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대륙의 실수'는 옛말…차이나 테크의 역습

장규호 2024. 7. 22.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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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그래픽=전희성 한국경제신문 기자


중국 전기차 기업 BYD의 중형 세단 씰(SEAL)이 한국 시장에 곧 상륙한다고 합니다. 국내에서 주행 실험 중인 씰을 봤다는 글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오면서 알려졌죠. 처음 보는 차라고 해도 중국산이라면 관심을 끄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 테슬라를 추격하는 BYD라는 인식이 확산돼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아졌어요. 영국 자동차 회사 로터스를 인수한 중국 지리차의 한국 프리미엄 전기차 시장 진출도 초읽기에 들어갔습니다.

한 수 아래라 여겨졌던 중국 제조업이 전자제품, 조선 등 노동집약산업뿐 아니라 최첨단 분야에서 한국을 맹추격 중입니다. 기술력만큼은 미국 턱밑까지 갔다는 평가도 많고, 한국을 추월한 분야도 속속 나옵니다. 중국 전자업체 샤오미의 제품을 두고 한때 ‘대륙의 실수’라고 말하기도 했죠. 생각보다 뛰어난 품질에 놀라면서도 기술력을 살짝 얕보는 듯한 표현이었는데요, 이제는 옛말이 됐습니다. 전기차, 반도체, 로봇, 인공지능(AI) 서비스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 제조업이 한국은 물론, 일본도 앞지르고 있습니다. 가히 ‘차이나 테크의 역습’이라 부를 만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첨단산업 수출 규제, 부동산 경기 침체와 청년실업, 사회주의 이념 강화 등으로 경제가 어려움 속에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첨단산업은 어떻게 성장세를 이어가는지, 새로운 국가 전략이라는 ‘신품질 생산력’과는 어떻게 연관되는지 4·5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턱밑까지 추격한 중국의 첨단 기술력
'제조강국'서 '신품질'로 전략 업그레이드

한경DB

중국이 세계 슈퍼파워로 우뚝 일어선 것을 ‘대국굴기(大國起)’라고 합니다. 강대국으로 도약했다는 뜻이죠. 그런데 요즘엔 산업 분야로 좁혀 ‘테크굴기’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중국의 첨단산업이 분야별 세계 1위에 도전장을 내고 있다는 비유입니다. 해가 다르게 급성장하는 차이나 테크(중국 첨단산업)의 현장을 잠깐 살펴보죠.

AI 기술력, 미국과 불과 1년 차

가장 뜨거운 생성형 인공지능(AI) 분야에서 중국의 대형언어모델(LLM) 기반 기술은 미국과 1년 정도밖에 시차가 나지 않습니다. 중국의 구글이라 할 수 있는 바이두의 AI 챗봇 ‘어니봇’ 사용자 수가 작년 8월 출시 이후 10개월 만에 3억 명을 돌파한 게 그런 평가의 배경입니다. 명령만 내리면 최대 1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어주는 미국 오픈AI의 ‘소라’가 올 초에 화제가 됐는데요, 이 서비스가 정식 출시되기도 전에 중국의 콰이쇼우라는 소셜미디어 회사가 생성형 AI ‘클링’의 동영상 숏폼 공개 테스트를 시작했습니다. AI를 학습시키는 데 쓰이는 토큰(말뭉치)은 AI 칩의 성능을 보완해줄 수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네이버가 2021년 선보인 한국 최초 LLM에 5600억 개의 토큰을 투입할 때 중국 텐센트는 자체 LLM 모델인 훈위안에 최근까지 3조 개 넘게 토큰을 투입했습니다. 투자 규모도 마치 인해전술을 펴는 것 같습니다.

반도체는 첨단 초미세 공정에서 ‘기술 독립’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 SMIC는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과 데이터센터에 들어갈 5나노미터급(1nm=10억분의 1m) 칩을 곧 양산한다는 소식입니다. 미국이 반도체 장비 수출 규제를 시작한 2020년 9월, SMIC는 14나노 공정에 도달했다는 사실과 비교하면 놀라울 정도입니다. 반도체 칩은 나노미터급 숫자가 낮을수록 고부가가치 제품입니다. 이 회사는 지난 1분기 기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세계 시장의 5.7%를 점해 세계 3위로 도약했습니다. 중국은 AI 반도체에 필수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자체 개발에도 박차를 가합니다.

