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 대학살’ 땅에 포용·화합의 리더십… 희망의 땅 만들었다

2024년 만해평화대상 수상자 폴 카가메(67) 르완다 대통령은 30년 전 100만명이 희생된 제노사이드(인종대학살)의 비극을 겪은 조국을 아프리카의 모범국가로 탈바꿈시킨 지도자다. 1994년 4월 인구 다수를 차지하던 후투족극단주의자들이 소수 투치족과 투치 우호 세력을 무차별 학살하며 전 국민의 10% 가까이가 순식간에 사라졌던 르완다는 지금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역동적인 경제와 안정된 사회를 자랑하는 나라로 꼽힌다. 용서와 화해로 국가를 단합시키고 고속 성장의 궤도에 올려놓은 카가메의 리더십이 대변신의 커다란 동력이 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카가메의 삶은 혼돈과 갈등으로 점철됐던 조국의 역사와 맞물려 있다. 투치족 출신인 그는 생후 두 살 때 가족과 함께 우간다로 피신해 오랫동안 난민 생활을 했다. 과거 유럽 식민통치 세력의 차별 정책 등에서 비롯된 부족 갈등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었고, 후투족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신변 위협을 느낀 투치족 다수가 이웃 국가로 대피했기 때문이다.

카가메는 서른세 살이었던 1990년 우간다 등 이웃국가로 피신한 르완다인들의 무장 조직 르완다애국전선(RPF)의 사령관으로 취임해 정부군의 탄압에 맞섰다. 국제사회 개입으로 1993년 후투 극단주의 세력의 쥐베날 하비야리마나 대통령이 통치하는 르완다 정부와 RPF는 권력을 분점하는 내용의 ‘아루샤 평화협정’을 체결해 평화가 정착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듬해 4월 하비야리마나의 비행기 추락사를 계기로 제노사이드가 발발했다.
사령관 카가메의 지휘 아래 RPF는 그해 7월 4일 제노사이드를 완전히 진압했다. 20세기 후반에도 전근대적인 인종 청소가 자행된 것에 국제사회는 경악했다. 정치 혼란과 경제난의 악순환이 되풀이되는 아프리카에서 르완다의 앞날에 대한 전망은 비관 일색이었다. 부통령·국방장관을 거쳐 2000년 과도정부 대통령으로 조국을 이끌게 된 그는 르완다 사회 고유의 전통 가치와 접목시켜 제노사이드의 후유증을 치유하고 국가 발전의 동력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
이런 비전에 따라 다양한 사회 프로그램이 도입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을 단위 법정인 ‘가차차’를 활성화시켜 제노사이드 사건 심리를 전담시킨 것이다. 학살을 주도·기획한 중범죄자들을 제외한 상당수 제노사이드 연루자들의 재판을 마을 공동체에 맡겨 죄는 따져 묻되 처벌과 응징보다 사죄와 반성과 용서에 방점을 두고 사건을 종결하도록 했다. 2002~2012년 이 방식을 통해 제노사이드 사건 195만건이 처리됐다.
이 외에 제노사이드 범죄자와 지식인, 젊은이 등 사회의 각 구성원이 모여 갈등을 풀고 화합을 모색하는 합숙 캠프인 ‘잉간도’, 한 달에 한 번씩 모든 공동체 구성원들이 모여서 청소를 하고 기반 시설을 돌보는 ‘우무간다’,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애국심과 노동의 가치 등을 가르치는 교육 프로그램 ‘이토레로’, 국가적 관광자원이기도 한 고릴라의 어린 새끼 이름을 지어주는 명명식인 ‘크위타 이지나’ 등이 도입됐다. 이런 각종 프로그램은 르완다인들이 대학살의 트라우마를 떨치고, 후투족도 투치족도 아닌 ‘르완다인’으로 화합하는 동력이 됐다는 평가다.

제노사이드가 시작된 4월 7일은 르완다 최대의 국가기념일이다. 수도 키갈리에 건립된 추모기념관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퀴부카(기억하다라는 듯)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추모 행사가 열린다. 제노사이드 종식 기념일(7월 4일)까지 석 달간 르완다인들은 국가·지역사회·학교 단위로 열리는 행사를 통해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고 다짐한다. 카가메는 한·아프리카 정상회의 참석차 지난달 방한했을 때 가진 본지 인터뷰에서 “우리는 포용이라는, 훨씬 더 어렵지만 좋은 복수를 했다”고 말했다. 르완다를 찾는 각국 정상도 빠짐없이 수도 키갈리에 있는 대학살 추모 전시관을 찾는다.
경상남·북도를 합친 것과 비슷한 국토에 1400만명이 모여 사는 르완다는 여느 아프리카 나라들과 달리 자원 부국이 아니다. 이 때문에 카가메는 인재 육성에도 팔을 걷어붙였다. 그는 2014년 본지 인터뷰에서 “르완다는 이웃 나라처럼 천연가스도 광물자원도 없지만, 그 대신 ‘사람’이라는 최고의 자원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돋보이는 것은 여성 인재의 적극적인 활용이다. 카가메는 국정의 핵심 목표로 ‘양성 평등’을 제시하고 의회의 여성 비율을 최소 30%로 의무화하는 등 정책으로 실현했다. 국가여성위원회와 성차별감독원 등 정부 기관도 설치했다. 남성 위주의 권위적 통치 문화가 대세인 아프리카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카가메는 지난 3월 국제 여성의 날 행사에서 “자유를 향한 투쟁부터 국가를 재건하는 과정까지 여성은 르완다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고 했다.

카가메가 주도한 이 같은 정책은 국민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사회가 안정됐고, 국제사회의 호평 속에 개발 원조를 이끌어내면서 실질적인 경제 발전으로도 이뤄졌다. 르완다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8% 안팎으로 아프리카 최고 수준이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치안 상황 등을 평가하는 각종 지표에서도 아프리카 최상위권으로 평가받는다.
르완다는 세계 평화에도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수단·남수단·중앙아프리카공화국·아이티 등 4국에 5919명의 유엔평화유지임무단을 파견했는데 이는 전 세계에서 4위, 아프리카에서는 1위다. 고질적 정정 불안을 겪고 있는 접경국 콩고민주공화국과 부룬디 등에서 피란 온 난민 13만여 명을 보호하고 있기도 하다. 카가메는 2018년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력체인 AU 정상회의 의장으로 활동하면서 회원국 단합을 도모하고 국제적 위상과 영향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주력했다.
황폐했던 조국을 탈바꿈시킨 그의 롤모델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다. 그는 “신속한 국가 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한국을 경제 강국으로 탈바꿈시키는 과정에 비전 있는 접근 방식과 결단력을 보여준 박정희는 나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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