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가 되고픈 피겨국대” 뮤지컬 아이스쇼 ‘더 루나’ 주인공, 임은수

양형모 기자 2024. 7. 22.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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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카페에서 만난 전 피겨 국가대표 임은수. 그는 8월 12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개막하는 뮤지컬 아이스쇼 ‘지쇼: 더 루나’에서 주인공 ‘윈터’ 역으로 관객과 만난다. 사진촬영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선수 은퇴요? 지금은 활동 안 하고 있을 뿐 …” 8월 12일 개막하는 아이스쇼 ‘더 루나’ 주인공 선수 시절보다 스케이트 타는 게 재미있어져 욕심 많은 20대 … “가장 큰 목표는 배우가 되는 것” “저, 아직 은퇴 안 했는데요?” 스콜 같은 빗줄기가 대학로 마로니에를 난타했던 오후. 대학로 예술가의 집 카페에서 마주한 임은수(21·고려대 국제스포츠학과 비즈니스 전공·3)에게선 아이돌 걸그룹의 느낌이 났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임은수는 한국 피겨 스케이팅의 간판스타였다. 대표적인 ‘리틀 김연아’ 세대로 김예림, 유영, 이해인 등과 함께 우리나라 피겨 스케이팅을 이끄는 4천왕 중 한 명으로 군림했다.  ISU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2차 대회 여자 싱글 2위(2017), ISU 챌린저 시리즈 아시안 오픈 피겨스케이팅 트로피 여자 싱글 시니어부 1위(2018), ISU 피겨스케이팅 시니어 그랑프리 5차 대회 로스텔레콤 컵 여자 싱글 3위(2018), ISU 챌린저 시리즈 아시안 오픈 피겨스케이팅 트로피 여자 싱글 시니어부 1위(2019). 

2017 종합선수권에서 쇼트 64.53점, 프리 127.45점을 받으며 총점 190점대를 돌파한 것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임은수 이전에 190점을 돌파한 한국 여자선수는 김연아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선수 시절 초고속 활주 스피드를 활용한 시원시원한 점프는 임은수의 전매특허였다.

하지만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출전이 좌절된 이후 빙판 위에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임은수의 ‘사실상 은퇴’를 입에 올렸다.

“공식적으로 은퇴를 한 건 아니에요. (선수로서) 활동을 안 하고 있을 뿐이지.” “그렇다면 다시 선수 활동을 할 수도 있다는 건가요?” “네. 언젠가는 할 생각입니다. 아직은 아니고요.” 임은수는 2019년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둔 공식 연습에서 미국 선수의 스케이트 날에 종아리를 찍히는 부상을 당했다. 해외 전지훈련 계획은 엉망이 됐고 이는 이후에도 임은수의 행보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역시 그가 선수생활을 ‘잠정적’으로 중단한 결정적 이유는 아니라고 했다.

“부상 때문에 스케이트를 쉬게 된 케이스는 아니고요. 사실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어요. 선수생활을 짧게 한 것도 아니고. 만약 진짜로 은퇴하게 된다면 기회를 만들어서 마무리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임은수. 사진촬영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임은수는 8월 12일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막을 올리는 뮤지컬 아이스쇼 ‘지쇼: 더 루나(G-SHOW : THE LUNA)’에서 주인공 ‘윈터’로 나설 예정이다.

2060년. 지구 온난화가 심해져 극심한 더위의 여름과 극심한 추위의 겨울만이 남은 가까운 미래의 루나 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한 공연으로, 임은수가 맡은 ‘윈터’는 유지원 박사와 함께 황무지를 신비의 섬을 만든 기업가 아틀라스 회장의 딸이다. 우연히 아빠가 더 큰 돈을 벌기 위해 루나 아일랜드를 없애려는 사실을 알게 된 윈터는 유지원 박사의 아들 가람과 함께 어릴 적 추억이 가득한 루나 아일랜드를 지키기 위해 페스티벌을 찾은 사람들과 의기투합한다.

