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여행 오지마”… ‘안티투어리즘’ 세계 곳곳 확산
외국인 관광객을 기피하는 ‘안티투어리즘(Antitourism)’이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인 2010년대 후반만 해도 안티투어리즘은 베네치아와 같은 유럽 일부 도시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최근엔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전체로 퍼지는 상황이다. 일본에서도 ‘숙박세’처럼 외국인 관광객에 대한 징벌적 조치가 확산되고 있다. 안티투어리즘은 수용 가능한 규모를 넘어설 정도로 많은 관광객이 도시를 점령하고 주민들의 삶을 침범하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에 대응해 나타난 현상이다.
지난 6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선 수천 명의 시위대가 도심에서 관광객들을 향해 물총을 쏘고 “관광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라”며 시위를 벌었다. 엘파이스 등 현지 매체들은 “상당수 관광객은 이를 ‘유쾌한 장난’처럼 여겼지만 일부는 시위대와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스페인 남동부 해안의 알리칸테에서도 주민들이 “관광객은 우리 동네를 존중해달라”고 쓴 팻말을 들고 도심은 물론 해변 곳곳을 돌아다니며 시위를 벌였다. “밤늦게까지 소란을 벌이고 곳곳에 쓰레기를 버리는 관광객들 때문에 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지중해의 마요르카 섬에서는 숙박업소로 바뀌는 집들이 늘어나면서 월세가 치솟고, 식당과 식료품점이 잇따라 관광객 대상으로 바뀌며 물가마저 급등하고 있다고 영국 BBC는 전했다.
올림픽 개막을 나흘 앞둔 프랑스 파리에서도 본격적인 관광객 유입과 함께 교통 체증과 시내 곳곳의 경기장 주변 통제가 시작되면서 시민들이 동요하고 있다. 파리 주요 간선도로 185㎞에 걸쳐 올림픽 관계자들과 버스·택시를 위한 전용 도로가 생기며 좁아진 길 탓에 하루종일 정체가 이어지고 있다.
경기장 주변 교통 통제 지역에 접근하려면 QR코드가 있어야 하고, 일부 지역에선 지하철·버스 승하차까지 중단되면서 파리 시민들은 노골적으로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한 올림픽 반대 단체는 “올림픽 관광객을 위해 왜 파리 시민들이 이런 희생을 해야 하느냐”는 항의 성명과 함께 시위를 예고했다.
유럽 도시들은 ‘관광세(稅)’ 인상에 나섰다. 올해 세계 최초로 당일치기 관광객에 하루 5유로(약 7500원)의 도시 입장료를 시범 도입한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는 내년부터 이를 10유로로 올리기로 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도 크루즈 기항 관광객에게 물리는 하루 7유로의 세금을 대폭 올리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일본에선 외국인 관광객의 숙박 요금에 세금을 징수하는 지방 정부가 급증하고 있다. 이달 3일 스즈키 나오미치 홋카이도 지사는 “2026년 4월부터 숙박세를 받겠다”고 했다. 현재 일본에선 도쿄도·오사카부 등 지방 정부 12곳이 숙박세를 징수하고 있으며, 홋카이도·미야기현을 비롯한 40곳 이상이 도입을 선언했다. 숙박세는 1박당 50엔~1000엔(약 440~8800원) 정도다.
일본의 숙박세는 ‘관광 공해를 일으킨 관광객에게 해결 비용을 징수한다’는 징벌적 성격이 강하다. 교토시는 숙박세로 연간 약 48억엔(약 425억원)을 걷어 주민들이 겪는 불편을 줄이는 데 쓰고 있다. 예컨대 올 6월 주요 관광지에만 정차하는 ‘관광 특급버스’를 시작한 게 대표적이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일반 버스에 몰려 주민들이 만원 버스에 시달리자 관광객을 분리하기 위해 내놓은 대책이다. 교토시는 현재 최대 1000엔인 숙박세로는 외국인 관광객을 막지 못한다고 보고 추가 인상을 추진하고 있다.
올 3월 숙박세 도입을 선언한 야마나시현의 후지요시다시(市)는 외국인의 쓰레기 투기나 무단 주차를 단속하는 데 숙박세를 쓸 방침이다. 이 도시는 후지산 사진이 가장 잘 찍히는 곳으로 알려져 올해 관광객 170만명이 방문할 것으로 예상되는 곳이다.
안티투어리즘의 배경엔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급증한 전 세계 관광객이 있다. 전 세계 관광객 수는 올 1분기에 작년 같은 기간보다 19% 늘어난 약 2억8500만명에 달했다. 팬데믹 이전인 2019년의 97% 수준을 회복한 데 이어 조만간 역대 최고치도 경신할 분위기다. 저비용항공사(LCC)의 보편화로 비용 부담이 줄어든 데다, 숙소 예약이 온라인으로 간편해졌고 소셜미디어(SNS) 덕분에 해외 도시 정보도 쉽게 얻게 되면서 해외여행의 장벽이 낮아진 것이다.
일본 경제 주간지인 다이야몬드는 “오버투어리즘은 교토나 가마쿠라 같은 일부 관광지에서 이제는 일본 전역의 문제로 확대되고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지역 주민의 태도를 바꾸기 어려운 만큼 마땅한 해결 방안을 찾기도 쉽지 않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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