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 버린 깻잎 · 썩어가는 인삼…수심 깊은 금산 농가

유영규 기자 2024. 7. 23.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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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에서 인삼과 깻잎 농사를 짓는 박 모(80) 씨도 이번 폭우로 인삼밭 5천여㎡가 물에 잠기는 피해가 났습니다.

금산군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도로·하천·소하천·소규모시설 등 공공시설 513건이 피해를 봤고, 인삼밭 193㏊와 깻잎밭 140㏊가 잠기고 주택 389곳이 침수되는 등 426억 7천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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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해 입은 깻잎 하우스

"그냥 햇볕에 말려 죽이고 있는 거예요. 손쓸 도리가 없으니까…"

지난 22일 오후 충남 금산군 제원면 박 모(72) 씨의 비닐하우스에서 가슴 높이의 잎들깨는 줄기부터 잎까지 노랗게 말라 손을 대면 힘없이 바스러졌고, 온통 흙탕물로 뒤덮여 형체조차 알아보기 어려웠습니다.

노지에 심은 깻잎 역시 군데군데 잎이 말라비틀어졌고, 겨우 살아남은 것들도 뿌리부터 썩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8∼10일 충청권을 휩쓴 기록적인 폭우로 9천여㎡ 규모 박 씨의 깻잎·가지 시설하우스와 깻잎·씀바귀·포도밭이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진흙으로 뒤덮인 비닐과 도롯가에 나뒹구는 농기계, 비료 포대들은 수마가 할퀴고 간 흔적을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2주가 지났지만 여전히 침수된 농기계를 정비하고 물에 젖은 비료며 포장 상자 등을 들어내는 등 뒷정리를 하느라 정작 농작물 수습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박 씨는 "어떻게든 남은 것들이라도 살려보려고 스프레이를 뿌려봤지만, 사람 키만큼 물이 들어차다 보니 속수무책이더라"면서 "차라리 빨리 말려서 갈아엎으려고 하는데, 날씨가 흐려 그마저 쉽지 않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수작업으로 일일이 깻잎을 뽑아야 하는데, 땅이 질어서 발이 푹푹 빠지니 흙이 마르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는 "깻잎은 상시 수확하는 작물이라 보상가를 산정하기 어렵다고 농작물 재해보험 적용도 안 된다"며 "시설하우스에 대해서만 보상을 받을 수 있는데, 그것도 단순히 비닐을 교체하는 것은 안 되고 지지대가 부러질 정도로 파손이 심해야만 가능하다고 한다"고 토로했습니다.

박 씨는 4년 전에도 용담댐 과잉 방류로 밭 전체가 물에 잠기는 피해를 봤습니다.

당시 수자원공사 용담댐지사가 2020년 8월 7∼8일 집중호우에 대비해 초당 297.63t이던 방류량을 하루 만에 2천919.45t으로 급격히 늘리면서 금산군 제원면 일대 농경지·주택을 비롯해 충북 영동·옥천, 전북 무주 일대 주택 191채와 농경지 680㏊, 축사 6동, 공장 1곳이 침수되는 피해가 났습니다.

그 이후 창고로 쓰는 컨테이너와 농막을 모두 다시 지었는데 이번에 닥친 '200년 빈도의 집중호우'로 또다시 하우스며 창고며 할 것 없이 모두 물에 잠겼습니다.

그는 "30년 넘게 농사를 지었지만 이런 폭우는 처음"이라면서 "4년 전에는 수문을 열어서, 인재 때문에 물에 잠겼다면 이번에는 논산·익산까지 몰아친 기록적인 강우에 수문을 닫지 못하면서 지천에서 역류한 물이 흘러넘쳐 피해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기후 변화로 매년 이례적인 폭우가 계속되고 있는데, 용담댐 수문 근처에 배수펌프 시설만 설치해 주면 우리가 양수기를 돌려서 알아서 대처하겠다고 수년 동안 건의했는데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울분을 토했습니다.

제방 붕괴로 피해를 본 인삼밭

인근에서 인삼과 깻잎 농사를 짓는 박 모(80) 씨도 이번 폭우로 인삼밭 5천여㎡가 물에 잠기는 피해가 났습니다.

밭 옆에 배수로가 있었지만 시간당 80㎜의 폭우에 순식간에 수위가 치솟아 소용이 없었고, 결국 제방이 무너지면서 그의 밭까지 토사와 흙탕물이 밀려들었습니다.

군인과 경찰, 자원봉사자들이 투입돼 차광막을 걷고 지주대를 뽑는 등 응급복구는 끝냈지만, 진짜 할 일은 시작도 하지 못했습니다.

땅속에서 썩어가는 인삼을 뽑아낸 뒤 흙을 퍼내 바닥을 다지고 임시로 물막이 해놓은 것을 쌓아 올려 제방 공사를 해야 하는데, 내년 봄철에 다시 인삼 씨를 뿌릴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하나라도 건져보려 외국인 계절 근로자 등 22명을 투입해 하루 동안 인삼을 캤는데, 거둔 것은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박 씨는 "5년 키워서 올해 가을이나 내년 봄쯤 출하하려고 했는데…너무 허망하다"면서 "1천500채 정도 저장창고로 옮겼는데, 팔렸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수해로 1채(750g)당 2만 5천 원까지 하던 인삼 가격이 1만 원대로 폭락했는데, 그나마 물이 묻은 인삼은 금세 썩어 들어가기 때문에 말리거나 쪄서 팔더라도 사겠다는 도매상이 없다며 울상을 지었습니다.

금산군에 따르면 이번 집중호우로 도로·하천·소하천·소규모시설 등 공공시설 513건이 피해를 봤고, 인삼밭 193㏊와 깻잎밭 140㏊가 잠기고 주택 389곳이 침수되는 등 426억 7천만 원의 재산 피해가 났습니다.

군은 정부에 특별재난지역 추가 지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박범인 금산군수는 "피해 건수가 많고 상황이 심각해 집계조차 어려울 정도인데도 충남에서는 논산, 서천만 특별재난지역에 선포돼 아쉽다"면서 "기상이변으로 인한 이번과 같은 200년 빈도의 집중호우에는 과거 30∼40년 빈도에 맞춰진 현재의 하천 시설물로는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피해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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