작’에 무너진 김범수
‘문어발식 자율경영’ 폐기 약속했지만 혁신 ‘올 스톱’ 우려
(시사저널=조문희 기자)
"초심으로 돌아가 완전히 책임을 지고 변화를 이끌겠습니다."
카카오 창업자인 김범수 경영쇄신위원장이 지난해 11월7일 다시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다짐한 말이다. 글로벌 사업에 집중하겠다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지 1년7개월 만에 다시 전면에 등장한 시점이다. 당시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으로 관계자들이 줄줄이 구속되자, 위기 극복을 위해 직접 총대를 메고 책임경영에 나서겠다는 선언이었다. 김 위원장은 이날 17년간 길러온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수염을 미는 등 파격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그 후 김 위원장은 다양한 변화를 시도했다. 외부 감시 기구를 설치하고 주요 계열사 경영진을 물갈이하는가하면, 문어발식으로 확장했던 계열사를 가지치기하는 등의 쇄신경영을 추진했다. 자신의 손으로 일군 카카오의 DNA를 뜯어고치고 새롭게 거듭나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혁신의 결실을 맺기도 전에 빨간 불을 마주했다. 카카오를 창사 이래 최대 '사법 리스크'로 몰아넣은 SM엔터 시세 조종 혐의로 김 위원장이 23일 새벽 구속되면서다. 혁신을 약속한 당사자가 법정 구속되면서, 카카오는 '시계제로' 상태에 빠지게 됐다.
김범수 구속 '충격'…카카오 '플랜B'에도 의문
업계 분위기를 종합하면, 김 위원장의 법정 구속은 '예상치 못했다'는 반응이 대다수다. 대기업 총수로서 도주 가능성이 낮은데도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이례적이란 평가다. 서울남부지법은 "증거를 인멸할 염려와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 발부 사유를 밝혔다.
김 위원장 측은 "SM엔터 인수 관련 보고를 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인수 방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못했다"는 취지로 혐의를 적극 부인했으나, 구속을 피하진 못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총수로서 그룹 차원에서 벌인 시세조종을 몰랐을 리 없고 직접 지시‧승인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영장실질심사에서 수백 쪽 분량의 발표 자료와 수천 장 분량의 서면 의견서를 준비해 김 위원장의 구속 필요성을 강력히 소명했다는 후문이다.
향후 카카오는 김 위원장과 CA협의체 공동 의장을 맡고 있는 정신아 대표를 중심으로 그룹 경영을 차질 없이 이어나간다는 입장이다. 업계에서도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는 1년 넘게 이어져 온 문제이기 때문에 그룹 차원의 '플랜B'가 마련됐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다만 굵직한 의사 결정을 도맡던 창업자의 공석으로, 대규모 투자나 신사업 등 핵심 과제는 당분간 추진이 불가능할 것이란 전망도 만만찮다.
'김범수 카르텔' 후폭풍, 사법 리스크로 번져
이 같은 카카오의 위기는 '김범수식 경영'의 결과라는 질타도 쏟아진다. 김 위원장이 '흙수저' 출신이란 점은 재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한 때 단칸방에 살았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다고 한다. 이후 한게임과 카카오톡의 잇단 성공으로 재계 부호로 우뚝 선 김 위원장은 지난 2021년 친인척 14명에게 1452억원의 주식을 증여했다. 자신이 어려웠을 때 도와준 친인척에게 마음의 빚을 기 위한 행보라고 해석됐다.
동시에 이는 김 위원장이 '자리 나눠주기'라는 비판을 받게 된 배경으로 꼽힌다. 카카오 계열사 대표 자리를 학연과 지연에 의존해 '인맥 경영'을 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남궁훈·여민수·이석우·임지훈·조수용·홍은택 등 전 카카오 대표 모두 김 위원장과 친분이 깊은 사이였다. 카카오 노조는 지난해 7월 처음으로 집회를 열어 "김 위원장이 초래한 인맥 경영의 한계로 회사가 회생 불가능해졌다"고 토로했다.
카카오는 뒤늦게 '김범수 카르텔'로 꼽힌 계열사 대표들을 물갈이하고 혁신에 나섰지만, 도덕성 논란은 끊이지 않는다. 카카오페이 경영진이 상장 후 스톡옵션을 매각해 거액의 차익을 챙긴 이른바 '먹튀 논란', 카카오모빌리티의 '콜 몰아주기'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 카카오는 카카오엔터테인먼트의 드라마 제작사 고가 인수 의혹,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 관계사 임원들의 횡령·배임 등 의혹 등과 관련해서도 수사를 받고 있다.
'국민株'에서 '밉상株'로…카카오 주가도 '휘청'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당장 실적에 빨간 불이 켜졌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시장에서 내다보는 카카오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1335억 수준이지만, 실제 실적은 이를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카카오는 1분기에도 1203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5% 가량 밑돌았다. 콘텐츠와 쇼핑 등 자회사 실적 부진에 타격을 입었다는 평가다.
카카오의 '돌파구'로 꼽힌 인공지능(AI) 신사업에도 먹구름이 꼈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상반기 선보일 예정이던 카카오의 한국어 특화 초거대 AI 모델인 '코GPT'는 1년 넘게 공개가 미뤄지고 있다. 카카오는 지난달 AI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연내 AI 서비스를 공개하겠다고 밝혔지만, 시장의 전망은 밝지 않은 상태다.
주가도 고꾸라졌다. 코스피에서 22일 카카오의 종가는 4만1050원으로, 올해만 25%가량 하락했다. 한 때 '국민주'로 평가받으며 최고가 17만3000원을 기록했던 때와 비교하면 80%가량 폭락한 가격이다. 김 위원장의 구속 이후 개장한 23일에는 오전 10시 현재 2.92% 내린 3만9850원을 가리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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