또 액정표시장치(LCD) 시장을 석권한 중국 업체들이 이제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같은 최첨단 기술에서도 한국을 추격 중입니다. 디스플레이는 핵심 전자부품이기 때문에 올레드까지 중국 중심 공급망이 형성되면 세계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이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옵니다. 2차전지 회사 CATL의 전기차 배터리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6.8%로, 2~4위 기업의 점유율을 합한 것보다 큽니다. 미래 에너지원으로 불리는 수소 분야에서도 중국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한데, 중국의 수소 생산은 세계 전체의 45%를 점하며 1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신품질 생산력’을 새 지도 이념으로

중국의 최첨단 기술 개발은 국가전략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어요. 그동안은 중국을 제조업 최강국으로 만들자며 ‘중국 제조 2025’란 전략을 밀어붙였는데요, 이제는 ‘신품질 생산력’이란 새로운 슬로건으로 바꾸고 있습니다. 작년 9월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방을 시찰하며 처음 언급하고, 지난 3월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兩會)의 핵심 키워드로 등장한 게 바로 신품질 생산력입니다. 이는 대량 자원 투입에 의존하는 전통적 생산력이 아닌, 기술혁신이 주도하는 생산력을 갖추자는 의미입니다. 당연한 얘기인 듯하나, 첨단기술을 기반으로 나라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미국의 기술 봉쇄와 패권 견제를 뚫어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집권 3기를 맞은 시진핑 체제의 새 지도 이념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됩니다.

중국은 부동산 시장과 소비가 침체돼 있는 데다 청년실업도 심각한 수준이어서 경제성장률 목표치 5%대를 달성하기 쉽지 않습니다. 지난 1분기에 5.3%의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2분기엔 4.7%로 부진했습니다. 그 때문에 과학기술 혁신을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신품질 생산력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성장세를 유지하려는 겁니다. 시진핑 주석이 지난 6월 과학자 시상식에서 “10년 동안 칼 한 자루만 갈겠다는 결심으로 과학기술 강국을 건설해달라”고 주문했을 정도죠. 좀 더 구체적으로는 전자기기 등을 주변 사물과 연결하는 스마트 커넥티드, 신에너지차(전기차·하이브리드 차), 수소에너지, 신소재, 혁신신약, 바이오제조, 상업용 항공우주, 양자 기술 등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중국 첨단산업이 얼마나 발전했는지 체험한 바가 있다면 친구들과 공유해보자.

2. 중국 대외전략의 키워드인 대국굴기와 도광양회의 개념을 공부해보자.

3. 반도체 기술 자립을 위해 중국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알아보자.

미국 제재가 되려 '기술 독립' 자극해
'원조 제조강국' 한국에 주는 시사점 커

연합뉴스

차이나 테크가 우리나라는 물론, 기술 선진국들을 맹렬하게 추격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이는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텐데요, 하나씩 조명해보겠습니다.

먼저 미국 명문대 출신의 기술개발 인력들이 쏟아내는 특허 출원과 연구논문이 압도적입니다. 영국 과학 학술지 <네이처>의 ‘2024 네이처 인덱스’는 지난해 세계 최상위 학술지 145종에 실린 논문 7만5000여 편을 분석해 각국의 기술 영향력을 점수화했습니다. 여기서 중국은 미국을 뛰어넘어 처음으로 세계 1위에 올랐습니다. 한국은 8위에 머물고 있어요. 또 인공지능(AI) 분야의 연구 수준·특허·정부 전략·민간 투자 등을 평가하는 영국 토터스인텔리전스의 ‘글로벌 AI지수’ 평가에서 중국은 61.5점으로, 미국(100점)에 이어 2위를 차지했습니다.

