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로 시대를 노래하고 노래로 저항한 그…‘뒷것’의 삶 내려놓다
대학 재학 중 음악 활동 시작
1971년 ‘아침이슬’·독집 음반
당국, ‘불온성’ 들어 방송금지
1991년 대학로에 ‘학전’ 개관
33년간 359편 작품 무대 올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대표작
자신의 업적 내세우는 것 꺼려
마지막까지 ‘뒷것’ 자처한 삶
‘아침이슬’ ‘학전’으로 상징되는 김민기의 삶은 저항의 역사였다. 동시에 그는 한국 공연사에 큰 획을 그은 이정표였고 대학로의 별이었다.
■ 시대상 담은 음악으로 저항의 삶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고인은 어린 시절부터 음악과 미술에 두각을 나타냈다. 서울대 미대 재학 중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1971년 양희은의 ‘아침이슬’ 작곡가로, 자신의 독집 음반 <친구/길>의 작곡가 겸 가수로 본격적인 음악 인생을 열었다. 김민기의 독집 음반은 당시 흔했던 외국 번안곡이 아닌, 대부분 자작곡으로 채워졌다는 점에서 한국 대중음악사의 중요한 이정표가 됐다.
1970년대 그의 음악의 가치는 당시 시대상과도 맞물려 있다. ‘아침이슬’ ‘친구’ 등 김민기의 노래는 박정희 정권을 직접 비판하기보다는 문학적 은유로 시대를 노래했지만, 당국은 김민기의 ‘불온성’에 눈감지 않았다. 김민기의 노래는 대부분 방송금지됐다.
제도권에서 활동하기 어려워진 김민기는 당대 저항시인 김지하와 만나 함께 작업하기도 했다. 김민기는 김지하가 쓴 희곡 ‘금관의 예수’에 노래를 붙여 무대에 올렸다. 이는 김민기가 무대 경험을 쌓는 계기가 됐다. 군에 입대한 김민기는 퇴역하는 선임하사를 위해 ‘늙은 군인의 노래’를 만들었다. 1970년대 김민기는 야학 활동을 하며 노동자의 삶에 관심을 기울였고, 탈춤이나 판소리 등 전통음악도 공부했다.
■ 대학로에 둥지… 학전 소극장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4년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해 음악 활동을 이어간 김민기의 삶은 1991년 대학로에 학전 소극장을 개관하며 다시 달라졌다.
1994년 초연한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학전을 대표하는 작품이자, 소극장 뮤지컬의 이정표가 됐다. 독일 작가 폴커 루트비히·작곡가 비르거 하이만의 원작을 옮긴 이 작품은 옌볜 처녀 ‘선녀’의 눈으로 본 20세기 말 한국 사회의 모습을 그려 크게 인정받았다. 황정민, 조승우, 설경구 등 쟁쟁한 배우들이 <지하철 1호선>을 거쳐 갔고, 누적 관객 70만명을 기록했다. <지하철 1호선>은 최초의 라이브 뮤지컬, 최초의 장기 상설공연, 최초 중국 진출 등 기록을 남겼다. 또 고 김광석, 동물원, 들국화, 권진원, 안치환, 나윤선 등도 학전 무대에서 노래했다.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과 같이 한국의 정서와 노랫말이 살아 있는 창작 뮤지컬도 공연됐다. 2004년부터 김민기는 어린이 공연에 집중했다. 돈이 되지 않는다는 걸 잘 알면서도 <고추장 떡볶이> <우리는 친구다> 등 공연을 꾸준히 올렸다.
■ 학전 폐관… ‘뒷것’의 삶으로
수익성 낮은 어린이 공연은 학전 경영난으로 이어졌다. 공연시장이 대극장 뮤지컬 중심으로 옮겨간 점도 학전에 타격이었다.
2013년 학전 그린소극장을 폐관했고, 지난해엔 그의 위암 진단과 함께 학전 블루소극장의 폐관 결정까지 내렸다. 학전은 33년간 총 359편의 작품을 기획·제작한 뒤 지난 3월 폐관했다. 현재 이 자리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인수해 어린이·청소년극 중심의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만들어 지난 17일 문을 열었다. 애초 <지하철 1호선> 등을 공연할 계획도 세웠으나, 고인은 “내가 만들어놓고 내가 뿌린 씨앗은 내 선에서 정리하고 가는 게 좋겠다”며 사양했다고 한다. 아르코꿈밭극장은 1층에 학전의 역사를 전시하는 아카이빙 공간도 마련할 예정이다.
한국의 대중음악과 공연 역사에 큰 획을 그은 고인이었지만, 그는 생전 자신의 업적을 내세우기를 극도로 꺼렸다. 학전 폐관 이후인 지난 4월부터 3부작으로 방영된 SBS 다큐멘터리 <학전 그리고 뒷것 김민기>는 고인의 삶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고인은 끝내 방송사의 인터뷰 제안에 응하지 않았다. 다큐에 출연한 모든 이가 “그에게 빚졌다”고 했지만, 김민기는 언제나 ‘뒷것’을 자처했다.
학전 측은 장례 일정이 끝난 뒤 고인이 남긴 이야기를 다시 정리해 공개할 계획이다.
김한솔 기자·백승찬 선임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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