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직 변호사의 창의와 혁신] 〈30〉21세기 민란, 암호화폐의 창의
왕조시대 민란을 보자. 정부시스템의 해악이 극에 달하면 일어난다. 집을 떠나 오합지졸 도적떼가 된다. 정부와 싸우고 자기들끼리 싸운다. 힘을 갖추면 정부와 협상에 나선다. 군사적 열세로 관군에 진압된다. 리더를 만나 체계를 갖춰 백성의 마음을 읽으면 왕조를 바꿔 새 시대를 연다. 암호화폐는 미국 중심의 금융시스템에 반기를 들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민란이다. 국가관이 투철한 사람은 불법으로 규정하고 교활한 정치인은 표로 연결한다.
2008년 미국 월가의 합법적 투기꾼들은 돈벌이에 눈이 멀어 경기 흐름을 읽지 못했다. 집값이 계속 오른다는 복음만 퍼트렸다.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고 집을 사게 했다. 그 담보대출채권을 묶어 만든 파생금융상품을 팔았다. 집값 상승이 멈추고 급락하자 사람들은 빚을 갚지 못해 파산했다. 금융기관도 연쇄 도산하며 세계를 위험에 빠트렸다.
그해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는 '비트코인:개인간 전자화폐 시스템'이라는 짧은 논문을 냈다. 국가 금융시스템이 신용통화 등 화폐발행을 남발해 금융위기를 일으켰다고 비판했다. 정부개입 없는 개인간 비트코인 발행과 거래를 위한 암호화폐시스템을 제안했다. 블록체인기술로 이중지불과 해킹, 위·변조를 막아 거래 안전성과 신뢰성을 확보했다. 블록체인은 오픈소스 기술로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이유 없이 잠적한 제안자 사토시 나가모토에게 얽매일 필요도 없다. 누구나 다양한 암호화폐를 만들고 신규 사업모델과 결합할 수 있었다. 화폐로서의 노력도 했다. 커피 등 상품 구입에 쓰는 시도를 했다. 달러 등 기축통화에 연계해 가치안정성을 높이기도 했다.
폐해도 많았다. 암호화폐는 실물이나 권리를 갖지 않고 심리에만 의존해 가치 등락폭이 너무 컸다. 교묘한 사업계획서로 사람을 꼬드겨 갈취하는 등 범죄를 저지르고 자금세탁에 이용했다. 투자자 손실과 피해가 늘었다. 실물경제와 관련성이 낮아 통화량에 편입되면 인플레이션을 일으키거나 정부 통화정책 실패 위험을 높인다. 정부가 암호화폐를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다. 정부는 암호화폐를 뺀 블록체인 산업을 육성한다고 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기존 시스템을 블록체인으로 대체하거나 중복 도입하는 것은 비용만 많이 들고 효과가 없다.
그렇다고 많은 사람이 암호화폐를 보유하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었다. 투자자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가상자산에 편입하는 제도화를 택했다. 특정금융거래 정보법(자금세탁 방지), 가장자산이용자 보호법(예치금 보호, 시세조종 제재, 암호화폐거래소 규제)이 그것이다.
암호화폐는 전자화폐, 가상화폐, 토큰, 가상자산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린다.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종류도 많고 특징도 다르다. 개방성과 다양성, 발전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암호화폐가 재화 또는 자산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금, 은과 같은 실물이 없고 지식재산처럼 권리가 없다면 기대하기 어렵다. 네덜란드 튤립 광풍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기발한 사업계획과 연계할 수 있다. 디지털 사진이 필름 사진을 대체하듯 상품권, 기프티콘, 포인트, 멤버십을 대체할 순 없을까. 회사의 수익배분 등 주식, 지분과 유사한 지위를 가질 수도 있다. 화폐로서의 가능성은 어떤가. 포기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기존에 존재하는 오프라인, 온라인 물건을 산다면 기존 통화로 충분하다. 메타버스 등 새로운 가상경제 영역이면 어떨까. 그곳의 신상품이라면 암호화폐를 지급수단으로 허용하는 실험을 해도 되지 않을까.
암호화폐의 출현은 글로벌 금융경제 시스템에서 민간역량이 국가역량을 넘어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민간은 암호화폐가 거품경제가 아니라 실물경제가 될 수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암호화폐의 창의가 공동체에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 싹을 꺾지 말자. 기존의 틀에 끼워 맞추기만 하는 억지 규제는 미래를 위한 사다리 걷어차기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디지털 생활자'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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