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종의 기후변화 이야기]비가 그친 이후 시작될 것들

기자 2024. 7. 22.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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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중호우는 단순히 물의 양이 늘어난다는 물리적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다가올 폭염이나 가뭄도 마찬가지다
지금부터라도 기후변화의 측면에서 복합재해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과학적으로 진단해 피해를 정확히 예측할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진짜 큰 피해는 비가 그치고 난 이후에 시작될 것이다

정말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 매일 억수같이 비가 쏟아진다. 며칠 전 전북 군산에서는 시간당 146㎜의 비가 내렸다. 초등학교 시절 많이 쓰던 15㎝ 자 높이만큼의 물이 1시간 만에 머리 위로 쏟아진 것이다. 여기가 한국인지, 동남아인지 구별되지 않을 정도의 비가 내리는 것 같다. 사실 한반도의 평균기온은 높아졌고 주변 해수면 온도 또한 상승해서 이미 아열대 기후의 특성을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짧고 굵게 아열대 스콜 같은 집중호우가 내려도 어색한 상황은 아니다. 좁은 지역에 집중적으로 많은 비가 내리는 기상학적 이유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름 기후가 변한 것이다. 한반도 여름 기후 그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똑같은 메커니즘의 강우 패턴이 형성되어도 비가 더 많이 올 수 있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비는 분명 기후변화의 증거라고 보는 것이 더 현명하다.

집중호우로 예기치 못한 복합재해

기후변화는 단순히 기온만 상승하는 것이 아니라 비, 구름, 바람, 습도 등 대부분의 기상요소가 강하거나 약하게 변하는 것이다. 한반도의 집중호우뿐만 아니라 최근에 큰 이슈가 되었던 비행기의 이착륙에 영향을 주는 바람(난류)을 더 강하게 또는 약하게 만들기도 한다. 평균기온이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는 시점에 특정한 이유로 지면의 기온이 높아지면 뜨겁게 달구어진 공기는 빠르게 하늘로 솟구쳐 구름이 되고 강한 비를 뿌릴 수도 있다. 마찬가지로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대기 중 수증기가 증가하고 공기는 더 뜨겁고 습해질 수밖에 없다. 이렇게 수증기를 가득 품고 데워진 공기는 더욱 강한 바람이나 폭풍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커진다. 그래서 특정 지역에는 더 많은 비가 올 수도 있고, 반대로 다른 지역에서는 비가 더 적게 올 수 있는 예측하기 어려운 날씨가 만들어진다. 미래 기후변화를 예측하는 여러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도 현재 우리가 보는 극단적 날씨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고 온난화를 늦추지 않는 이상 앞으로 더 빈번히 발생할 것이라 한다. 즉 비가 극단적으로 많이 오거나 오지 않는 강수량의 변동성 또한 커질 수 있다는 뜻이다.

강한 집중호우로 너무 많은 비가 내리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다양하게 발생한다. 바로 기후변화가 만들어낸 복합재해다. 기후변화로 인한 하나의 재해가 또 다른 재해를 순차적으로 유발하거나 두 개의 다른 재해가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가 더 많이 오면 홍수가 발생하고 심하면 침수 피해가 생긴다. 농경지 같은 경우 농작물의 피해가 발생하여 당장 밥상 물가에 영향을 줄 것이다. 오늘 식당에서 먹은 상추, 깻잎이 내일은 안 보일 수 있다. 만약 곡물이 원자재라면 2차, 3차 가공식품의 가격이 시간차를 두고 오를 수도 있다. 올여름 이미 축구장 1900개 면적의 농경지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다니 큰일이다. 산림지역 또한 집중호우로 인해 산림작물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으며 산사태 발생 시 주변 도로 및 주거지역까지 큰 피해가 연쇄적으로 발생할 수 있다. 강한 집중호우가 이어진다는 것은 물이 가득 찬 화분에 계속 물을 부어주는 꼴이다. 상상해보면 알겠지만 이렇게 물을 더 부으면 점점 흙이 넘치고 나무가 흔들리다 결국 화분 밖으로 쓰러질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산림지역은 토양의 물이 한가득 차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산사태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이렇게 산림지역에서 넘치는 물은 결국 멀리 떨어진 하류 지역에 침수 피해를 유발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도시 지역은 집중호우로 인해 하천이 범람하여 홍수가 발생하거나 하수 관망의 배수시스템 통수능력에 따라 침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데 최근 도시의 침수는 하천 범람 때문이라기보다는 도시 내 배수시스템의 설계 홍수량(예: 서울시 약 75㎜/hr)을 초과하여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최근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국지성 집중호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도심 내 배수시스템의 설계용량을 높이거나 도시 지역에 빗물 저류시설(도시에서 빗물을 담을 수 있는 아주 큰 물그릇이라고 생각하면 됨)을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뿐만 아니라 도심 내 빗물받이는 불투수층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중요한 빗물 배수시스템 중 하나로 빗물을 모아 배수시스템으로 전달하는 중요한 기반시설 요소이다. 따라서 집중호우 시 빗물받이를 통해 원활하게 배수시스템으로 전달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빗물의 흐름에 방해를 줄 수 있는 빗물받이 덮개 위 낙엽 및 쓰레기 등을 미리 잘 처리해야 한다. 특히 길거리에 아무 생각 없이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로 인해 빗물받이가 막히는 일도 있으니,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 큰일이 생길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계산에 없던 메탄 자연배출도

