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노조까지…"임금 6.4% 인상" 요구에 병원은 '울상'
전공의 집단 이탈로 경영난에 직면한 병원이 노동조합(노조)과의 임금 단체 협상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지만, 의사 인력난으로 간호사의 역할이 확대된 상황에서 임금·최저시급 인상 등 노조의 요구를 마냥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협상 결과에 따라 노조가 파업에 나설 경우 실제 '문 닫는 병원'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다만, 현실적으로 노조가 병원 셧다운(폐쇄)을 부르는 단체행동에 나서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22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은 지난 4월 임시대의원대회를 열어 2024년 교섭 요구안과 교섭 방침, 투쟁 계획을 확정했다. 올해 노조가 사용자(병원)에게 요구한 임금 인상률은 6.4%, 최저임금은 1만2760원이다. 이 밖에 노조는 주 4일제와 간접고용 문제 해결, 조속한 진료 정상화와 불법 의료 근절 등도 아울러 요구했다.
현재 노조는 산별중앙교섭과 함께 병원별 현장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12일에는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5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인 가운데 '총력투쟁 결의대회'를 열어 세를 과시했다. 협상 불발 시 8월 13일 집단쟁의조정 신청을 거쳐 같은 달 29일 산별 총파업 투쟁에 돌입할 방침도 밝혔다.
간호사·의료기사 등 의사 외 직군으로 구성된 각 병원 노조는 의정 대립으로 인한 경영 위기를 애꿎은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데 불만이 크다. 최희선 보건의료노조 위원장은 결의대회에서 "의사들의 집단 사직과 휴진은 명분이 없다. 그러면서 사용자(병원)는 임금체불과 구조조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며 "어떤 노동자가 가만히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의료공백을 메우기 위해 희생·헌신하는 노동자에게 피해를 떠넘길 게 아니라 정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 노조의 일관된 입장이다.
그러나 경영난에 직면한 병원, 특히 전공의 비율이 높은 대학병원은 노조가 제시한 "6.4% 임금 인상"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환자가 급감해 의료수익이 수백억~수천억 원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 예상되는데 한꺼번에 인건비를 올리자니 경영 위기가 악화할 게 뻔하기 때문이다.특히, 올해는 진료지원(PA)간호사 업무가 병원에 없어서는 안 될 수준까지 늘었고 병동 통폐합, 무급휴가 등에 내몰린 간호사·의료기사 등이 "왜 의사 파업의 희생양이 돼야 하느냐"며 반발하고 있어 고민이 더 크다.
서울의 A대학병원 관계자는 "올해 노사 협상의 화두는 PA간호사다. 우리 병원에만 100여명이 넘는 PA간호사가 있는데 교섭 실패를 이유로 떠나기라도 하면 그야말로 진료가 마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노조는 외사 외 간호사 등의 업무 부담이 커졌고 불법적인 진료에 내몰리고 있다며 병원을 압박하는데 사실 맞는 이야기"라며 "간호법이라도 빨리 통과돼야 협상의 여지가 넓어질 텐데 정부와 정치권이 속도를 내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단, 노조가 요구하는 임금 인상률이 온전히 적용될 가능성은 작다는 게 중론이다. 지난해 보건의료노조는 임금 10.73%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까지 실행했지만 대다수 병원이 3%대로 임금 협상을 타결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올해 전공의들이 이탈했지만 상급종합병원을 제외한 종합병원 등은 오히려 환자가 몰려 수익이 늘었다. 지금까지의 낮은 처우를 개선할 필요가 있고 실제 그렇게 만들겠다는 의지를 임금 인상률을 통해 선언적으로 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병원별로 교섭이 원만하게 이뤄지는 곳이 적지 않아 지난해와 같은 '전면 파업'은 현실화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수도권 B대학병원 관계자는 "경영 상태가 나쁘다는 데에 노조와 병원의 공감대가 형성돼있다. 협상도 원만하게 타결될 것 같다"고 전했다.
일부 의료 커뮤니티에는 경영난 해소 등을 위해 노조가 병원을 떠난 전공의 등 의사에게 구상권을 청구할 것이라는 내용이 공유되고 있다. 연세의료원 새노동조합이 붙인 대자보에 "정부 재정지원에도 부족한 부분은 병원을 떠난 의사를 상대로 구상권 청구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란 문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연세의료원 새노동조합은 한국노총 세브란스병원 노조와는 별개의 조직으로 약 500명의 조합원(세브란스병원 노조는 약 5500명)이 소속돼 있다.
일각에서는 나아가 노조가 '복귀 전공의'에게 구상권 청구를 검토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라는 게 노조의 입장이다. 연세의료원 새노동조합 관계자는 "정부와 의사 집단이 일으킨 손해를 직원을 옥죄어 채우려 하지 말고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미다. 노조는 구상권 청구의 주체가 되지 않는다"며 "대자보는 의료대란이 일어난 초기에 붙였는데 이제 와서 전공의 복귀와 연관 지어 거론되는 게 당황스럽다. 이것 때문에 전공의가 복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황당한 일"이라고 일축했다.
박정렬 기자 parkj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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