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극장 공연 꽃피우고 …'아침이슬'처럼 떠난 대학로 선구자

정주원 기자(jnwn@mk.co.kr) 2024. 7. 2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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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기 학전 대표 별세 … 향년 73세
3~4개월전부터 사람 만나면
"그저 고맙다" "할만큼 다했다"
한국 싱어송라이터의 시초
군부독재에 저항 문화 상징
1991년부터 운영한 '학전'
김광석 등 가수·배우 산실로
무대 위에 선 김민기 학전 대표.

대학로에 소극장 문화를 뿌리내리며 한국 대중문화의 큰 줄기를 세운 김민기 학전 대표가 21일 별세했다. 향년 73세.

22일 학전과 유족 측에 따르면 고인은 위암으로 투병하다 증세가 악화해 전날 밤 8시 26분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받으며 일시적으로 호전을 보이기도 했지만 최근 간 전이와 폐렴 등이 겹쳤다. 고인의 조카이기도 한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이날 유족을 대표해 "댁에서 통원 치료를 하며 가족들과 미리 작별 인사를 많이 나눴고, (임종 때도) 가족들이 다 올 때까지 기다리셨다가 모두 만나고 잘 가셨다"며 "3~4개월 전부터 '그저 고맙다' '할 만큼 다 했다'는 말씀을 늘 하셨다"고 전했다.

고인은 군부 독재 시절 '아침이슬'(1970), '상록수'(1977) 등의 곡을 만들고 부르며 저항 정신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아침이슬은 발표 때만 해도 건전가요로 불렸지만 1972년 유신 정권 이후 금지곡이 됐다. 음반이 전량 압수되고 방송 출연도 금지되는 탄압도 겪었다. 다만 본인이 나서서 투쟁했다기보다 시대가 그를 내몬 쪽에 가까웠다. 임진모 대중음악 평론가는 "김민기는 원치 않게 정치적 존재감을 가지면서 노래와 멀어졌지만 우리나라 싱어송라이터의 시초"라며 "직접 노래를 만들어 불렀고, 가수로서 빼어난 자질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기억했다.

생전 과묵하고 나서지 않던 성품도 고인 주변의 공통된 기억이다. 그를 단골 손님으로 맞았던 이충렬 학림다방 대표는 이날 "1987년 문을 열었을 때부터 민기 형은 학림다방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면서 "우린 항상 중립이라고 한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누가 돼도 야권'이라고 할 정도로 어느 쪽에 치우치지 않았던 사람"이라고 회고했다. 또 이 대표는 "37년을 알고 지낸 사이인데 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없고, 늘 그랬듯 특별히 남긴 말씀도 없다"며 "한 달 전 댁에 찾아가 뵀을 때도 아들들과 산책도 하고 안색이 좋아 보였다"며 안타까워했다.

1991년 개관한 이래 대학로 소극장 터줏대감으로 자리해오다 지난 3월 폐관한 학전블루. 학전

많은 문화예술인들이 '학전에 빚을 졌다'고 할 정도로, 김민기 대표가 1991년 대학로에 세운 소극장 '학전'(배움의 터전)은 수많은 가수와 배우들의 산실이 됐다. 그가 직접 번안·연출해 1994년 국내 초연한 록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2001년 독일, 2003년 홍콩 등 해외로도 진출했던 대표작이다. 배우 설경구, 황정민, 김윤석, 장현성, 조승우, 이정은 등과 가수 윤도현, 나윤선 등도 거쳐 갔다. 신진 가수들의 무대 역할을 하며 라이브 콘서트 문화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다. 고 김광석의 1000회 라이브, 노영심 작은 음악회 등이 학전에서 열렸다. 2004년부터는 '우리는 친구다' '고추장 떡볶이' 등 어린이를 위한 연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그러나 학전은 고인의 암 투병과 재정난이 겹치며 올해 3월 공식 폐관했다. 학전 경영을 유지할 후원 논의도 이뤄졌지만 '김민기 없이는 학전도 없다' '상업화는 안된다'는 고인의 뜻이 완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따라 뮤지컬·연극 등 작품 상연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날 김성민 팀장은 다른 연출가를 통해서라도 작품을 다시 볼 수 있겠냐는 질문에 "김민기가 연출하지 않는 '지하철 1호선'은 없다"고 단언했다. 다만 학전 이름을 유지하며 저작물 관리와 역사 보존 작업은 이어간다. 김 팀장은 "선생님이 만들어두신 학전 홈페이지에서 김민기의 과거 공연·음악 작품을 아우르는 아카이빙 작업을 해나갈 예정"이라며 "(선생님께서) 당신이 만든 작품의 대본집을 만들고 싶다는 숙제를 주고 가셨다"고 했다.

학전 자리엔 지난 17일 '아르코꿈밭극장'이라는 새 간판이 달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고인의 유지를 받아 어린이·청소년 극장으로 운영한다. 고인도 병원을 오가는 동안 짐을 뺀 학전 공간과 새로 단 간판까지 확인했다고 한다. 김 팀장은 "그때만 해도 선생님은 빨리 나아야 한단 생각으로 병(치료)에 더 집중하셨다"며 "학전을 끝내기로 한 순간 다 내려놓으셨다. 달리 하신 말씀은 없다"고 했다.

조의금과 조화도 받지 않는다. 김 팀장은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 누가 와도 '너 밥은 먹었니'라고 하셨을 것"이라며 "늘 그렇게 말씀하시던 밥 한 끼 나눠 먹으면 선생님도 가시는 길에 마음이 편하실 것 같다"고 했다. 또 "학전을 폐관하면서 십시일반 많이 도와주셨고, 선생님 노잣돈은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학전 폐관 직전까지 출신 배우·가수들이 참여한 '학전 어게인 콘서트'를 무료로 진행하면서 기부금이 조성돼 빚은 청산했다. 남은 기부금은 학전 운영비와 '김광석추모사업회'에 쓰인다.

추모의 물결은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전 총괄 프로듀서는 "역경과 성장의 혼돈의 시대, 대한민국에 음악을 통해 청년 정신을 심어줬던 김민기 선배에게 마음 깊이 존경을 표하며 명복을 빈다"고 밝혔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에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인은 24일 오전 발인 후 학전 터의 마당과 극장 등을 둘러보고 천안 공원묘원의 장지로 향해 영면에 든다.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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