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앞세운 연금개혁 지연…정치적 부담 피해가기? [왜냐면]
주은선 |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
국회에서 문턱을 넘기 직전이었던 연금개혁은 22대 국회로 넘기자는 대통령의 말 이후 열 발자국은 후퇴했다. 정당들이 오랜 대립을 넘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를 같이 올리는 연금개혁 방향으로 협의에 나선 것은 이해관계자와 시민대표단이 참여한 연금개혁 공론화 덕분이었다. 공론화에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과 보험료 인상이 모두 필요하다는 결론을 도출했다. 하지만 정부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던 연금개혁 기회를 날려버렸다.
정부와 여당은 연금 구조개혁을 내세우고 있다. 구조개혁을 하면 “지속가능한 연금제도를 만들 수 있고, 미래세대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고 한다. 국회의 지난 연금개혁 협의가 구조개혁 논의가 아니었으므로 문제라 한다. 그렇다면 연금개혁 무산에 대한 아쉬움은 날려버리고 정부의 구조개혁을 기대하는 것이 마땅할까?
연금개혁 논의에서 다룰 핵심은 낮은 노후소득 보장 수준, 향후 재정안정 문제다. 초고령사회에서 가장 큰 위험은노후빈곤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한국의 노인빈곤율을 빠르게 떨어뜨릴 필요가 있다. 이 와중에 40, 50대의 미래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지금보다더 떨어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보험료율을 차츰 올려야 정부의 국고 지원 등과 함께 연금 지출의 빠른 증가에 대응할 수 있다. 다수 국민에게 중심 노후소득 보장제도인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여 보장을 안정적으로 강화하고, 보험료율을 높여 수입을 늘리는 것은 일종의 정공법이었다.
궁금해진다. 이 정공법을 걷어차면서 정부·여당이 내세운 구조개혁은 도대체 무엇이길래 노후소득 보장과 재정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하는 것일까? 게다가 재정안정과 미래세대 부담 완화라는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 것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고 하니 구조개혁은 마법 지팡이인가 싶을 정도로 신기하다.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확보하는 해법을 달리 찾을 수 있다니 정부·여당의 구조개혁안에 대한 궁금증은 더 커질 수밖에.
그런데 그 구조개혁 방안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정부·여당은 구조개혁이 정답이라고 하는데 정작 그 답을 알려주지 않는다. 설마 마련하지도 않은 안을 정답이라고 선언한 것은 아닐 테다.
정부에서 말하는 구조개혁안이 기초연금이나 퇴직연금에 관한 것이라면 그것은 이미 공론화에서 다룬 바 있다. 공론조사에서 기초연금받는 노인을 줄이고 급여액을 차등화시키는 방안은 시민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보험료를10년 이상 내야 받을 수 있는 국민연금액이 계속 떨어지는 와중에 보험료를 내지 않고도 받는 기초연금을 높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더욱이 현재 기초연금은 많은 노인에게 넓게 제공됨으로써 낮은 국민연금을 보완해주고 있다.
또한 국민 중 일부만 가입하고 대부분 일시금으로 해소해 버리는 퇴직연금이 노후보장 역할을 하게 만들자는 것은 구조개혁안이 아니다. 이는 국민연금 부분 개혁이 이뤄져도 해야 할 일이다. 정부가 퇴직연금에 국민이 제대로 가입할 수 있게 만들고, 사업자인 은행과 금융회사에 규제를 강화할 수 있을 것인가? 20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던 퇴직연금이 향후 20~30년 사이 갑자기 노후보장 역할을 하게 될 것인가? 공론화에서 다수 시민은 이를 낙관하지 않았다.
한편 국민연금의 세대별 분리, 국민연금을 철저히 낸 만큼 받는 제도로 만드는 구조개혁안이 나온 적 있지만, 그 중 어느 것도 구체적이지 않았다. 초고령화 사회에서 세대 간 연대를 강화해도 모자랄 판에 연금을 세대별로 분리하는 것은 제도의 지속가능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또한 국민연금에서 재분배 기능을 떼어낸다면 다수의 노후보장은 더 불안해지는데 이를 기초연금으로 다 메울 수는 없다.
여태의 구조개혁안들로는 노후보장과 재정안정이란 핵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다른 묘책이 있는 것일까? 어떤 대안이든 중요한 것은 연금제도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구조개혁을 한 나라들에서 모든 노인에게 기본 생활비 이상의 최저연금액을 보장하는 까닭이 이것이다. 이에 관한 우리 정부의 구조개혁 원칙은 알려진 바 없다.
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어느 정권이든 부담스러워한다. 구조개혁론이 임기 중 보험료 인상의 정치적 부담을 피하는 핑계가 아니길 바랄 뿐이다. 구조개혁이란 마법 지팡이가 국민 설득과 타협을 이뤄내는 능력과 리더십을 대신할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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