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된 고령 리스크… 美 노장 정치시대 바뀌나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7. 23. 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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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적정 연령 놓고 논란 커져
조 바이든 대통령. /EPA 연합뉴스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오는 11월 선거에 재출마해 ‘2기’를 노리던 조 바이든(82) 대통령은 고령(高齡)이라는 변수가 문제가 돼 출마를 접은 첫 미 대통령에 올랐다.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TV 토론 때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거나 허공을 멍하니 쳐다보는 모습이 생중계되면서 고령 논란이 본격적으로 확산해 21일 결국 후보직을 사퇴했다. 역대 최고령 대통령으로 재선에 도전했다가 혼란 가운데 물러난 바이든 사태는 ‘하한선’은 있지만 ‘상한선’은 없는 국가 지도자의 적정 연령에 관한 논쟁을 점화하고 있다.

미국 연방 헌법은 대통령 출마가 가능한 연령의 하한을 만 35세로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상한은 없다. 항공기 조종사가 65세, 연방 경찰 같은 법 집행관은 65세, 일부 주(州) 판사가 70세 등 다른 여러 직업에 연령 상한이 있는 것과 차이가 있다. 78세에 취임한 바이든은 재임 중 80대를 맞이한 최초의 대통령이었고, 바이든 이전에 70대 나이에 대통령을 지낸 사람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로널드 레이건, 도널드 트럼프 등 세 명뿐이었다. 바이든이 이미 사망한 하원 의원 이름을 행사에서 호명하고, 허공에 악수하는 등 크고 작은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건강 이상설이 제기돼 왔지만 바이든과 가족들은 부인했다. 애틀랜틱은 “예외적으로 날카로운 옥토제너리언(활동적 80대를 가리키는 표현)도 있다. 하지만 바이든은 아니었다”고 했다.

82세 바이든 대(對) 78세 트럼프의 구도가 형성됐던 이번 대선의 쟁점은 두 후보의 정책과 비전보다 ‘누가 더 온전한 인지 능력을 갖고 있는가’로 흘렀다. 이 때문에 선거에 대한 청년층의 관심이 저조하다는 평가도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TV 토론 후 “미국 사회를 바꿀 가장 큰 이슈인 AI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두 후보는 ‘내가 더 정정하다’는 증거로 골프공을 얼마나 멀리 칠 수 있는지를 둔 딱한 공방에 시간을 썼다”고 했다. 미국의 나이 든 후보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정치인이 대세를 이루는 유럽과도 대조됐다. 유럽연합(EU) 27국 지도자 중 3분의 1 이상이 40대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선 34세인 가브리엘 아탈이 총리에 오르기도 했다. 프랑스의 대통령 출마 가능 연령은 만 18세로,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동시에 얻는다. 독일·체코·필리핀 등은 한국과 같은 만 40세, 인도는 만 35세다. 모두 출마 가능 상한 연령은 없다.

미 정가에선 바이든의 퇴진이 ‘고령자 정치’의 종식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이고 있다. 지난해 공개된 이코노미스트·유거브 조사에선 미국인 응답자 1500명 중 76%가 “대통령 출마에 나이 상한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번 대선에서 공화당 경선에 출마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 주재 대사는 75세 이상 정치인에 대한 ‘정신 능력 검사’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코노미스트는 “미국 인구 3억3300만명의 평균 연령은 38.8세로 선진국 중 상대적으로 젊고 기업 총수 대부분은 50대”라며 “그럼에도 정치인들은 연령이 평균보다 훨씬 높고, 다른 선진국 정치인들과 달리 점점 더 고령화되고 있다”고 했다.

그래픽=김성규

지난 30년 동안 취임한 대통령 다섯 명 중 버락 오바마(1961년생)를 제외하면 빌 클린턴, 조지 W. 부시, 트럼프, 바이든이 모두 1940년대생이었다. 심지어 클린턴(1993년 취임)·부시(2001년)·트럼프(2017년)는 1946년생 동갑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940년대에 태어나 청년 때인 1960년대에 (베트남전 반대 등) 격렬한 학생운동을 거치며 정치화된 세대가 여전히 정치권의 대세로 남아 있다”며 “이들이 자랄 때 미국의 빠른 경제성장과 풍요로운 분위기 또한 이들이 (밥벌이가 아닌) 정치에 많이 투신할 수 있게 된 배경”이라고 전했다.

펠로시

바이든 퇴진을 계기로 미 의회도 세대교체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미 의회는 평균 연령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고 웬만한 국가의 정년(국민연금 수령 개시 시점)보다 높은 65세에 육박한다. 고령 정치인이 대명사인 미치 매코널(82)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는 오는 11월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날 계획이지만, 상원 의원 자체는 85세가 되는 임기(2027년)까지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매코널은 지난해 기자회견 도중 30초간 갑자기 ‘얼음’처럼 굳어지는 등 바이든과 비슷한 인지력 논란에 종종 오른다. 2012년 대선 후보를 지낸 밋 롬니(77) 상원 의원의 경우 “이제는 새로운 지도자들이 필요한 때”라며 지난해 사실상의 정계 은퇴를 밝혔다. 반면 1987년부터 38년째 샌프란시스코를 대표하는 하원 의원으로 재직 중인 낸시 펠로시(84) 전 연방 하원 의장은 바이든보다 두 살 많지만 올해 다시 출마해 20선에 도전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상원의원으로 31년을 재임한 다이앤 파인스타인은 90세까지 사퇴하지 않다가 의원 신분으로 지난해 9월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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