스케이터들이 음악에 맞춰 스케이팅을 단막극 식으로 선보이는 갈라 스타일의 아이스쇼를 지양한 공연이라는 점이 독특하다. 빙판 위를 누비는 화려하고 박진감 넘치는 퍼포먼스는 물론 뮤지컬 배우들의 연기와 노래 14곡의 컬래버레이션을 볼 수 있다. 모든 노래는 이번 공연을 위해 작곡한 오리지널 곡들이다.

이처럼 이종 장르를 교배할 경우, 발상은 신선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두 장르가 제각기 따로 밥상을 차리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더 루나’는 아니다. 뮤지컬 배우들도 스케이트를 타고, 스케이터들도 노래와 안무를 한다. 임은수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그는 주인공이다!

“저도 공연을 하면서 노래해 본 적은 없었거든요. 가람과 부르는 듀엣곡에서는 솔로파트도 있답니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노래방 가서 꿀리지는 않겠다”고 하니 하하하, 웃었다. 그렇다고 해도 수천 명의 관객 앞에서, 조명을 받으며 부르는 노래가 혼자 또는 친구들 앞에서 부르는 노래와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임은수는 자신만만이다.

“아직까지는 관객 앞에서 노래해 본 적이 없으니까 조금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하죠. 그렇긴 하지만 일단은 아직 개막까지 시간이 남았고요(웃음), 어떻게든 열심히 해서 공연 때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피겨 스케이팅 경기를 보면 음악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어떤 음악을 즐겨 듣나요?” “인디음악 좋아해요. 시끄러운 것 말고. 팝도 좋아하고요. 하현상씨를 너무 좋아해서 많이 듣고요. 10CM(십센치)도 좋아합니다.”

임은수가 주인공 ‘윈터’를 맡은 뮤지컬 아이스쇼 ‘지쇼: 더 루나’
스케이터들과 뮤지컬 배우들도 품앗이하듯 서로 도우며 ‘영차영차’하는 분위기다. 공연의 특성상 연습도 일반 연습실과 아이스링크에서 나누어 진행되는데, 링크에서는 스케이터들이, 일반 연습실에서는 배우들이 선생님이 된다. 스케이터와 뮤지컬 배우, 둘 다 호칭은 ‘배우’다.

“뮤지컬 배우들이 스케이트를 탄다고요? 그게 하루아침에 됩니까?” “원래 몸을 잘 쓰시는 분들이라 그런지 4개월쯤 하니까 금방 타시던데요?”

두 번째 공연이라 확실히 지난해보다는 부담감을 덜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주인공의 무게감은 여전하다. “주연이다 보니 제가 실수를 하게 되면 공연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요. 하지만 부담보다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 큽니다.”

지난해 공연에서는 “선수의 마음이 좀 더 컸던 것 같다”고 했다. 올해는 조금 달라졌다. “연기에 대한 욕심이 생겼거든요.”

임은수. 사진촬영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아이스링크는 임은수에게 집만큼이나 친숙한 장소일 것이다. 하지만 선수와 배우로서 링크 위에 서는 느낌은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매의 눈을 장착한 심사위원과 임은수를 보기 위해 티켓을 구매해 입장한 관객의 시선은 다르다.

