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고관세, 저금리 정책과 상충 …'트럼프 딜레마'에 시장 혼란

노영우 전문기자(rhoyw@mk.co.kr), 문지웅 기자(jiwm80@mk.co.kr) 2024. 7. 22.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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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5대 경제정책 양립불가
법인세 깎고 재정 지출 늘리면
국채 더 찍어내 재원 마련해야
채권 금리 오르고 강달러 심화
세계 곳곳에 관세 폭탄 예고
물가 올라 기준금리 인상 자극
저금리 정책 깨뜨리는 부메랑
IRA·칩스법 개정 가능성도

◆ 美 대선 리셋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후보의 말과 행동에 글로벌 시장이 출렁이고 있다. 미국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최근 연 4.2%에서 4.5%까지 오르내렸다. 달러당 엔화값은 161엔에서 157엔까지 급등했다. 반면 달러당 원화값은 1390원까지 떨어졌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진폭이 확대되고 있지만 방향성은 흔들린다. 유력한 미국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트럼프의 영향력은 커지고 있지만 그가 내놓은 정책들의 효과가 상충되는 '트럼프 딜레마'를 노출시키면서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실제 정책이 집행되지 않더라도 '트럼프의 입'에 언급된 특정 국가와 산업이 피해를 보는 현상도 발생하고 있다.

감세와 저금리·약달러 양립 불가능

트럼프 후보는 감세, 저금리, 저물가, 약달러, 관세 인상 등 5대 경제 정책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 정책들은 서로 상충돼 동시에 성과를 내는 것은 '동전을 던져 세우는 것'만큼 불가능에 가깝다.

대표적인 사례가 감세와 저금리다. 트럼프는 집권 후 법인세와 개인소득세를 깎아주고 재정지출을 늘려 경기를 띄우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세금을 깎아주고 재정지출을 늘리려면 재원 마련을 위해 국채를 더 찍어내야 한다. 이때 채권시장에서 국채 공급이 늘어 채권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오른다. 이는 트럼프가 추구하는 저금리 정책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또 시장금리가 오르면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자금이 고금리를 따라 미국으로 이동한다. 이때 달러에 대한 수요가 늘어 강달러 현상이 심해진다. 트럼프가 추구하는 '약달러를 통한 수출 증대' 정책과는 상충된다. 결국 감세와 저금리·약달러 현상은 양립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관세 인상은 고물가 불러

트럼프 후보의 또 다른 핵심 정책은 관세 인상이다. 그는 미국보다 관세가 낮은 나라들에 일률적으로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중국산 자동차에 대해 최대 200% 관세를 부과하는 등 '관세폭탄'을 전 세계에 투하하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이 관세를 높이면 미국이 수입하는 물건에 대해 미국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가격이 높아진다. 이는 곧바로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그럼에도 트럼프 후보는 "내가 집권하면 물가를 낮출 것"이라고 공언하며 조 바이든 정부가 물가를 잡지 못한 것을 '최대의 실정'으로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폭탄은 필연적으로 고물가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만약 물가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기준금리를 올려 시중의 돈을 거둬들여야 한다. 이 경우 트럼프의 '저금리 공약'도 깨질 수밖에 없다.

트럼프-파월 기싸움

시장의 관심은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여부다. 최근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안정되고 실업률은 소폭 증가세로 반전하면서 고용 불안을 막기 위해 연준이 선제적으로 금리를 내릴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다.

하지만 트럼프의 발언으로 불확실성이 생겼다. 트럼프는 "낮은 금리가 좋다"면서도 "11월 대선 때까지 연준이 금리를 내리면 안 된다"고 엄포를 놨다. 대선 전에 금리를 내려 경기가 호전되면 현재 집권당인 민주당에 유리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트럼프의 입'에 굴복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애매한 입장이다.

특히 파월 의장의 임기가 대선 이후에도 계속되는 점과 파월이 2019년 당시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굴복한 '흑역사'도 갖고 있어 그가 어떤 선택을 내릴지 주목된다. 트럼프와 파월 간 기싸움의 결과에 따라 시장금리도 출렁일 전망이다.

'트럼프 입'에 특정 국가 희생양

트럼프 후보가 내세운 정책들의 모순성 때문에 그가 제시한 5대 정책이 모두 시행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제는 트럼프가 이 중 어느 것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정책의 상호 연관성보다 즉흥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그의 포퓰리즘적 스타일 때문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무역에 쏠리면 관세폭탄을 들고나오고, 실업이 문제가 되면 저금리를 내세우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의 변동성은 커지고 특정 국가와 산업이 피해를 입는 현상도 반복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후보가 최근 '엔저 현상'을 비판하자 엔화 가치는 곧바로 급등했다. 그가 '대만의 방위비 문제'를 들고나오자 TSMC를 비롯한 세계 반도체 주가가 급락했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과거 트럼프 집권 때 혹독한 통상 압박 '트라우마'가 남아 있는 한국으로선 다시 찾아온 트럼프 리스크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1기 정부 때보다 2.5배로 늘어난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올 상반기 대미 무역 흑자는 287억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55.1% 늘었다.

또 바이든 정부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칩스법(CHIPS Act)의 수혜를 누렸던 한국 반도체, 배터리 대기업들은 180도 바뀔 트럼프의 산업 정책에 벌써 비상 상황이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 문지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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