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MBTI가 비즈니스 영역까지 들어왔을까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 7. 23.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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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저는 ENTJ입니다. 흔히 대담한 통솔자형이라고 하는데 천성적으로 타고난 리더이며, 카리스마와 자신감으로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이끄는 타입입니다. 나폴레옹과 빌게이츠가 여기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최근에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자기소개다.

불과 몇 년 전까지 '성격이 소심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다'고 하면 'A형이라서 그렇다'라는, 혈액형으로 사람들의 성격을 판단하는 게 유행이었다. 그러나 MBTI가 어느새 우리 곁에 폭넓게 자리잡았다. 방송은 물론, 사적인 모임과 공적인 미팅에서도 빠지지 않는 주제가 되었다. 심지어는 비즈니스 영역으로도 굉장히 깊숙이 들어왔다. 또한 초면에 아이스 브레이킹이나 친근감을 표현하고자 하는 대화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지난 4월에 발간된 '2023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에 자산이 많을수록 I(내향적)나 S(감각형) 비율이 낮아지고, T(이성적), J(계획적) 성향의 비율이 높아진다고 하였다. 특히, 슈퍼리치(금융자산 100억원 이상, 총자산 300억원 이상 보유자)는 ESTJ(26.8%)가 가장 많다고 분석했다. 또한 한 유튜브 채널에서는 'MBTI 모르고 주식 하면 안 됩니다'라는 영상을 통해, MBTI에 따라 소득 수준에 유의미한 차이가 난다고 주장을 하기도 했다. 외향적 성격으로 분류되는 ENTJ, ESTJ가 평균소득이 가장 높고, 내성적 성격인 INFP, ISFP가 소득이 가장 낮다는 것이다. 한 경제매체에서는 'MBTI를 알면 성공 투자의 지름길이 보인다!' 라는 북콘서트도 열었다.

"저희는 MBTI 성격유형검사를 보고 뽑아요. ENTJ, ESFJ는 지원 불가입니다." 한 카페 알바 채용 공고문에 실린 문구다. 스타트업 온라인 채용 사이트에도 '인프피(INFP)'는 지원하지 말아 달라는 내용이 게재돼 논란이 되기도 했다. 또한 한 은행 채용면접에서는 "당신의 MBTI 유형이 무엇이고 장단점은 무엇인가", "어떤 직무를 당신이 하고 싶다면 어떤 MBTI 유형을 가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등장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지자체에서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MBTI 검사를 통해 '내 안의 나를 찾아라!'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MBTI를 활용하면 좋아지는 대인기술'이라는 제목으로 공무원 교육에는 물론, 'MBTI로 알아보는 우리 아이 공부법 컨설팅'이란 학부모 교육 강좌도 열었다. 각종 선거에서 후보자를 분석할 때나, 대학에서 취업, 진로상담에도 활용한다. 금융상품이나 여행지 추천은 물론, 심지어는 성형외과에서 성형을 할 때도 MBTI를 감안한다고 하니 그야말로 열풍이다.

이렇게 폭넓게 대중적으로 사용되면, 뭔가 과학적이거나 논리적 근거가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의외로 MBTI는 대중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지만 관련 학술 연구가 전혀 없다. 1940년대에 공개된 MBTI는 해외에서는 흥미 위주로 잠깐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지금은 한국을 제외하곤 거의 관심이 없다. 만약 MBTI 검사로 정확한 성격유형을 판단할 수 있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임상자료로도 쓰겠지만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

MBTI는 Myers-Briggs Type Indicator의 약자로, 캐서린 브릭스와 이사벨 마이어스 모녀가 만든 성격유형 테스트다. 칼 구스타프 융의 '심리유형론'을 이론적 기반으로 만들었다고 하지만, 심리학 이론과 사회 과학적 방법론을 무시하고 비전문가가 단지 자신의 경험을 기반으로 개발했다는 점 때문에 학술적 의미는 없다는 평이다. MBTI는 자기 스스로 테스트하는 자기보고형 검사이다. 그래서 평소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과는 다르게 자신을 돋보이기 위한 '사회적 바람직성 편향'이 강화되거나 자신의 희망사항이 반영되기도 해서 결과가 왜곡되기 쉽다. 또한 MBTI는 정확성, 적절성 여부를 떠나서 사람들의 성격에 관한 검사인데, 쉽게 '기본적 귀인오류(fundamental attribution error)'에 빠지게 한다. 사람들의 행동을 설명하거나 예측할 때, 처해진 상황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그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과학적 회의주의'를 표방하는 학술지 '스켑틱'에서는 '너무 복잡한 인간, 너무 단순한 MBTI'라는 칼럼을 통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MBTI 검사의 설문 문항이 지나치게 단순해 A이거나 B라는 이분법을 활용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이 가장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감각과 직관을 상반되는 특성으로 보지만 절대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학술연구에서는 더 이상 연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될 때 사용하는 '케이스 클로즈드(case closed)'로 표현했다.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이며 행동경제학자인 캐스 선스타인도 한 달 간격을 두고 MBTI 검사를 다시 하면 처음과 같게 나올 확률이 50%정도 밖에 되지 않으며, 2~3번만 반복하면 10%이하의 신뢰도를 보이기 때문에 의미 없는 검사라고 했다. 세계적 베스트셀러인 '기버(giver)'의 저자인 와튼스쿨 애덤 그랜트 교수도 "MBTI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혹평하며 "아무것도 검증되지 않았다. 실증해 보면 같은 사람이라도 결과가 계속 다르게 나오는 사례가 너무 많아 매우 부정확하다."고 강조했다. 심리학자 로버트 호건은 "대부분의 심리학자는 MBTI를 중국의 포춘 쿠키와 다름없다고 여긴다."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아무런 객관적 데이터 없이 주관적 추론을 통해 만들어졌지만, 이해관계자들이 꾸준한 영업을 통해 비즈니스로 승화시키며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4가지 타입으로 결정되는 혈액형보다 4배가 더 많아 MBTI가 훨씬 정확하다고 논리를 펴거나, '바넘효과(Barnum effect)'를 활용하여 마치 자신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

MBTI 테스트에서 주로 사용되는 표현은 다음과 같다. 첫째, '때로는, 종종, 가끔은, 어떤 때는'은 일명 '마법의 단어'다. 모든 사람들은 상황이나 기분에 따라 다른 성격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막연하고 애매하게' 표현하고 구체적인 설명이나 확정적으로 나타내지 않는다. 구체적 설명 없이 막연하게 '문제, 결정, 시련, 노력' 등의 단어를 사용하고, "~하는 편이다.", "~하는 경향이 있다."고 끝을 맺는다. 셋째, '반대의 특성을 동시에' 사용한다. "당신은 때때로 혼자 있는 것을 즐기지만, 외로움을 타기도 한다." 이렇게 반대의 특성을 동시에 나열하면 둘 중 하나에는 해당되게 된다. 마법의 단어인 '때로는', '어떤 때는' 등을 주로 함께 쓴다. 넷째, 심리적 효과를 활용한다. 문장의 내용들이 주로 긍정적이라면 본인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강해진다. 본인이 원하는 대로 믿고 싶어하는 일종의 '확증편향' 효과이다.

MBTI의 인기는 어쩌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바쁜 직장인들이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한 번에 이해할 수 있는, 빠르고 간편한 솔루션에 대한 욕구를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왠지 있어 보이고, 그럴듯하다."라는 막연한 신뢰감으로 자신의 인생에서 매우 중요한 선택과 타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건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빠르게 파악하고 편가르기를 좋아한다' 어느 외국 유학생의 한국에 대한 소감이다.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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