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만큼 다 했다”…학전 이끌고 스타 발굴한 김민기의 마지막 말
“가족 등 지인에 ‘고맙다’고 전해”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할 만큼 다 했다.”
시대에 맞선 거리마다 울려퍼진 노래를 만든 저항의 상징이었고, 대한민국 공연 예술의 산실 학전을 이끈 대학로 소극장의 상징이었던 김민기의 마지막 말이었다.
지난 30년간 무수히 많은 음악인과 배우 등 후배 예술인을 배출한 가수, 작곡가, 연출가 김민기가 위암 투병 중 2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73세.
김민기의 조카인 김성민 학전 총무팀장은 22일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댁에서 요양 중이던 선생님(김민기)의 건강이 지난 19일부터 조금 안 좋아졌고 20일 오전 응급실을 찾았다”며 “병원에 갔을 때부터 상태가 좋지 않아 다음 날 오후 8시 26분에 돌아가셨다”고 밝혔다.
그럼녀서 “갑작스럽게 떠나셨지만 3∼4개월 전부터 가족 등 가까운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하셨다”며 “학전과 관련해선 ‘지금 끝내는 게 맞다. 나는 할 만큼 다 했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김 팀장은 또 “선생님은 배우 설경구, 장현성 씨가 와도 ‘밥은 먹었냐’고 하실 분”이라며 “(평소 성격을 미뤄)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조의금과 조화를 받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민기는 1951년 전북 익산에서 10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경기중·고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 시절부터 미술학도가 되기 위해 매진했지만 서울대 음대를다니던 셋째 누나의 영향으로 우쿨렐레와 기타를 만지며 음악을 접했다. 서울대 미대 회화과에 입학한 뒤엔 대학 동기와 도비두라는 이름의 포크 밴드를 결성해 활동했다. 그의 이름이 세상에 나온 것은 1970년 ‘아침 이슬’, ‘가을편지’, ‘꽃 피우는 아이’ 등을 내놓으면서다. 당시 고인은 양희은과 포크 동아리 ‘청개구리’에서 만나 공동 작업을 했다. 솔로 1집을 발표한 이후엔 싱어송라이터로도 두각을 보였다.
고인의 음악은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대학과 거리마다 불리고 있지만, 그의 음악이 세상에 불리지 못한 시기는 길었다. 1972년엔 서울대 문리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꽃 피우는 아이’를 가르치다 경찰에 연행, 이 곡은 금지곡이 됐다. 1975년 초엔 유신 반대 운동에서 김민기의 노래들이 불려 보안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당시 ‘아침 이슬’은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아침이슬이 담긴 솔로 1집도 판매 금지 조치를 받았다. 1977년 봉제 공장에서 일하며 ‘상록수’를 작곡해 발표했고, 1984년에는 민중가요 노래패 ‘노래를 찾는 사람들’을 결성해 프로젝트 음반을 발매했다.
양희은이 노래한 ‘아침이슬’은 대학생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며 ‘민주화의 상징’이 됐다. 1987년 민주항쟁 당시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선 언제나 ‘아침이슬’이 불렸다.
공연계에 입문한 것은 1970년대다. 1973년 초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무대에 올랐다.1978년엔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시작으로 1983년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등을 연출했다.
공연계에 입문한 것은 1970년대다. 1973년 초엔 김지하의 희곡 ‘금관의 예수’의 극음악을 작곡해 무대에 올랐다.1978년엔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시작으로 1983년 연극 ‘멈춰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 등을 연출했다.
공연계에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것은 1990년대가 돼서다. 1993년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가 각본을 쓰고 비르거 하이만이 작곡한 록 뮤지컬인 ‘지하철 1호선’의 한국어 번안과 연출을 맡아 학전에서 올렸다. 2001년엔 독일과 중국, 일본에서 해외 투어 공연을 열었고, 2007년에 독일문화원에서 수여하는 괴테 메달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윤이상과 백남준 이래 세 번째 수상자였다. 이 공연은 2023년까지 8000회 이상, 7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오래도록 ‘저항가요’와 ‘민주화’의 상징으로 각인됐지만, 고인은 ‘백구’·‘인형’·‘식구 생각’·‘꽃 피우는 아이’ 등의 동요를 쓰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학전에서도 이어졌다. 그는 학전에서 어린이 청소년 극에 관심을 이어가며 주류 공연계가 관심을 가지지 않는 곳에 마음을 뒀다.
김민기가 이끈 학전은 한국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수많은 스타들을 발굴하고 육성한 인큐베이터였다. 라이브 공연으로 팬들과 만난 고(故) 김광석은 학전이 배출한 최고의 음악인이다. 김광석을 비롯해 윤도현, 나윤선, 정재일 등 음악가들이 학전 출신으로 성장했다. ‘학전 독수리 5형제’로 불린 설경구·김윤석·황정민·장현성·조승우도 배출됐다.
재정난에 시달리면서도 지켜온 학전은 뮤지컬 ‘의형제’(2000), ‘개똥이’(2006)와 어린이극 ‘우리는 친구다’(2004), ‘고추장 떡볶이’(2008) 등을 연출하며 대학로 공연 문화의 산실로 굳건히 버텨왔다. 2024년 3월 15일 학전이 개관 33주년을 맞으며 문을 닫는 학전에서 고인이 연출한 마지막 작품은 ’고추장 떡볶이‘였다.
그는 “좀 더 열심히, 더 많이 뛸 수는 없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학전을 기억해 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꼭 전하고 싶다”며 지난 시간을 정리했다.
유족으로는 배우자 이미영 씨와 슬하 2남이 있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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