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인권’에 진심인 유지태… “불의 키우는 건 무관심” 영어 연설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7. 23. 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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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씨, 지난달 홍보대사 위촉
6분 동안 진심 담아 영어로 연설
北인권에 대한 국내외 관심 환기 기대
통일부 북한인권홍보대사인 영화배우 유지태씨가 22일 민주주의진흥재단(NED)가 주최한 '2024 국제대화'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NED

“여러분들에게 촉구합니다. 가장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주세요. 우리의 행동이 그들의 나라(북한)에 의해 무시돼 온 북한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상처를 치유하기를 희망합니다.”

영화배우 유지태(48)씨가 22일(현지 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통일부와 미국민주주의진흥재단(NED)이 공동 주최한 ‘2024 북한인권국제대화’에 참석해 이렇게 말했다. 유씨는 지난달 북한인권홍보대사로 위촉됐고, 지난 21일 미국 고위 관리들과 통일‧대북 정책 공조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한 김영호 통일부 장관의 출장길에 동행했다. 유씨는 “불의를 키우는 건 불의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라며 “이 세상에 정의롭지 못한 일이 있다면 눈을 감지 말고 몸을 돌리고 행동하자”고 했다. 유씨는 지난달 홍보대사에 위촉되던 자리에서도 “한국 사람이라면 북한 인권에 대해 한 번쯤은 생각해봐야 한다”며 “인권 문제를 적극 알리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노력할 것”이라 했었다.

이날 행사에는 김 장관, 줄리 터너 미 국무부 북한인권특사, 데이먼 윌슨 NED 회장 등 한국과 미국의 주요 인사들이 두루 참석했다. 김 장관은 개회사에서 “한국에 정착한 3만4000여 명의 탈북민들은 북한 인권침해 실태를 생생한 목소리로 전하고 있다”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바탕으로 북한의 군사 도발을 억제하고 북한 인권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유씨는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무대 위에 올라 약 6분 동안 영어로 축사를 했다. 왼손에 태블릿PC를 들고 준비한 원고를 또박또박 읽어나가면서도 배우답게 손짓과 눈 맞춤을 적절히 활용해가며 본인의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다.

유씨는 탈북 여성이 중국에서 겪는 시련과 강제 북송(北送) 같은 현실을 다룬 웹툰 ‘안까이’를 만화가 제피가루와 연재하며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한다. 안까이는 아내를 뜻하는 함경도 방언이다. 유씨는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인 북한 주민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며 “북한에 대한 관심, 유대감은 저를 탈북민들의 삶에 대해 구체적인 고민을 하도록 이끌었다”고 했다.

웹툰은 유씨가 탈북자들을 직접 만나 취재했을 정도로 공을 들였고, 초기 콘셉트부터 최종 대본까지 시나리오를 집필하는 데만 10년이 걸렸다. 그는 지난 2월 본지 인터뷰에서 “배우로 활동하며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감이 커졌다”며 “우리가 알아야 하는 가장 큰 인권 문제가 재중(在中) 탈북자 문제라 생각했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 어머니와 단칸방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았던 개인사와도 연관이 있다”며 “가난한 환경에 있거나, 마음의 빈곤을 느끼는 사람들이 나를 동요시킨다. 탈북자뿐 아니라 재일 교포, 난민 문제 등에 관심이 있는데 그중 탈북자가 먼저 이야기로 나온 것”이라고도 했다.

유씨는 “심각한 인권침해를 피해 북한을 탈북한 여성들은 탈북 과정에서 더 가혹한 인권침해를 당하고 오랜 기간 굶주림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다”며 “남은 평생을 가족들과 헤어지게 된다”고 했다. 이어 “북한 인권 문제는 그것이 북한에 관한 것이란 이유 때문에 특정한 색깔로 칠해지는 경우가 있다”며 “우리가 얘기하려는 것은 북한 내부의 사람들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북한 주민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포착하고 전달하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했다. 이는 북한 주민의 보편적 인권 개선을 유도하자는 북한 인권 문제가 보수·진보를 가르는 정치 문제가 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한국은 이 문제의 핵심 당사국이지만 북한인권법이 미국보다 12년, 일본보다 10년 늦은 2016년에야 국회를 통과했다. 북한 인권 실태를 조사하고 남북 인권대화, 인도적 지원 등 연구·정책을 개발하는 북한인권재단은 여야가 이사 선임을 놓고 대립하면서 8년째 출범하지 못하고 있다.

영화배우 유지태씨가 지난달 2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북한인권홍보대사 위촉식을 마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유씨는 “우리는 보이지 않는 고통에 무감각해지는 자신을 종종 발견한다”며 “불의를 키우는 것은 불의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들의 무관심이다. 이 세상에 부정의가 있다면 그곳으로 몸을 돌려서 행동하고, 여러분들이 어두운 곳으로 손을 뻗기를 촉구한다”고 했다. 6분 남짓한 짧은 연설이었지만 유씨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큰 박수가 쏟아졌다. 유씨는 23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주최 행사에도 참석해 북한 인권에 관한 연설을 할 예정이다. 대북 인권 활동가들은 유씨의 존재가 북한 인권에 대한 국내외적 관심을 환기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며 큰 기대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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