도시의 침수 피해로 인해 생각지도 못한 곳까지 불똥이 튈 수 있다. 집중호우 이후 도시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한 물웅덩이로 인해 모기가 번식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모기가 쉽게 번식하여 개체가 늘어날 때 질병이 확산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폭우로 인해 하수와 상수가 섞여 식수원이 오염될 때 위생환경이 취약해져 장티푸스나 세균이질 같은 수인성 감염병이 증가할 수 있으니, 상수원의 오염이 의심되는 지역에서는 물을 바로 마시는 걸 반드시 피해야 한다. 물로 인한 질병 피해는 물이 많은 바다에서도 마찬가지로 발생한다. 특히 한국인이 사랑하는 횟감인 양식어류는 집중호우로 인한 스트레스와 저염분으로 인한 생리적 장애로 질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질 수 있어 기생충성 질병이나 세균성 질병이 발생해 폐사율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집중호우로 인한 생태계 변화에 대한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었다. 바로 집중호우로 인한 온실가스 ‘메탄’의 자연 배출이다. 중앙아프리카의 집중호우로 인해 메마른 초원이 거대한 웅덩이로 바뀌고 그곳에서 다량의 메탄이 생성되어 대기 중으로 배출된 것이 인공위성에 포착된 것이다. 머리 위 700㎞ 상공에서 측정될 만큼 많은 양의 메탄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생성된 메탄은 전 지구 메탄 농도 상승에까지 영향을 끼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극도로 건조한 환경이 물에 잠기자, 산소가 없는 환경을 좋아하는 메탄생성균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이다. 메탄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대표적 온실가스로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대기 중에 많이 분포하고 있으며 이산화탄소처럼 대기 중 농도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게다가 메탄은 배출 후 20년 동안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효과가 이산화탄소의 80배 이상인 강력한 온실가스이다. 대기 중 메탄 농도 증가는 인간에 의한 인위적 요인뿐만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기후 반응과 같은 자연적 과정이 섞여 있기에 정확한 농도 증가 원인을 파악하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 특히 자연계 반응 같은 경우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메탄 발생원이 많다. 그래서 이렇게 집중호우가 유발하는 새로운 메탄 발생 같은 일은 우리가 미처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집중호우가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물질을 더 만들어낸 것이다.

지금까지 얘기한 것처럼 기후변화로 비가 많이 온다는 것은 단순히 바닥에 떨어지는 물의 양이 늘어난다는 물리적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과 자연 생태계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과정을 통해 서로서로 연결하고 있으므로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또 다른 곳에서 문제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 앞으로 다가올 폭염이나 가뭄도 마찬가지다. 절대 하나의 물리적 현상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기후변화 측면에서 복합재해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철저하게 과학적으로 진단하여 피해가 어디까지 발생할 수 있는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진짜 큰 피해는 비가 그치고 난 이후에 시작될 것이다.

■정수종



서울대학교 지구환경과학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 연구원, 중국 남방과기대 교수를 거쳐 2018년부터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로 근무 중이다. 연구팀을 꾸려 기후변화의 원인과 영향을 밝히기 위한 관측 및 모델링 연구를 진행 중이며, Global Carbon Project, 유럽 항공우주국 기후 모니터링, NASA 온실가스 및 생태계 모니터링 등 국제 공동연구를 수행 중이다. 2018년부터 서울 남산타워 꼭대기에서 도시의 이산화탄소를 측정한 정보를 매일 공개하고 있다.

정수종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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