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근 칼럼]트럼프를 잊어라

기자 2024. 7. 22.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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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대선 후보직 전격 사퇴로 도널드 트럼프가 누구와 경쟁할지 알 수 없는, 초유 사태가 벌어졌다. 그렇다 해도 트럼프 당선을 상상하는 건 더는 공상이 아니다. 온갖 난관을 뚫고 기어코 다시 대통령 후보가 되고, 총알까지 피한 행운의 사나이가 집권하는 운은 피할 거라 믿을 이유가 없다.

요즘 한국에선 윤석열 대통령이 트럼프와 합이 잘 맞을지, 어떻게 하면 트럼프 맞춤형 외교를 할 수 있을지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마치 나라 운명이 미국의 손에 달려 있기라도 한 것 같다. 미 대선을 지켜보는 우리의 불안한 시선이 낳은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봐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미 대선이란 거울에 비친, 중심을 잃은 채 흔들리는 한국 외교를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미국은 어차피 트럼프 시대다. 미국에 닥친 ‘트럼프 충격’은 트럼프가 집권하건 안 하건 미국을 트럼프 시대로 바꿔놨다. 바이든은 당초 국제관계를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대결로 규정했다. 권위주의 국가 간 차이는 민주주의와 권위주의 국가 간 차이보다 크다. 북한, 이란은 베트남, 싱가포르와 다르다. 미국이 베트남, 싱가포르를 밀쳐내고 중국, 러시아, 이란, 북한을 서로 묶어줄 이유가 없다. 그가 제안해 출범한 민주주의 정상회의는 존재감을 잃었다. 지난해부턴 바이든 스스로 진영 대결론 언급을 삼가고 있다. 그러는 동안 바이든은 바이든식 트럼피즘이라 해도 무방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추구했다. 세계는 진영 대결 구도를 따르지 않고 있다.

그런데 태평양 건너 반도의 지도자는 아직도 진영논리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은 가치외교를 한다며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에 외교자원을 거의 다 써버렸다. 한·미 동맹, 한·미·일 협력만 중요한 게 아니다. 한반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선 중국, 러시아, 북한과의 관계도 중요하다. 그러나 윤석열은 한·미·일과 북·중·러 관계가 제로섬 관계로 바뀌는 데 상당한 기여를 했다. 휴전선이 한반도와 동아시아의 이중 분단선이 되지 않도록 주변국들 간 상호 교차 협력하는 질서를 조성하는 것은 진보·보수를 넘어 합의된 외교노선이다. 이걸 윤석열 외교가 무너뜨렸다. 한국은 이제 북·러의 공동 적이 되었다.

가치외교는 편중외교이기만 한 것이 아니다. 가치외교는 평화를 만드는 주도력을 발휘하기보다 진영의 일원이 됨으로써 보호받으려는 편승외교이자, 강대국을 따르는 추종외교다. 미국이 자비심으로 넘친다면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겠으나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안다.

대선 공약, ‘120대 국정과제’에는 ‘가치외교’가 없다. 공동 가치는 공동 이익과 함께 미·중·일·러 4개국 협력을 추동하기 위한 하나의 요소로 제시됐을 뿐이다. 윤석열은 국가 외교전략을 따르지 않고 있다. 자기부정이다. 대신 자신의 이념, 혹은 ‘UAE 적은 우리의 적’ 발언처럼 그때그때 기분을 따르고 있다. 보수는 미국, 혹은 한·미 동맹을 국익이나 안보 관점에서 보지 않고, 자기 이념의 표상으로 여긴다. 보수 이념에 강한 동질감과 편안함을 느끼는 윤석열은 더욱 그럴 것이다. 보수정권의 경로의존성까지 고려하면 윤석열은 자신의 외교전략과 배치된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 채 가치외교로 미끄러져 들어간 것 같다. 사실 보수정권에 가장 쉬운 게 가치외교다. 어떤 노력도, 고민도 필요 없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면 두둥실 떠내려가는 게으른 수영법과 같다. 역대 보수정권이 다 그랬다. 그런데 왜 유독 윤석열 외교에 대한 우려가 클까?

한국 외교는 정권 성격을 떠나 지정학적, 역사적 배경 때문에 편중·편향, 즉 불균형이 기본값으로 설정되어 있다. 그래서 목적의식적인 균형 잡기, 다른 쪽 방향으로 힘을 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것은 국가 미래를 개척해야 할 국가 지도자의 책무다. 이명박·박근혜 대통령도 충분치 않지만 나름대로 편향을 바로잡으려 했다.

하물며 미·중 전략경쟁 심화, 탈세계화,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장기화 등 복잡한 정세를 헤쳐나가야 할 윤석열 정부로선 더 말할 나위 없다. 게다가 글로벌 중추국가란 도전적 목표도 갖고 있다. 과거 어느 때보다 정교한 조정 능력, 균형 감각이 요구된다. 불행히도 이 모두 윤석열이 갖지 못한 덕목이다. 윤석열 외교를 크게 걱정하는 이유다.

바이든 따라다니다 이제 트럼프를 따라다닐 수는 없다. 그런 글로벌 중추국가는 없다. 흔들리는 것은 깃발이 아니라, 마음이다. 트럼프를 잊어라.

이대근 칼럼니스트

이대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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