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여름, 쉼표
예년보다 긴 장마. 여름이 망가져 버린 것일까요? 폭우로 다리가 통제되었고, 산사태 위험이 우려되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안내문자가 쏟아지는 와중에 황인찬 시인의 시 ‘여름 연습’을 읽습니다. 시집 ‘희지의 세계’에 수록된 이 시에 ‘망가진 여름’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고한 벌레들이 내 눈으로 자꾸 들어오려 하고 있었다/여기서 뭘 하면 좋을까 할 수 있다면 좋을까/정말 그럴까//인간으로 있는 것이 자주 겸연쩍었다//무엇인가 자꾸 눈밖으로 나오려했는데 완전히 망가진/이 여름 속에서 그랬다
폭우가 할퀸 자리엔 사방이 물웅덩이. 안희연 시인은 ‘여름 언덕에서 배운 것’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는 언덕의 기분을 살폈다/이렇게 많은 물웅덩이를 거느린 삶이라니/발이 푹푹 빠지는 여름이라니/무엇이 너를 이렇게 만든 거니
시인은 이어 털어놓습니다.
“고요 다음은 반드시 폭풍우라는 사실/여름은 모든 것을 불태우기 위해 존재하는 계절이라는 사실도/모르지 않았다
지난주 Books는 여름휴가 특집으로 준비했습니다. 안희연 시인과 황인찬 시인을 비롯해 ‘여름’을 주제로 작품을 쓴 문인들에게 여름 한가운데, 쉬어가며 읽을 수 있는 책을 추천받았습니다.
‘부서진 여름’을 쓴 소설가 이정명, 청소년 소설 ‘여름을 한 입 베어물었더니’를 쓴 이꽃님, ‘여름을 지나가다’를 쓴 소설가 조해진 등이 소설, 시집, 그림책을 권합니다. 각 문인들의 여름 작품까지 합치면 모두 열다섯 권의 휴가철 독서 리스트가 만들어진 셈입니다.
시원한 바다도 서늘한 산도 책 속에 있었네… 여름에 쉼표를 찍다
폭우 아니면 폭염. 여름은 참으로 난폭한 계절이지만, 군데군데 쉼표를 찍어가며 이 시간을 버텨내다 보면 어느새 폭우도, 폭염도 성큼 물러나 있겠지요.
한주 내내 비 예보가 있네요. 온세상이 축축하겠지만 마음만은 보송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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