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SF 소설은… 듀나 전후로 나뉜다”

장상민 기자 2024. 7. 23.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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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 과학소설(SF)의 대가 곽재식 작가가 연단에 올라 "한국 SF는 듀나 이전과 이후, 즉 BD(Before Djuna)와 AD(After Djuna)로 나뉜다"며 "듀나를 과학소설 동호회(과소동) 시절부터 열렬히 좋아해 놓고 다른 사람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괜히 부끄러워 프랑스 SF를 들먹거린 적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한다"고 말하자 청중 사이에서는 공감의 탄성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듀나의 소설을 처음 봤을 때 '이런 소설이 SF라면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며 "듀나만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한국 SF 중 유일하게 원로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라며 고마움과 존경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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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활동 30주년 기념 포럼
팬·연구자등 100명모여 ‘추앙’
얼굴없는 작가… 메신저로 질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다)의 표지 이미지. 하이텔 통신부터 활동했던 작가라는 것을 드러내는 컴퓨터 속에 듀나를 상징하는 토끼가 함께 그려졌다.

대중적 과학소설(SF)의 대가 곽재식 작가가 연단에 올라 “한국 SF는 듀나 이전과 이후, 즉 BD(Before Djuna)와 AD(After Djuna)로 나뉜다”며 “듀나를 과학소설 동호회(과소동) 시절부터 열렬히 좋아해 놓고 다른 사람이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고 물으면 괜히 부끄러워 프랑스 SF를 들먹거린 적 있다는 사실을 이제야 고백한다”고 말하자 청중 사이에서는 공감의 탄성과 함께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올해 데뷔 20주년을 맞은 김보영 작가가 “나우누리를 써서 하이텔의 듀나를 늦게 알았다”고 20년 만에 회한의 고백을 내놓자 청중은 다시 한번 웃음바다가 됐다. 그는 “듀나의 소설을 처음 봤을 때 ‘이런 소설이 SF라면 나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며 “듀나만이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한국 SF 중 유일하게 원로라고 말할 수 있는 작가”라며 고마움과 존경을 드러냈다.

문단에서 추앙받는 작가들이 간증 같은 자신들의 추앙을 고백하며 마치 부흥회를 방불케 하는 이곳은 한국 SF의 입지전적 작가 듀나의 데뷔 30주년 기념 포럼 ‘시간을 거슬러 온 듀나’ 현장이다.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대학에서 지난 21일 진행된 행사에는 듀나의 팬, 동료·후배 작가, 연구자 등 약 100명의 참가자가 함께 모였다.

하이텔 통신 과소동 1세대 창작 멤버로 1994년에 활동을 시작한 듀나는 당시 활동했던 작가 중 드물게 데뷔 30주년을 맞이한 지금까지도 활발한 집필을 이어가고 있다. 단독 저자 소설만 20권에 이르고 수십 권의 앤솔러지에 참여, 작법과 영화 리뷰 등 다양한 책을 출간했다. 데뷔 후 단 한 번도 공개 석상에 나타난 적이 없어 나이와 성별 등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심지어 한 명이 아닌 집단이라는 소문까지 도는 ‘얼굴 없는 작가’다. 이번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듀나 없는 듀나 축제’가 된 포럼 현장에는 듀나를 상징하는 토끼 인형만이 함께했다.

포럼이라는 이름답게 평론가, 연구자들의 발표도 이어졌다. 박선영 서던캘리포니아대(USC) 교수는 “보통의 작가가 등단 30주년을 맞으면 그에 대한 평가는 하나의 이론으로 굳어져 의미가 없어진다”고 말했다.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흥미로운 듀나의 작품 세계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SF 장르를 주변부 문학에 국한시켜 온 한국 문학계에 대한 비판이었다. 박 교수는 듀나의 작품을 포스트모더니즘 소설의 퀴어화 경향 속에서 이해하며 장정일, 김영하의 작품과 나란히 놓았다. 또한 그의 성별은 알 수 없으나 작품의 특성은 여성 문학으로 볼 여지가 다분하다며 1990년대 들어 장르의 성격을 강하게 가지는 여성 문학의 일종으로 신경숙·은희경과 함께 분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포럼을 기획한 ‘한국 SF 비평공동체 토끼굴’ 소속 이지용 단국대 교수, 강은교 연구자 등도 듀나의 소설을 다각도에서 분석한 발표를 이어갔다.

듀나는 마침내 텔레그램으로 접속해 참가자들의 질문에 직접 응답했다. 듀나가 SF 창작 활동뿐 아니라 3000편이 넘는 영화 비평으로도 유명한 만큼 문학평론가와 영화 기자가 함께 참여해 다채로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듀나 스스로 자신에게 영향을 준 작가와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고 ‘어떤 소설이 재미있는 것인가’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내놨다. 한편 포럼의 한편에는 오직 듀나만을 위한 일일 서점 ‘깡총, 책방’이 꾸려졌다.

장상민 기자 joseph03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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