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늘 푸르렀던 김민기, 우리 마음을 지킨 ‘뒷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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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생, 향년 73. 너무 이르다.
시대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품고, 남들은 못하거나 피하는 궂은일을 부지런히 좇느라 몸이 일찍 다 닳아버린 탓일 게다.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에 기념비적 작품인 '지하철 1호선'은 1994년부터 2023년까지 8천회 넘게 공연하며, 뛰어난 연기자들을 배출해냈다.
문화예술인들만이 아니라, 엄혹했던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받쳐준 '뒷것' 김민기도 그런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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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생, 향년 73. 너무 이르다. 시대의 아픔을 자기 것으로 품고, 남들은 못하거나 피하는 궂은일을 부지런히 좇느라 몸이 일찍 다 닳아버린 탓일 게다. 그가 스스로 진 많은 짐 가운데 하나도 제대로 덜어주지 못한 우리는, 마냥 미안하다. 김민기. 2024년 7월21일, 그가 떠났다. 한 시대가 저물었다.
사람들은 그를 ‘아침 이슬’이라 부를 것이다. 이 노래는 1971년 첫 음반이 나오자마자 압수당하고 금지곡이 되어 그에게 큰 시련을 안겼다. 하지만 군사독재정권 시절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었다. 1987년 ‘6월 항쟁’ 때 거리에서 가장 많이 불린 노래였다. 2008년과 2016년 촛불집회에서도 광장에서 사람들은 이 노래를 함께 불렀다. 이 나라 민주주의는 그에게 적잖은 빚을 졌다.
사람들은 그를 ‘학전’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를 것이다. 1991년 그가 대학로에 세운 소극장 학전과 극단 학전은 대학로 공연 문화의 뿌리가 되었다. 우리나라 뮤지컬 역사에 기념비적 작품인 ‘지하철 1호선’은 1994년부터 2023년까지 8천회 넘게 공연하며, 뛰어난 연기자들을 배출해냈다. 학전은 김광석을 비롯해 많은 가수가 대중을 만나는 장이었다. ‘배움의 밭’이란 뜻의 학전(學田)은 글자 그대로 ‘문화예술 인재를 길러내는 못자리’였다.
그가 걸어온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권력의 탄압으로 가수와 작곡가로서 일할 수 없었던 젊은 날, 그는 생계를 위해 공장과 탄광에서 일했다. 낙향해 농사를 짓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상록수’를 작곡하고,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을 담은 마당극 ‘아구’와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만들며 시대와 호흡했다. 학전을 운영하는 동안에도 만성적 재정난에 시달렸지만 다른 공연장에선 좀체 올리지 않는 어린이·청소년극을 고집스레 만들었다. 올해 3월 문을 닫았던 학전은 지난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 ‘아르코꿈밭극장'으로 새롭게 문 열었다. 그의 유산이다.
어떤 이는 존재만으로도 든든한 기둥이 되고, 마음에 위로가 된다. 문화예술인들만이 아니라, 엄혹했던 시대 사람들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받쳐준 ‘뒷것’ 김민기도 그런 사람이었다. 늘 푸르렀던 사람, 그가 떠난 자리가 너무도 황량해 우린 한동안 몸살을 앓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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