임은수는 “사실 링크장이 그리 친근한 곳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했다. 조금 놀라웠다. “선수 때는 어쨌든 평가받는 자리이기도 하고, 잘하고 싶은 마음은 똑같지만 좀 더 부담이 됐죠. 지금은 오히려 스케이트를 타는 게 더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사람들과 함께 재미있는 공연을 만들어 가는 것이 좋다. 부담도 되지만 기대가 더 크다. 공연을 보러 와 준 관객들에게 예쁘고 멋있게, 잘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부담보다 크다는 얘기였다. 박수의 질, 느낌도 다를 것 같다. 지난해 처음 아이스쇼 링크 위에 섰을 때. 첫 공연을 임은수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경기를 잘하고 나서도 박수를 받죠. 그런데 경기내용은 구체적으로 기억이 나지 않아요. 나중에 영상을 보면서 기억을 떠올리게 되죠. 그런데 공연은 다르더라고요. 저도 관객들이 보이거든요. 공연을 하면서 생각도 하게 되고요. 굉장히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피겨 스케이팅은 대표적인 개인 종목이다. 임은수는 ‘같이 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선수 때는 저만 준비하면 되죠. 제 시간에 맞추면 그만이고. 그런데 공연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보니 제가 개인적인 시간이나 스케줄을 조금 포기해야 할 때도 있어요. 반면 같이 공연을 만들다 보면 서로 의지하고, 돕는 것. 그런 것들이 있더라고요. 이렇게 함께 준비한 공연을 올렸을 때는 표현하기 힘든 뿌듯한 느낌이 있죠.”

“아이스쇼를 보면 어쩐지 선수들이 하는 것보다 더 멋있고 화려하게 보이던데요.” “경기 때는 저희에게 주어진 룰이 있죠. 잘하든 못하든 해야 하는 것들. 최대한 잘하게끔 해야 하는 것들이죠. 그러다 보니 실수도 많이 나오고요. 그런데 공연은 경쟁하는 게 아니잖아요.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데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잘하면서도 예쁘게 할 수 있는 것들, 좀 더 멋있게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게 되죠. 이런 부분으로 인해 보시는 분들께서 더 좋게 보아주시는 게 아닐까요?”

“선수가 아닌, 배우로 링크에 선 딸을 부모님께서는 어떻게 보셨을지 궁금한데요.” “제가 스케이트 타는 걸 엄마가 무척 좋아하셨어요. 계속 더 탔으면 하고 설득하시기도 했고. 최근에도 장난스럽게 ‘시합 나가 볼 생각 없냐’고 하셨어요(웃음). 그런 엄마도 언젠가부터는 제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셨어요. 너무 떨리신다고. 공연하는 제 모습을 보시고 엄청 좋아하셨죠. 선수 때보다 더 편안하고, 더 예뻐 보인다고. 이젠 엄마도 편한 마음으로 제가 스케이트 타는 걸 보실 수 있게 됐다고요.”

임은수. 사진촬영 |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20대 초반이니 하고 싶은 게 많을 시기죠. ‘꼭 하겠다’라기보다는 ‘해보면 재미있겠다’ 싶은 것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제가 욕심이 좀 많아요(웃음).  ‘더 루나’를 하면서 노래도 조금씩 배우고 있고, 링크장에서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신다 보니 코칭, 안무짜기 같은 일도 하고 있고요. 여러가지를 시도해 보고 있는데, 저도 어떻게 흘러갈지는 모르겠어요. 다양하게 시도하면서 ‘찾아가는 과정’ 안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다양한 것들 중에서도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이 있겠죠?” “그렇죠. 지금으로서는 개인적으로 제일 크게 목표를 두고 있는 것은 … 배우입니다.” “연기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네.”

스케이트화를 ‘잠정적’으로 벗은 임은수는 연기에 대한 단단한 목표와 꿈을 갖고 있었다. 현재 임은수는 미래의 꿈으로의 점프를 위한 런 스텝(Run step·급히 활주하는 것)을 하는 것만 같다. ‘지쇼: 더 루나’는 아마도 그가 배우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길 위에서 만난 첫 관문이자 등을 밀어주는 든든한 지원군일 것이다. 8월 12일부터 31일까지. 임은수의 꿈은 달리고, 뛰어오르고, 돌고, 다시 달릴 것이다. 

꿈은 이룬 자의 것이 아니라, 꾸는 자의 것이다. 누군가의 꿈을 응원하는 일은, 그의 꿈에 숟가락 하나를 얹는 것이 아니라 그의 수저에 반찬을 슬쩍 올려주는 일이라 믿는다. 임은수의 꿈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가 링크 위에 서 있는 한, 그는 어떤 모습으로든 빛나고 아름다울 것이다.

양형모 기자 hmyang03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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