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서 첫 말라리아 경보 발령...“아프리카만큼 위협적이지는 않아”
서울시가 올해 처음으로 말라리아 경보를 발령했다. 이에 따라 한국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만큼 말라리아 위험 국가가 된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말라리아에 감염될 수 있다면서도, 말라리아에 대한 극심한 공포를 조장할 필요는 없다고 입을 모았다.
말라리아는 말라리아원충에 감염된 얼룩날개모기에 물려 감염되는 질환이다. 발열과 오한, 빈혈, 구토, 설사 등이 나타난다. 대부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같은 열대 지역에서 발생한다. 지난 9일 양천구에서 감염자 2명이 발생한 데 이어 22일에도 강서구에서 2명이 군집으로 발생하며 말라리아 경보가 발령됐다.
말라리아 발생 건수 자체도 늘고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국내 말라리아 감염자 수는 2021년 294명에서 2022년 420명, 2023년 747명으로 늘었다. 올해는 20일 기준 307명이다.
◇아프리카 유행하는 말라리아와 원충 달라
전문가들은 국내에서는 말라리아에 대해 극심한 공포를 가질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아프리카에서 병을 일으키는 말라리아 원충과, 국내의 원충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하는 말라리아는 대부분 ‘열대열 말라리아’다. 말라리아 중 가장 치명적이다. 아르테미시닌, 루메판트린 같이 서로 다른 약제 2가지를 병행해 치료한다. 적절히 치료받지 않으면 신장 기능이 망가지는 신부전이나 용혈성 빈혈, 폐부종 등 심각한 합병증이 발생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치사율이 10%나 된다.
문제는 최근 아르테미시닌 내성 원충이 늘면서 치료 효과를 떨어뜨린다는 점이다.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아르테미시닌 내성 말라리아 원충은 에티오피아, 르완다, 우간다, 탄자니아 등 아프리카 전역에서 널리 발견된다. 내성을 가진 원충이 전체의 10%가 넘는다. 일부 지역은 3년 동안 1% 미만에서 20% 이상으로 급증했다. 아프리카에서 내성 말라리아 원충에 감염돼 목숨을 잃는 어린이가 3배나 늘었다.
지난 18일에는 10국 주요 말라리아 과학자 28인이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 같은 상황을 밝히며 긴급하고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쓰지 않으면 수백만명이 목숨을 잃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연구자들은 원충이 치료제에 대한 내성을 키우기 어렵도록 기존 아르테미시닌 복합 요법에 세 번째 약물을 추가하도록 제안했다.
다행히 국내 말라리아는 이보다 덜 심각한 ‘삼일열 말라리아’다. 말라리아에 감염된 모기에 물리면 2주간 잠복기를 거쳐 만성피로와 고열 등 증상이 나타난다. 기존 말라리아 치료제인 클로로퀸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며 치사율은 0.1% 미만으로 낮다. 유진홍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삼일열 말라리아는 중증으로 가는 경우는 드물다”며 “클로로퀸 같은 기존 약제로도 치료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로 말라리아 모기 확산 가능성
과거에도 국내에서는 말라리아 감염자가 매년 수백명씩 발생했다. 대부분 경기 북부와 강원도 등 군사분계선 인근 주민과 군인이었다. 일각에서는 기후변화로 고온다습한 폭염이 일찍 시작하면서 말라리아 모기가 서식하는 범위가 넓어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전문가들은 아직 그럴 가능성은 적다면서도 향후 기후변화로 인한 감염병이 증가할 위험을 경고했다.
국가 말라리아퇴치사업 연구과제를 수행 중인 김종헌 성균관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서울에서 말라리아 감염자가 여럿 발생한 원인은 역학조사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감염자가 경기도를 지나가기만 해도 경기도에서 말라리아에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지금은 감염자가 말라리아 위험 지역에 어느 시간대에 얼마나 머물었는지까지 따진다. 그래서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으면 거주지를 기준으로 감염지를 추정한다. 이 때문에 최근 서울에서 감염자가 많이 발생한 것처럼 보인다는 설명이다.
김 교수는 “기온이 오르면서 모기가 서식하는 기간이 길어질 수는 있으나 당장 기후변화로 인해 국내 말라리아가 많아졌다고 확정하기는 어렵다”며 “기후변화와 말라리아 감염자 증가 간에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향후 기후변화로 인해 말라리아 같은 감염병이 국내에서도 자주 발생할 위험은 있다. 유진홍 교수는 “기온이 올라가면 소화기계통 감염병과 말라리아 등 모기가 옮기는 감염병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며 “향후 기후변화로 말라리아 뿐 아니라 뎅기열 같은 절지동물 매체 감염병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 동물들이 서식하는 분포가 넓어지면 그만큼 인간이 감염될 위험도 커지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말라리아 모기는 주로 저녁 시간에 활동한다며 초저녁 이후에는 야외 활동을 자제하고 모기 기피제를 사용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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