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종범 기적의 5출루, 이토이 극적 스리런...한국 레전드 올스타, 일본에 석패 [홋카이도 현장]
[홋카이도(일본)=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전설은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레전드 스타들이 일본에 아쉬운 역전패를 당했다. 물론 승패보다 친선이 앞선 경기였다. 충분히 박수 받을만한 플레이를 했다.
한국은 22일 일본 홋카이도 기타히로시마에 위치한 닛폰햄 파이터스의 홈구장 에스콘필드에서 열린 '한-일 드림 플레이어즈 게임'에서 6대10으로 통한의 역전패를 당했다. 6회말 상대 이토이에게 역전 결승 스리런포를 허용하고 말았다.
이 경기는 양국 야구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최고의 레전드 스타들이 한 데 모여 벌이는 축제의 장이었다. 닛폰햄은 지난해 개장한 최신 돔구장 에스콘필드에서 양국 최고의 선수들이 겨루는 그림을 원했고, 역사적 경기가 성사됐다. 양국 레전드 스타들에 대한 존경을 담았다. 경기는 7회까지 진행됐다.
나이도 들고, 각자 여기저기서의 현업이 있다. 제대로 운동을 하지 않은 상황에 이렇게 모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일본은 자국에서 열리는 대회라 나름 신경을 써 전원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출전한 최고의 스타들로 엔트리를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은 2006년 1회, 2009년 2회 대회에 참가한 주축 선수들이 KBO리그 1군에서 코칭스태프로 활약하는 경우가 많고, 원정 이동에 대한 시간적 부담에 선수 구성이 쉽지 않았지만 김인식 감독을 비롯해 이종범, 구대성, 양준혁, 서재응, 봉중근, 김태균, 윤석민 등 많은 선수들이 기꺼이 시간을 냈다. 2군에 있지만 현역 지도자인 박경완, 손시헌, 조웅천, 박한이, 조인성 등의 헌신도 대단했다.
사실 경기 전에는 선수 구성과 전력상 일본이 크게 앞서는 상황도 예상됐다. 선수 면면 중요한데, 일본은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선수들이 많았다. 한국은 이대형, 박석민, 이현승 등이 그나마 감각이 있는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레전드들의 본능은 어디 가지 않았다. 1회초 1번타자 이종범이 '한국 킬러' 일본 선발 우헤하라로부터 벼락같은 안타를 쳐내며 경기가 시작된 것이다. 한국은 4번 김태균의 적시타로 선취점을 뽑았다.
일본도 홈팬들 앞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한국은 좌완 이혜천을 선발로 내세웠는데, 일본 4번타자 이나바가 동점 적시타를 때려낸 것이다.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을 오래 역임한 이나바는 올해부터 닛폰햄 2군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선수 생활 후반기를 닛폰햄에서 보낸 프랜차이즈 스타다.
양팀 경기는 기대 이상 흥미로운 접전이었다. 2회초 일본 투수 고마츠의 제구 난조와 양준혁의 희생 플라이까지 더해 3점을 뽑았다. 그러자 일본은 2회말 마운드에 오른 윤석민을 난타하며 똑같이 3점을 내 경기를 동점으로 만들었다. 그래도 한국으로선 다행이었던 게 이어진 2사 만루 위기서 구원등판한 조웅천이, 일본 조지마를 헛스윙 삼진 처리하며 위기를 넘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균형이 깨진 건 3회. 한국은 바뀐 투수 이와타를 상대로 박경완과 박석민의 연속 안타로 찬스를 만들었고, 박한이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달아났다. 9번 박종호가 1타점 안타를 연속으로 때려냈다. 반대로 2회까지 점수를 잘 뽑던 일본은 3회 한국 이현승의 호투에 막혀 득점에 실패했다. 4회에는 일본은 세츠, 한국은 구대성과 권혁의 좋은 투구로 양팀 모두 점수를 내지 못했다.
양국 치어리더들 화합의 무대가 하프타임에 진행되고, 이어진 경기. 한국이 제구를 잡지 못한 마하라를 상대로 연속 볼넷을 얻어내자 하라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출신 이와쿠마가 마운드에 오르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이와쿠마는 이날 나온 투수들 중 가장 떨어진 구속을 보여줬다. 박한이에게 희생플라이 타점을 내줬고, 장성호를 1루 땅볼로 유도했지만 1루 베이스커버가 늦어 병살 플레이가 되지 못했다.
한국은 5회말 마운드에 오른 봉중근이 난조를 보이며 2실점했지만, 그 와중에 이날 경기 첫 병살을 니시오카 상대 유도해내며 리드를 지켜내고 임무를 다했다. 서재응이 강타자 오가사와라를 직선타로 겨우 잡아내며 6-5 스코어를 유지했다.
한국은 승리를 지키기 위해 구위가 가장 좋은 고창성, 윤길현을 아껴놨다. 6회 고창성이 올라왔다. 하지만 이게 화근이 됐다. 1사 2, 3루 상황서 공이 빠르니, 이토이의 정확한 컨택트에 타구가 넘어가 버렸다. 극적 역전 결승 스리런. 경기장을 꽉 채운 일본 팬들의 엄청난 환호가 터졌다.
윤길현이 불을 끄러 나왔지만, 공에 속도가 붙자 일본 타자들이 훨씬 타이밍을 잘 맞췄다. 가타오카의 쐐기 적시타까지 터졌다. 이후 일본 타자들이 완전히 분위기를 탔고, 결국 점수차가 4점까지 벌어졌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사실 승패에는 큰 의미가 없었다. 모든 선수들이 고르게 투입되며 팬들에게 인사를 하는 게 중요했다. 투수들의 구속은 130km를 넘기 힘들었고, 방망이를 치고도 다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현역 때라면 무조건 잡는 타고도 놓치고 했다. 그러면서도 다들 웃으며, 즐기며 플레이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그래도 한-일전이라고, 중간중간 위기 상황 상대 타자에 맞춰 투수도 바꾸는 등 승부사 기질들을 아예 포기하지는 않았다. 일본은 6회 동점, 역전 찬스가 생기자 교체했던 니시오카를 3루 대주자로 다시 내보내기도 했다. 이번 대회에 허용된 규정. 승리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야구로서도 기대 이상의 재미를 선사했다.
한국은 모든 선수들에 제 역할을 했는데, 그 중에서도 톱타자로 나와 3안타 2볼넷 5출루를 기록한 '바람의 아들' 이종범이 단연 돋보였다. 경기 전 최고령이라 근육 부상이 염려된다고 엄살을 부렸는데, 방망이 돌아가는 건 현역 시절 못지 않았다. 수비도 외야로 나섰다가 중간 2루로 변신하기도 했다. 물론 역전 결승포를 허용하기 전, 치명적(?) 패대기 송구 실책을 저질렀지만 그 전 50세가 훌쩍 넘은 나이에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잡아낸 자체가 압권이었다.
양팀 선수들은 경기가 끝나자 다정하게 인사를 나누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다. 일본 현지 팬들도 양국 가릴 것 없이 좋은 플레이가 나오면 아낌 없는 박수를 보냈다. 일본 대표팀 하라 감독은 마무리 전설 후지카와를 경기 마무리로 올리는 낭만도 선사했다. 엄청나게 멋진 야구장에서, 야구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을 보여준 날이었다.
홋카이도(일본)=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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