강력해진 중국내 기술 생태계

다음으로 중국이 자체 구축한 기술 생태계의 경쟁력입니다. 미국이 첨단기술 수출 규제를 가하자 중국의 산업체·대학·연구소는 ‘기술 독립’을 목표로 한몸처럼 뭉쳤습니다. 예를 들어, 반도체 굴기로 중국산 AP(모바일 기기용 반도체 칩셋)가 개발되자, 화웨이가 이를 탑재한 스마트폰으로 부활한 게 대표적이죠. 화웨이는 올 1분기 중국 내 점유율 15.5%를 기록하며 애플을 제치고 처음으로 중국 내 1위 스마트폰 제조사가 되었습니다. 2019년 미국이 화웨이의 5G(5세대) 통신장비를 제재할 때만 해도 상상하기 힘들었던 일이지요. 엔지니어들은 AI 기술 개발을 위해 엔비디아의 오픈 플랫폼인 ‘쿠다(CUDA)’를 활용하는 게 일반적인데, 최근엔 바이두 등 중국 업체가 개발한 도구도 많이 활용하고 있어요.

중국은 ‘신산업의 요람’이라고 부를 만큼 14억 명 인구와 전 국토가 하나의 실험실이 되고 있습니다. 우한에서 로보택시(자율주행택시)가 운행하는 자율주행 도로는 총연장 3378km에 이릅니다. 도시 전체가 자율주행차의 실험실인 셈이죠. 2016년 뒤늦게 자율주행 기술개발에 들어간 바이두도 그간 베이징 등에서 1억 km 주행 데이터를 축적했다고 합니다. 여기에 화웨이와 샤오미의 자율주행 데이터를 합하면 미국 기업들에 뒤지지 않는 수준입니다. 수도 베이징은 도심의 하이뎬공원을 AI 공원으로 꾸몄습니다. 여기에선 안면인식 기술을 이용한 스마트 자판기, 자율주행버스 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마어마한 투자 규모입니다. 중국은 반도체 자립 펀드를 무려 270억달러(약 37조4000억원) 규모로 조성해 반도체 장비의 80%를 중국산으로 국산화하겠다고 밝혔습니다. AI 연구개발 투자액도 화웨이, 바이두, 텐센트를 합하면 작년 2496억위안(약 47조5000억원)으로 한국의 삼성전자, LG전자, 네이버의 연구개발 투자액을 합산한 34조원을 능가합니다.

유연하고 꾸준한 ‘선택과 집중’

중국의 새 국가전략인 ‘신품질 생산력’은 기존 제조 강국의 기초 위에 첨단 분야 경쟁력을 더하겠다는 겁니다. 제조업에서 손을 뗀 선진국들은 코로나19 사태 때 방역마스크 하나 생산할 공장이 없어 쩔쩔매기도 했습니다. 이때 제조업 기반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확인할 수 있었죠. AI 시대에도 제조업의 기초는 중요합니다. AI와 로보틱스 기술이 제조업의 미래를 바꿔놓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조업 공정에서 데이터의 양이 늘어나고 있어 AI 기술 등을 접목하면 제조업의 혁신을 이룰 수 있는데, 중국은 이를 내다보고 있는 거죠.

신품질 생산력은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기술 선도자(first mover)로 도약하겠다는 다짐입니다. 또 공급망을 고도화하고, 첨단산업 클러스터를 구축하고, 히든챔피언(우량 강소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겁니다. 이쯤 되면 뭔가 많이 들어본 말 같지요? 이는 우리나라가 근래 10여 년 동안 강조하고 추진해온 산업정책의 핵심 키워드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실행할 것인가 하는 점입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면 사회주의 국가의 특성상 꾸준히 투자하는 게 중국의 강점입니다. 발전 가능성이 높고 경쟁력 있는 신산업이라 판단되면 시장이 성숙할 때까지 규제를 미루는 융통성도 힘을 보탭니다. 우리나라는 이런 부분에서 중국보다 불리한데요, 선택과 집중에서 유연함과 꾸준함을 보이는 중국의 모습은 우리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NIE 포인트

1. 중국이 AI 강국으로 부상하게 된 배경에 대해 공부해보자.

2. 테슬라의 로보택시 공개가 연기됐고, 애플은 전기차 개발을 중단했다. 중국의 자율주행 기술은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발전했을까.

3. 기술 선도자가 되기 위한 우리나라의 기업 전략과 정부 정책을 살펴보자.

장규호 한경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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