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에 아테나 여신상?… 100년·1000년 후를 상상하다
대중적 소재 재해석한 아샴
시공간 허문 ‘1000년 뒤 서울’
조각·회화 통해 낯선 감각 깨워
버려진 물건에 초점 김명중
100년뒤 배달용기 출토 등 가정
사진 150점으로 환경파괴 경고
화석이 된 피카츄의 발바닥에서 광물(자수정)이 자라나고, 서울 북한산엔 고대 그리스 여신상이 우뚝 서 있다. 이런 풍경이 펼쳐질지도 모른다. 아마, 한 1000년쯤 뒤라면 말이다. 지나치게 멀고 무용한 상상처럼 느껴진다면, 이런 장면은 어떤가. 고고학자들의 발굴 현장에서 일회용 배달 용기가 잔뜩 나오고, 박물관 ‘인류세’ 코너에서 ‘21세기 쓰레기’가 관객을 맞는다.
2024년의 우리가 결코 가 닿을 수 없는, 그러나 언젠가 도래하고, 도래할지도 모르는 미래를 ‘상상’해 보는 흥미로운 전시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세계적인 시각 예술가 다니엘 아샴이 서울의 1000년 후를 ‘상상의 고고학’으로 파고 든, 롯데뮤지엄의 ‘서울 3024-발굴된 미래’, 그리고 폴 매카트니 전속 사진가로 유명한 김명중 작가가 100년 뒤 지구를 뒤덮을 ‘쓰레기’를 주제로 선보이는 사진전 ‘22세기 유물전’이다.
◇럭셔리 브랜드 협업 1순위… 아샴이 상상한 서울의 미래, 1000년 뒤 북한산
서울 송파구 롯데뮤지엄에서 최근 개막한 ‘서울 3024-발굴된 미래’는 조각, 회화, 건축, 영화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아샴의 독창적 세계관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티파니, 디올, 포르쉐 등 해외 럭셔리 브랜드들과의 협업을 통해 탁월한 상업적 감각을 보여준 그는 이번에도 대중적인 소재를 작품으로 가져와 재해석하는 재능을 마음껏 발휘했다.
전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번 개인전은 1000년 뒤 서울을 ‘상상’한다. 대표적인 작품은 서울의 지하를 ‘발굴 현장’처럼 꾸린 설치물이다. 그곳에선 지금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카메라, 컴퓨터 등이 ‘고대 유물’처럼 발견된다.
아샴이 이번 전시를 위해 특별히 제작한 두 점의 그림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헬멧을 쓴 아테나 여신’과 ‘3024년 북한산에서 발견된 신격화된 로마 조각상’은 이색적이다. 끝없이 펼쳐진 산수(山水)와 거대한 동굴, 도시와 문명의 흔적은 찾을 수 없는 적막한 분위기는 우리가 익히 아는 그 ‘북한산’이 아니다. 게다가 로마 조각상까지? 한국 관람객들은 이것이 꽤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으나, 사실 이러한 ‘낯선 감각’이야말로 이번 전시를 관통하는 핵심이자 작가가 의도한 바 일지 모른다. 생각해 보라. 1000년 뒤 서울은 여전히 서울일까. 1000년 뒤 어쩌면 북한산은 평평한 대지 위에 내려앉아 있을 수도. 기묘한 그림 앞에서 마주하는 이질감. 시간, 역사, 공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총 9개 섹션으로 나뉜 전시는 250여 점의 작품을 소개한다. 전시장 곳곳에서는 바람이 스친 듯한 풍광이 연출되는데, 이는 어린 시절 허리케인으로 폐허가 된 마이애미를 목격한 작가의 기억이 투영된 것이다. 또, 프랑스 루브르박물관 소장품을 재해석한 고대 조각상 ‘밀로의 비너스’, 대중문화 아이콘인 포켓몬을 통한 시간 여행인 ‘미래 유물’ 시리즈 등은 아샴이 천착해 온 시간의 영원성,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가 반영돼 있다. 여기에,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고대와 현대의 우상을 반반씩 나란히 배치한 ‘분절된 아이돌’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전시는 “매 순간이 미래”라고 말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를 오롯이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10월 13일까지.
◇100년 뒤 고고학 발굴 현장을 다녀오다… ‘쓰레기’ 가득한 박물관?
서울 강북구 북서울꿈의숲 아트센터 드림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22세기 유물전’은 그동안 폴 매카트니와 비욘세, 조니 뎁, 방탄소년단 등 세계적인 스타들의 촬영을 도맡아 온 사진작가 김명중의 개인전이다. 주로 유명인의 얼굴을 찍던 그의 카메라가 이번에 향한 곳은 버려진 페트병, 아동용 실내화, 컵라면 용기, 빨대, 가스 버너 등. 즉, 언젠가 버려지게 될 지금 우리 일상 속 모든 것, 바로 ‘쓰레기’다.
작가는 작품들을 주로 8×10인치 대형 폴라로이드 필름을 사용해 찍었다. 아날로그 방식으로 촬영된 ‘쓰레기 사진’들은 모두 검은색 테두리의 액자에 담겼는데, 이는 일종의 애도다. 버려진 것, 지나간 시절, 끝나버린 지구에 대한 은유다. 전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작품마다 ‘서울 논현동 출토 치실’ ‘부천 중동공원 출토 옷걸이’ 등의 제목이 표기돼 있다는 점이다. 100년 뒤 박물관에서 우리의 후손들이 목격할 장면을 미리 보는 듯하다. 또, 김 작가 역시 아샴처럼 미래의 유물 발굴 현장을 전시장에 설치했다. 사진 속 쓰레기들의 실물이 흙더미 속에 묻혀 있는 형상이다.
지금은 인간의 문명이 환경 파괴를 초래하는 시기, 즉 ‘인류세’라고도 불리는 때다. 전시는 21세기를 사는 우리가 결국 쓰레기라는 ‘유물’을 잔뜩 남기고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작가 역시 코로나 19를 지나며 급격하게 늘어난 일회용 배달 용기 등을 보면서 더욱 위기의식을 갖게 됐다면서 전시를 열게 된 계기를 밝혔다.
김 작가는 전시를 위해 2019년부터 쓰레기를 모았다. 150여 점 중 40여 점이 피사체로 선택됐다. 예술적 감성을 한껏 입고, ‘미래 유물’이 된 일상용품들이 나와 지구의 관계를 한 뼘 좁힌다. 애도의 시간이 머지않았음을 일러주며. 국민 배우 김혜자의 목소리가 담긴 오디오 도슨트가 준비돼 있다. 8월 11일까지.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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