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자생식물에 日 제국주의 식물학자 이름이…국제식물학회서 이름 바꿀까

홍아름 기자 2024. 7. 23.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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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마드리드서 열린 학회, 명명법 개정 논의
흑인 인종차별 뜻 담긴 ‘카프라’ 대신 ‘아프라’
섬기린초./반크

독도와 울릉도에서만 자생하는 한반도 고유 식물인 섬기린초에는 일제 강점기의 흔적이 남아있다. 섬기린초의 학명(學名) ‘세둠 다케시멘세 나카이(Sedum takesimense Nakai)’에서 세둠은 돌나물속(屬)을 의미하며 종명(種名)인 다케시멘세는 일본이 독도를 부르는 다케시마에서 비롯됐다. 마지막 나카이는 일제 강점기에 한반도에서 연구한 일본 식물학자의 성이다. 즉 섬기린초의 학명은 ‘나카이가 발견한 돌나물속 다케시마 고유종’이란 뜻이다.

섬기린초처럼 식민주의의 흔적이 식물 이름에서 사라질 가능성이 열렸다. 지난 19일(현지 시각)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0회 국제식물학회에서는 인종차별 표현이 들어간 식물 수백 개의 학명을 바꾸고 특별 위원회를 꾸리자는 제안이 통과됐다. 누군가에 불쾌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학명 규칙이 바뀌는 건 처음이다.

국제식물학회 투표 결과에 따라 흑인을 깎아내리는 표현에서 유래한 ‘카프라(caffra)’라는 표현은 아프리카에서 유래했다는 의미의 ‘affra(아프라)’로 대체된다. 식물, 균류, 조류를 포함해 약 200종 이상의 이름이 바뀐다. 또 2026년부터 새로 명명되는 식물의 이름을 결정할 특별 위원회가 꾸려진다. 지금까지 식물 종의 이름은 발견한 과학자가 붙였지만, 앞으로 모욕적이거나 문화적으로 부적절한 이름일 경우 거부할 수 있다.

식물학자들은 이번 결정을 ‘전례 없는 명명법 개혁의 첫 단계’로 보고 있다. 케빈 티엘 서호주대 교수는 국제 학술지 ‘네이처’에 “2026년 이전에도 식물 학명에 같은 규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노예 제도를 옹호한 조지 히버트의 이름을 딴 꽃 히버티아와 같은 학명들도 변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국제식물학회 명명법 세션에 참여했던 손동찬 국립수목원 연구사는 “처음에는 인종차별주의자나 식민주의를 지지하는 사람 이름을 학명에서 빼자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번 회의에서는 특정 집단을 비하하는 표현을 쓰지 말자는 것으로 결론 지어졌다”며 “명명법은 계속 수정될 수 있는 부분이라 또 다른 문제점이 발견되든지 요구가 있다면 논의가 더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의 논의에 따라 한국 자생식물의 학명도 영향을 받을 수도 있다. 2019년 산림청 국립수목원에 따르면 섬기린초, 섬초롱꽃을 포함한 한반도 특산 식물 527종 중 327종에 일제강점기 때 식물분류학자 나카이 다케노신의 성이 들어가 있다. 나카이 다케노신은 조선총독부의 지원을 받아 한반도의 식물을 조사했다. 순수한 과학 연구보다는 식민 지배를 위한 식생 조사작업으로 추측되는 만큼 학명에서 그의 이름을 삭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앞서 국내에서도 일본 제국주의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노력이 있었지만, 전 세계가 사용하는 학명까지 바꾼 사례는 없다. 나라마다 사용하는 ‘국명(國名)’이나 학계에서 자주 쓰이는 ‘영명(英名, 영문 이름)’을 바꾸는 데 그쳤다. 식물의 학명은 국제적인 약속에 따라 한번 정해지면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국립수목원은 3·1절을 앞두고 자생식물의 일부 영명에서 ‘일본(Japan)’을 빼기도 했다.

다만 손 연구사는“학명에서 불쾌한 표현을 빼기로 합의됐지만 식물을 발표한 사람의 이름이 학명에 들어가는 건 명명규약이 생긴 이래 쭉 지켜온 약속”이라며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식물 학명을 붙인 사람이 일본 학자라 (학명을) 거부한다는 건 아직 무리가 있긴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국제식물학회에 앞서 일부 식물학자 사이에서는 논란 여지를 없애기 위해 학명에 사람의 이름을 넣는 관행을 없애자는 의견까지 나왔다.

식물학회에서 명명법 세션을 주도한 샌디 냅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은 영국 가디언지에 “식물학자들인 내린 결정은 생물 명명에 참여하는 과학계 구성원들이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며 “이번 결과는 첫걸음으로 앞으로 규칙들을 더 많이 바꿔가야 한다”고 밝혔다.

식물과 달리 동물의 이름은 아직 요지부동이다. 국제동물명명위원회(ICZN)는 “이름은 바꾸더라도 미래의 시각에 따라 또 적절치 않게 여겨질 수 있다”며 규칙 변경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일부 연구자들은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딴 딱정벌레 ‘아놉탈무스 히틀러리’의 예를 들며 규칙을 변경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참고 자료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2337-1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2365-x

Science(2024), DOI: https://doi.org/10.1126/science.z3dpt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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