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 K-과학계, 量子 업고 튀어 오를까

이준기 2024. 7. 22.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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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지난달 26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산하 글로벌 R&D 특별위원회는 인공지능(AI), 양자(量子), 첨단바이오 등 3개 분야의 '글로벌 기술수준 지도'를 내놨다. 이는 논문과 특허, 전문가 평가 등을 토대로 주요국의 기술 수준을 표준화 점수로 산출해 제시한 것이다.

3개 분야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단연 양자였다. 양자는 미래 산업와 안보의 판도를 송두리째 바꿔 놓을 게임체인저 기술 중 핵심으로 꼽힌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연합 등 주요 선진국은 이미 양자과학기술 선점을 위해 국가적 역량을 쏟는 등 국가 핵심전략기술 분야로 정해 집중 육성하고 있다.

양자과학기술은 얽힘, 중첩 등의 양자물리적 특성을 컴퓨팅, 센싱, 통신 등에 적용해 초고속 연산, 초신뢰 연결, 초정밀 계측 등을 가능케 할 파괴적 혁신기술이라는 점에서 주요국 간 기술패권 경쟁의 한복판에 서 있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라는 다른 국가보다 뒤늦게 양자과학기술에 뛰어든 후발주자나 다름 없다.

그럼에도 정부가 발표한 우리나라 양자과학기술의 글로벌 기술 수준을 본 순간 믿기지 않았다. '우리 수준이 이 정도 밖에 안 됐나'라는 참담함마저 들었다. 최고 기술 선도국인 미국을 100점으로 할 때 양자컴퓨터 2.3점, 양자통신 2.9점, 양자센서 2.9점을 얻어 최하위 수준이었다. 그나마 우리나라가 일찍 기술 개발을 시작해 다른 나라에 비해 산업화 기반이 앞선 것으로 평가받았던 양자센서 기술도 바닥을 면치 못한 점은 놀라운 일이었다.

정부가 양자과학기술을 3대 게임체인저 기술로 정해 집중 투자를 하고 있음에도 기술 격차가 이렇게 컸다는 점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한 마디로 우리나라 양자과학기술의 적나라한 민낯이 대외적으로 고스란히 드러난 셈이다. 이 때문에 과기정통부는 이를 공개하길 주저했다고 한다. 공개 시점도 과기정통부가 글로벌 양자과학기술 축제로 키우고 있는 '퀀텀 코리아 2024' 기간 중이어서 양자분야 산학연 사이에서도 "왜 이 시점에 공개됐지"라는 뒷말이 무성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정부가 마냥 양자과학기술에 손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최근 5년간 양자과학기술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2019년 양자과학기술 R&D 예산으로 106억원을 투입하기 시작해 올해 1285억원으로 5년새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내년 정부 예산안은 1520억원으로 배정돼 현재 심의 중이다.

물론 다른 3대 게임체인저 기술인 AI, 첨단바이오의 내년 예산안이 각각 1조원, 2조원인 점을 비교하면 양자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차원의 대규모 투자는 여전히 목말라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1조원에 달하는 양자과학기술 관련 예비타당성조사는 연구의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사업 규모가 줄어든 채 재심의 중이지만, 지금껏 결과가 나오지 않어 국가 플래그십 사업으로 시작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출연연 간 칸막이를 허물고 산학연 연구역량을 결집하는 글로벌 톱 전략연구단 사업 선정에도 양자과학기술 분야는 탈락됐다.

미국과 중국, 일본, 영국 등이 대규모 예산 투입을 통해 양자과학기술 초기 시장 선점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에 비하면 우리의 추격 모드는 시동만 걸었을 뿐 가속페달은 밟지도 않았다. 투자뿐 아니라 인력과 민간 주도의 산업화 기반 등 양자과학기술 전반에 걸친 생태계도 취약한 실정이다.

위기가 기회라는 말처럼 우리에게 승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양자과학기술은 초기 단계로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되려면 최소 10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비록 후발주자 신세이지만 10년 정도의 시간이 우리에게 남아 있다.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는 우리의 제조·공정 기술력에 우리의 강점인 ICT 역량을 결집해 다양한 양자 제품과 서비스에서 새로운 혁신을 만든다면 양자과학기술 선도국을 빠르게 따라잡고, '퀀텀의 시대'의 신흥 맹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bongch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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