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관 생도들 버스 놓친다 하니… ‘모세의 기적’이 일어났다

“우리 비행기는 곧 착륙할 예정입니다. 오늘 이 비행기 안에 해군사관학교 장교 후보생들(midshipman)이 타고 있는데요. 그런데 문제가 하나 생겼다고 하네요….”
19일 미국 댈러스주(州) 포트워스에서 워싱턴DC로 향하는 아메리칸항공 AA2752편 안. 착륙 직전인 오후 10시 50분쯤 이런 기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승무원은 “고된 훈련을 마치고 복귀하는 후보생들을 위해 큰 박수를 쳐달라”고 했다. 이어 “특별히 부탁드릴 것이 하나 있다”며 “후보생들이 오후 11시 30분까지 버스를 타야 하는데 이걸 놓치면 다음 날 아침까지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한다. 먼저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날 항공기 안의 전체 160여 개 좌석 중 절반이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었다. 사복과 정복이 뒤섞여 있었지만 하얀색 정모(正帽)를 들고 있어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한 생도는 “여름을 맞아 샌디에이고에서 훈련을 받고 아나폴리스에 있는 사관학교로 복귀하는 길”이라고 했다. 생도들에게 4년 내내 여름 훈련은 필수다. 신입생 때 기본적인 항해술을 익히는 이른바 ‘플리브(plebe·신입생) 서머’에서 시작해 다양한 진로를 탐색하기 위해 매년 여름 배에 오른다. 샌디에이고에는 항공모함이 기항할 수 있는 큰 군항을 비롯해 해군, 해안경비대, 해병대 등을 위한 다수의 미군 시설이 자리잡고 있다.
승무원은 “후보생들은 손을 들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달라”고 했다. 그리고 오후 11시쯤 비행기가 레이건 워싱턴 국립공항에 내리자 기내에서는 ‘모세의 기적’이 벌어졌다. 일반석은 물론 기내 가장 앞부분에 있던 1등석의 승객 약 10여 명도 생도들이 먼저 개인 수하물을 챙기고 비행기를 빠져나갈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날 마이크로소프트(MS)의 ‘클라우드 먹통’으로 미국 내 주요 공항 곳곳에서 항공 대란이 벌어졌고, 이 비행기도 30분 가까이 연착됐다. 아침부터 비행편이 취소돼 가까스로 워싱턴행 막차 티켓을 거머쥔 이들도 많았지만, 짜증이나 불평은 찾아볼 수 없었다. 사관 생도 한 명 한 명이 복도로 걸어나올 때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고, 이들은 부끄러운 듯 “고맙다”고 말하며 비행기를 떴다.

미국 공항과 민항기에서 군인과 참전용사는 어딜 가나 초특급 대우를 받는 ‘VIP’다. 탑승이 시작되면 “일등석·비즈니스석 손님, 장애인, 그리고 군인들이 비행기에 먼저 올라달라”는 안내 방송을 가장 먼저 듣게 된다. 우등석에 자리라도 비면 군인을 우선적으로 좌석 승급해 주고, 자사 정책에 따라 공항 라운지 무료 이용 혜택을 제공하는 항공사들도 많다. 몇 년 전엔 1등석 승객들이 군인에 경쟁적으로 자리를 양보해주는 모습이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됐다. 배려를 받은 생도들은 먼저 수하물을 찾았고, 출국장을 빠져 나와 버스 탑승 시간을 맞출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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