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칼럼]행정심판, 업체 위한 제도가 돼서야

기자 2024. 7. 22.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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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심판이란 제도가 있다. 행정청의 위법·부당한 처분으로 침해된 국민의 권리·이익을 구제한다는 목적으로 운영되는 제도다. 행정소송보다는 걸리는 시간이 짧고, 인지대 등 비용도 안 든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현실에선 국민 권익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영리를 추구하는 업체의 이익을 위한 제도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대법원 판결보다 행정심판 재결이 우위에 서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지난 6월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어떤 폐기물업체가 경주시장을 상대로 제기한 행정심판에서 업체 손을 들어줬다.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하려고 하는 업체가 경주시에 폐기물관리법에 따른 ‘사업계획서 적합통보 신청’을 했는데, 경주시가 부적합 통보를 한 것에 대해 제기한 행정심판이었다.

문제는 똑같은 위치에 산업폐기물 매립장을 하려고 했던 업체가 2018년 똑같은 유형의 행정심판을 제기했고, 행정심판에서 패소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이 업체는 행정소송을 제기해 대법원까지 갔는데, 2019년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다.

그런데 업체가 바뀌고 매립 면적과 용량이 약간 줄긴 했지만, 사실상 내용적으로 같은 사건에 대해 이번엔 행정심판 결론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문제는 이런 경우 경주시는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없단 점이다. 행정심판을 청구한 업체가 행정심판에서 패소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있지만, 행정청이 패소하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없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주민들도 행정심판위원회의 재결에 대해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 대법원에서 ‘불허가처분(거부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심판 재결에 대해선 제3자도 행정소송을 제기할 수 없다’고 법 해석을 하고 있어서다.

결국 매립장에 반대해온 주민들은 행정심판 재결이 아무리 부당하다고 느끼더라도 불복할 방법이 없다. 이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대법원에서 매립장을 불허한 것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는데, 행정심판위원회가 이를 뒤집는 것이 가능하냐”고 탄식한다. “이건 헌법위반이 아니냐’고 묻는 주민도 있었다.

도대체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는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를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위원장은 경상북도 행정부지사로 돼 있었다. 행정부지사가 도지사를 대행해 위원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부지사는 행정안전부 공무원이 순환보직으로 임명되는 자리다. 법률전문가라고 보기도 어렵지만, 독립성에도 의문이 있다.

그런데 이 위원장과 8명의 외부위원이 회의를 해 행정심판의 결론을 낸다. 그런데 이 사건을 다룬 경상북도 행정심판위원회의 회의개요를 확인해 보니, 3시간 동안 26건의 본안 사건과 5건의 집행정지 신청 사건에 대해 결론을 내린 것으로 돼 있다. 과연 얼마나 충실한 심리가 됐을까? 이런 식의 인적 구성과 심리를 통해 대법원까지 갔던 사건의 결론을 뒤집는 것이 법치주의 원리에 맞는 것일까? 게다가 판결문엔 법관 이름이 나오는데, 행정심판 재결서엔 심판을 한 위원의 이름도 나오지 않는다. 투명성과 책임성도 미흡한 것이다.

물론 경주시 산업폐기물 매립장의 경우 모든 행정절차가 끝난 것은 아니다. 매립장은 국토계획법상 도시계획에 반영이 돼야 추진할 수 있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는 반영 여부에 대해 광범위한 재량권을 갖고 있다. 또 하나의 행정절차가 남은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별개로 현재의 행정심판 제도가 가진 문제점은 반드시 짚을 필요가 있다.

사실 행정심판 제도가 자칫 ‘업자를 위한 제도’가 될 가능성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다. 실제로 업체들은 일찍부터 행정심판 제도를 적극 활용해 왔다. 행정청에 인허가 신청을 했다가 거부당하면 행정심판을 제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업체가 승소하면 최종적인 결론이 되니, 행정소송보다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오염시설로 인한 피해를 우려하는 주민들은 억울함을 삼켜야 했다.

이런 일을 방지하려면 행정심판 제도를 손보아야 한다. 불허가처분에 대해 업체가 제기한 행정심판이 받아들여진 경우, 이해관계가 있는 주민이 행정소송을 제기해서 다툴 수 있도록 행정심판법을 개정해야 한다. 그래야만 행정심판이 업자를 위한 제도가 되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행정부지사나 기획관리실장이 위원장 대행 역할을 하는 시도행정심판위원회의 운영실태에 대해서도 전면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준사법절차라고 하는 행정심판위원회가 독립성과 전문성, 공정성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지는 국가적으로 점검해야 할 문제다.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하승수 공익법률센터 농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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