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탄압에도 소외된 이들 위해 노래…'배움의 밭' 일구고 떠나
'아침이슬' '상록수' 등 대표곡 남겨
소극장 상징 '학전' 30여년간 운영
김광석·황정민·설경구 등 거쳐가
유가족, 조의금·조화 받지 않기로
학전 앞마당에 일반인 추모공간 마련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
‘아침이슬’, ‘상록수’ 등으로 잘 알려진 가수이자 대학로 소극장 문화의 상징인 학전을 이끌어온 김민기 대표가 21일 밤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다.
김민기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22일 서울 종로구 학림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나 “선생님의 특별한 유언은 없었고, 대신 3~4개월 전부터 늘 하시던 말씀이 있었다”며 “남은 가족, 그리고 학전 운영을 이어가야 할 학전 식구들에게 ‘고맙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 ‘미안하다’고 이야기하셨다”고 말했다.
남들 앞에 나서지 않았던 ‘뒷 것’
고인은 ‘상록수’처럼 평생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아온 예술인이었다. 세상에 소외된 이들을 위해 노래를 만들고 불렀다. 공연 제작자로서도 미래 세대인 어린이를 위한 공연 제작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왔다. 최근 방영한 SBS 다큐멘터리 제목처럼 남들 앞에 나서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온 ‘뒷 것’이었다.
고인은 가수로 이름을 먼저 알렸다.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미술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1969년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수업과 맞지 않았던 고인은 대학 동창이자 현재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김영세와 ‘도깨비 두 마리’의 약자인 ‘도비두’라는 포크 밴드로 활동했다.
1970년부터 본격적인 가수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듬해인 1971년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늙은 군인의 노래’ 등을 수록한 1집 음반을 발표했다. 이 앨범은 발매 당시엔 ‘건전가요 서울시문화상’을 받았지만, 1972년 ‘10월 유신’과 함께 앨범 수록곡 대다수가 금지곡이 되면서 음반 또한 전량 압수됐다. 고인의 데뷔 음반이 그의 마지막 정식 음반이 된 셈이다.
정권의 탄압을 받으면서도 음악 활동을 중단하지 않았다. 고인의 관심은 늘 소외된 곳을 향했다. 생계를 위해 봉제 공장과 탄광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노래로 담아냈다. ‘상록수’는 고인이 공장에서 일하던 시절 노동자 부부들의 합동 결혼식 축가를 위해 만든 곡이었다. 1978년에는 노동자 인권의 현실을 담은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작사·작곡하기도 했다.
고인 뜻 헤아려 조의금·조화 받지 않기로
고인이 세상을 떠나며 당부한 것은 “나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지 말라”는 것이다. 고인의 장례식 또한 유가족의 뜻에 따라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 김 팀장은 “선생님은 설경구, 장현성 등이 찾아와도 ‘밥은 먹었니?’라고 먼저 말씀하실 분”이라며 “학전 폐관을 앞두고 많은 분이 십시일반 도와주신 만큼, 선생님이 가시는 길 만큼은 저희가 따뜻한 한 끼를 나눠드리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유족으로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 2남이 있다. 발인은 오는 24일 오전 8시이며, 장지로 떠나기 전 운구가 학전 앞마당을 지나갈 예정이다. 고인을 위한 일반인의 추모 공간 또한 소극장 학전 앞마당에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김 팀장은 “공식적으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혹시나 선생님을 생각하며 학전을 찾아오신 분들이 앞마당에 꽃을 놓고 가셔도 좋다”고 전했다.
장병호 (solanin@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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