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합병 논란, ‘2대 주주’ 국민연금에 쏠리는 눈
두산 밥캣과 두산 로보틱스의 합병은 대표적인 지배주주와 일반주주간 이해상충 문제로 꼽힌다. 이처럼 총수 일가의 이익 위주로 사업이 재편되는 일이 반복되지 않으려면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확대하는 등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 보완과 더불어 국민연금공단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 특수관계인 의결권 제한 등 있는 제도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두산그룹은 올해 두산에너빌리티의 종속회사인 밥캣을 로보틱스의 자회사로 편입해 내년 상반기 합병을 완료할 계획이다. 문제는 합병 과정이다. ‘알짜기업’인 밥캣보다 ‘적자기업’인 로보틱스에게 유리하게 합병비율이 산정되면서 합병을 추진한 지배주주인 두산은 비용투입 없이 밥캣에 대한 간접 지분율을 13%에서 42% 가량으로 늘릴 수 있게 됐다. 반대로 밥캣을 보고 투자한 소액주주들은 불리한 비율을 감수하고 ‘고평가’된 로보틱스 주식으로 바꾸거나 현금만을 받고 나가게 됐다.
전문가들은 이사의 충실의무를 주주로도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합병안이 이사회를 통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는 이사가 회사 뿐만 아니라 일반주주의 이익도 비례적으로 고려한 의사결정을 내려 지배주주를 견제하고 다수의 소액주주를 보호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창민 한양대 교수는 “(상법 개정안이 통과됐다면) 이번 합병 결정이 배임에도 해당될 수 있는 만큼 사외이사들이 신중하게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지배주주를 견제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상법 368조 3항은 주주총회 결의에 이해관계가 있는 관계자의 의결권 행사를 금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법원은 주주총회에서 ‘셀프 보수 인상’을 했던 홍원식 전 남양유업 회장을 대상으로 차파트너스가 제기한 주총 결의 취소소송에서 이 조항에 따라 차파트너스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법조계에선 합병 사안에는 이 조항이 적용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특히 에너빌리티와 밥캣 지분의 약 7%를 보유한 2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의 행보가 중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연금을 통한 정부의 간접적인 영향력을 무시하기 어려운데다 합병안 의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준범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부회장은 “국민연금처럼 어느정도 지분을 가진 주주라면 이번 합병안에 대해 가처분신청 등을 통해 제동을 걸 수단은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올해 국민연금이 주주권리 행사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어 실제 나설진 미지수다.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스튜어드십코드(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 지침) 행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 교수는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가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라는 의미가 있는 만큼 국민연금이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열린 김병환 금융위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도 이 문제가 거론됐다. 두산그룹 구조 개편이 소액주주 이익을 침해한다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지적에 대해 김 후보자는 “시장의 우려가 있는 것을 알고 있다”며 “제도적으로 고칠 부분이 있을지 살펴보겠다”고 말했다.
김경민 기자 kim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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