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반 고흐라니” 총격이 키운 밈의 무의식…당신 머릿속엔?

2024. 7. 22. 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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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자화상·매트릭스 네오 합성 밈 유행
총격 당시 사진도 들라쿠르아 작품 구도 비슷
위대한 미국·적임자 트럼프 이미지 재생산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트럼프 반 고흐.’ 총격으로 관통상을 입은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오른쪽 귀에 거즈가 감싸져 있는 화면입니다. 스스로 오른쪽 귀를 자른 빈센트 반 고흐가 그린 자화상을 입혀 만든 밈(meme)인데요. 이뿐만이 아닙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주인공인 네오가 총알을 피하는 장면에 트럼프를 합성한 밈도 눈에 띕니다.

밈이란 인터넷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퍼져나가는 각종 패러디 콘텐츠를 말합니다. 그런데 트럼프 총격 사건 이후 급격히 늘어난 밈을 따라가다 보면, 한 가지 문화적 요소가 뚜렷하게 읽히는데요.

바로 무의식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트럼프’ 이미지 입니다. 그저 재미를 위해서 자유롭게 놀면서 공유되는 밈이라도 결국 그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부수적 효과는 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훨씬 강력합니다. 벌써 우리는 인상주의 거장 고흐와 인류를 구원하는 네오가 된 트럼프를 떠올렸거든요. 트럼프 대통령 선거 캠프가 만들어낸 전략적 마케팅이 아닙니다. 자발적으로 창조된 수많은 밈이 우리의 사고를 암묵적으로 그의 영웅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죠.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Reddit)]

밈이라는 개념을 만든 사람은 영국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입니다. 그는 1976년 쓴 ‘이기적 유전자’에서 문화가 어떻게 진화하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용어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그는 “밈이 모방이라 할 수 있는 과정을 거쳐 뇌에서 뇌로 건너다닌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를 지금의 상황에 대입해 생각해 보면, 트럼프 피격 사건의 핵심 요소가 모방을 통해 사람들 뇌에서 뇌로 건너가 ‘현재’를 만든다는 의미로 풀이되는데요.

이 즈음에서 더 강력한 이미지를 보여드릴게요. ‘이 사진 한 장으로 대선 레이스는 끝났다’는 평까지 나올 정도이기 때문이죠. 바로 선거 유세 도중 총탄을 맞은 트럼프가 “싸워라(fight)”라고 외치며 주먹을 휘두르는 장면입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버틀러에서 대선 유세 도중 총격으로 오른쪽 귀를 다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경호 요원들에게 둘러싸여 연단을 내려오면서 지지자를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 있다. [AP연합]

AP통신 사진기자가 트럼프 바로 앞 연단 아래에서 찍은 한 장의 사진에는 필요한 모든 감정이 집약돼 있습니다. 사진의 기본 구도인 삼등분할, 피라미드 형태의 구성, 아래에서 위로 인물을 올려 찍은 카메라 시선, 경호원들의 만류에도 소용없어 보이는 피 흘리는 트럼프의 포효, 그 뒤로 보이는 파란 하늘에 펄럭이는 성조기까지.

주제를 더 장엄하고 숭고하게 만드는 완벽한 이 사진 한 장에는 트럼프의 대선 승리를 엿보게 하는 상징적인 요소가 이처럼 가득합니다. (물론 다른 쪽에서 보면 지지자들에게 전투 명령을 내리는 모습처럼 보일 겁니다.)

그런데 이 사진과 놀랍도록 흡사한 그림이 있습니다. 프랑스 낭만주의 화가 외젠 들라쿠르아의 작품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입니다. 7월 혁명 당시 ‘영광의 3일’을 주제로 한 작품인데요. (공교롭게도 트럼프 총격 사건이 벌어진 날이 7월 13일(현지 시간) 입니다.) 7월 혁명은 1830년 절대 왕정 복원을 꿈꾸던 샤를 10세를 몰아내고 루이 필리프가 왕위에 오르며 입헌군주제의 기틀을 마련하는 중요한 시대적 사건입니다. 무엇보다 세상을 바꾸길 바라는 시민들의 욕망을 담아내기 위해 들라쿠르아가 사용한 장치가 트럼프의 피격 사건 직후 찍힌 사진의 각 요소와 일치하죠.

외젠 들라쿠르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캔버스에 유채, 260x325㎝, 1930. [위키피디아]
AP통신의 조 로즌솔이 1945년 2월 23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이오지마섬 스리바치산 정상에서 찍은 ‘이오지마에 성조기를 올리는 해병들’이라는 제목의 사진. [AP연합]

한편으로는 2차 세계대전의 종식을 알린 ‘이오지마 성조기’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미군은 1945년 2월 23일 일본 이오지마섬을 점령한 후 스리바치산 정상에 성조기를 게양했습니다.)

이러한 사실로 미뤄보면, 단 사진 한 장으로 ‘성조기로 대표되는 위대한 미국과 이를 이끌 적임자는 바로 트럼프’라는 이미지가 구현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실제로 타오바오 등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총격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등의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기도 하고요.

총상을 당한 오른쪽 귀에 거즈를 덧대고 나타난 트럼프. [게티이미지]
트럼프의 모습을 따라하는 지지자들. [X(옛 트위터)]

당시 고흐도 잘린 귀로 인해 무명의 작가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랐습니다. 한 전시장에 둔 귀 모형이 고흐의 귀가 맞는지를 두고, 그와 관련된 무성한 소문이 관람객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기 시작했거든요.

트럼프 피격 사건으로 파생된 강력한 이미지는 과연 그를 어디까지 ‘확대 재생산’ 할까요. 피습 이후 일주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트럼프 피격 관련 키워드로 도배된 언론, 커뮤니티, SNS 등 각종 미디어가 심상치 않아 보입니다. 벌써부터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귀에 거즈를 붙인 패션이 최신 트렌드로 떠오르는 모양새라는 점도 말이죠. 지금 당신의 머릿속 트럼프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나요.

dsu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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