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아침이슬’ 김민기 별세
김민기의 노래는 슬프다. “우리 부모 병들어”로 시작하는 ‘서울로 가는 길’이나 1970년대 가난한 농촌의 현실을 “돈 벌러 간 울 언니는 무얼 하는지”로 묘사한 ‘식구생각’은 물론, 경쾌한 동요 ‘천리길’도 아이들의 티 없이 맑고 씩씩한 기상이 도리어 슬프다. “집집마다 흰 연기 자욱하게 덮히니/ 밥 냄새 구수하고 아이들을 부르는 엄마 소리” 같은 대목에선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을 향한 애정이 오롯이 느껴진다.
그의 노래가 슬픈 건 사람을 포함해 무릇 생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의 본질이 슬픔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 말은 김민기의 시선이 존재의 본질에 닿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존재의 본질에서 길어내는 슬픔은 고즈넉한 슬픔이다. 그것은 윤동주의 시 ‘자화상’의 화자처럼 내면의 우물을 찬찬히 응시해야 얻을 수 있는 성찰적 슬픔이다. 나와 너는 슬픈 존재로 이어져 있다는 감각이야말로 연민과 연대의 참된 기초일 것이다. 그 감각은 당대에 슬픔을 체현한 것으로 보이는 존재들, 노동자와 농민, 도시 빈민·기지촌 여성·광부·아이들에 대한 관심으로 향하는 게 자연스럽다. 김민기의 노래는 현실을 고발할 때조차 큰 소리로 외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그저 사람들의 삶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이다. 그럴 때 우리말의 결을 한껏 살린 그의 언어는 더없이 단순하고 투명하다. 무엇보다, 탁월하게 서정적이다.
김민기와 같은 성찰형 인간에게 어울리는 말은 이념·전략·전술보다 사람됨의 도리이다. 흔히 그런 말은 현실을 가리는 공리공담이 되기 십상이지만, 누군가 그것을 견결한 실천강령으로 삼을 경우 어떤 이념보다 강력한 실천적 효과를 갖는다. 그 서슬 퍼런 시대에 김민기가 <공장의 불빛>을 녹음하고, 민주화 이후 학전을 만들고, 어린이극을 개척하고, 극단을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끝내 ‘뒷것’으로 남은 배경도 결국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한국 대중음악과 공연예술에 큰 획을 그은 김민기가 지난 21일 위암으로 별세했다. ‘아침이슬’이라는 노래 하나만으로도 우리 모두는 김민기에게 빚을 지고 있다. 삶과 예술이 합일하는 드문 경지를 보여준 김민기는 위대한 예술가이자 그의 노래 제목처럼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정제혁 논설위원 jhjun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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