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병원’ 낙인에 줄줄이 적자...지방 의료원 붕괴 위기

오경묵 기자 2024. 7. 23.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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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지시 따라 일반의료 축소
이후 방치돼 대부분 적자 경영
22일 오후 충북 청주시 서원구 청주의료원의 창구 앞 대기 의자가 대부분 비어 있다. 청주의료원을 비롯한 지방의료원들은 코로나 시기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사태 종식에 역할을 했지만, 이후 일반 환자가 돌아오지 않으면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신현종 기자

충청북도가 설립한 병상 583개 규모 종합병원인 청주의료원은 지난 한 해 150억원의 적자를 냈다. 올 들어서도 매달 10억원대 적자를 보고 있다. 자본 잠식이 이뤄져 지난해 말 충청북도 지역개발기금에서 120억원을 차입했지만 이마저 올해 동날 전망이다.

청주의료원은 코로나 사태가 터지기 전인 2019년에는 4억여 원의 흑자를 냈고, 90억원의 누적 흑자를 기록한 우량 의료 기관이었다. 하루 평균 800여 명의 외래 환자가 방문했고, 병상 가동률은 90%에 달했다. 하지만 코로나가 터지고 정부의 ‘감염병 전담 병원’ 지정이 병원의 운명을 바꿨다. 코로나 환자 집중 치료를 위해 외래 진료를 기존의 20% 수준으로 축소했고, 병동 환자의 90% 이상을 다른 병원으로 전원시키면서 직접 타격을 받았다.

2022년 6월 감염병 전담 병원 지정이 해제됐지만 병원을 떠난 일반 환자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코로나 환자만 본다’는 인식이 퍼진 게 결정적이었다. 코로나 환자 수용을 독려하던 정부에서 인센티브 지원도 끊겼다.

충남 천안의료원은 최근 임금 지급 등을 해결하기 위해 서산의료원에서 20억원을 차입하기로 했다. 병원 측은 “지금 전국의 지방 의료원들이 다 어렵다”고 했다. 서울과 부산 등지의 대형 의료원들도 지난해부터 수십억 원에서 100억원대까지 차입을 진행했다. 전국 지방 의료원 35곳은 코로나 유행 당시만 해도 ‘코로나 극복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그래픽=이진영

지자체가 설립하고 예산 등에서 통제와 지원을 받는 전국 지방 의료원 35곳은 지역 공공 의료 체계의 핵심으로 꼽힌다. 수익성을 기대하기 어려워 개원가에서 기피하는 필수 의료를 담당한다. 이런 지방 의료원들이 코로나 이후 경영난에 신음하고 있다. 코로나 환자를 떠맡느라 줄어든 일반 환자를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벌어진 것이다.

현재 청주의료원 하루 외래 환자는 코로나 이전의 75% 수준인 600명에 불과하고, 병상 가동률도 50% 선이다. 지역 의료계 관계자는 “적자가 누적되다 보니 ‘언제 폐원해도 이상하지 않다’는 분위기가 병원을 짓누르고 있다”고 했다. 한 관계자는 “지역 맘카페에는 ‘청주의료원은 코로나 환자만 보고, 거기서 진료받으면 코로나에 감염되니 가지 말라’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위기 때 제 역할을 한 지방 의료원들에 대한 파격적 대책이 없으면 ‘도미노 폐원’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2일 보건복지부와 전국보건의료노조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지방 의료원 35곳의 병상 가동률은 46.4%로 코로나 전인 2019년(80.5%)과 비교하면 반 토막 난 수준이다. 하루 평균 789명이었던 외래 환자도 613명으로 22.3% 줄었다.

외래 환자와 병상 가동률 감소는 적자로 직결됐다. 지난해 지방 의료원 35곳의 합계 적자 규모는 3156억원이다. 코로나 전인 2019년만 해도 292억원 흑자였다. 당시 적자였던 병원은 절반가량인 18개였지만, 지난해에는 한 곳을 제외하고 34곳이 적자를 봤다.

지방 의료원 관계자들은 코로나 유행 당시 정부의 ‘감염병 전담 병원’ 지정 이후 경영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요구에 맞춰 일반 환자를 다른 의료 기관으로 내보내고 일부 진료과를 축소·폐쇄하자, 진료 수입이 크게 줄어 병원 운영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환자들 사이에서는 지방 의료원 기피 현상이 생겨났다. 코로나 감염 우려에 주기적으로 진료를 받던 이들이 민간 병원으로 옮겨간 것이다. 한 지방 의료원 관계자는 “만성 질환자 대다수가 코로나 시기에 병원을 떠났다”며 “병원 입장에서는 ‘단골손님’이 떠나간 것”이라고 했다.

각 지방 의료원들은 없는 살림에 의사 인건비를 충당하느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마저도 신규 채용은 쉽지 않다. 최근 호남의 한 지방 의료원은 연봉 4억5000만원을 내걸고 심장내과 전문의를 구하려 했지만 지원자가 없었다. 경기 성남시의료원도 응급의학과 전문의 등을 모집하려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모집 공고를 냈으나 구인에 실패했다. 한 지방 의료원 관계자는 “최근 의료 사태와 겹쳐 지방 의료원들은 의사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고 했다.

상당수 지방 의료원은 폐원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을 마련하느라 애쓰고 있지만 역부족이다. 관리비를 절감하고, 각종 대금 지급도 미루고 있다. 영남 지방의 한 의료원 관계자는 “의료원 차원에서 에너지 절약 운동을 벌이는 등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있다”고 했다. 고통 분담은 직원들의 몫이다. 강원 속초의료원은 지난 3월 의사를 제외한 직원 급여 일부가 체불됐고, 4월에는 정규직 직원 기본급 40%가 밀렸다. 강원 권역 일부 의료원은 직원 월급을 삭감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서는 지역 거점 공공 병원 역할을 하는 지방 의료원을 살리기 위한 도움이 절실하다는 호소가 나온다. 당장 지방 의료원의 폐원을 막기 위한 재정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역 의사 의무 복무제 등도 검토해 국가가 공공 병원 의사 수급을 책임져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조승연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장(인천시의료원장)은 “의료 개혁 논의와 맞물려 지방 의료원 운영 체계도 기초부터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지방 의료원

지방의료원법에 따라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의료 법인. 현재 전국에 35곳이 있다. 지자체 명칭에 ‘의료원(병원)’을 붙이며, 일반 병의원은 이 이름을 쓸 수 없다. 사업 계획과 예산 등은 지자체장이 승인하며, 운영 경비는 자체 수익 외에 지자체 보조 등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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