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이선균의 묵직함을 타고"…'행복의 나라'가 기록한 역사
[Dispatch=김다은기자]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10.26)과 전두환의 군사쿠데타(12.12). 두 사건 모두 현대사의 핵심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야기.
올초, '서울의 봄'이 이 시대를 그려 1,300만 관객을 울렸다. 모두가 아는 서사 중, 몰랐던 실화를 스크린에 옮겼다. 여기에 픽션을 엮어 격전의 9시간을 선보였다.
이번에는 '행복의 나라'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10.26의 총성에 얽힌 재판 과정을 치밀하게 그려냈다.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이라 평가받는 사건을 다룬다.
자극에만 신경쓰진 않았다. 무엇보다 객관적인 사실이 중요했던 것. 추창민 감독은 "시대를 기록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집요하게 자료를 조사했고, 다큐 같은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 측이 22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제작보고회를 열었다. 추창민 감독, 조정석, 유재명, 전배수, 송영규, 최원영이 자리했다.
◆ "대한민국 최악의 정치 재판을 재조명"
'행복의 나라'는 1979년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룬다. 박정희 대통령이 현직 중앙정보부장 김재규가 쏜 총탄에 암살당한 사태를 배경으로 한다. 이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
추창민 감독의 7년 만에 신작이다. 그는 2012년 '광해, 왕이 된 남자'를 천만영화 반열에 올린 바 있다. 이번엔 대한민국 현대사에 길이 기록된 정치 세계에 뛰어들었다.
추 감독은 "많은 분이 10.26와 12.12 사이 어떤 이야기가 일어났는지 잊고 계시다"며 "그 사이에 벌어진 일들을 찾았고, 흥미로웠다. 재구성하고 싶었다"며 연출 계기를 밝혔다.
실화를 모티브로 한 만큼, 역사 고증에 심혈을 기울였다. "기록에 충실히 하려고 노력했다. 영화 속 장면과 대사들을 실제 법정 장면과 다큐, 그리고 기록에서 가져왔다"고 했다.
특히 실제 인물 박흥주 대령의 이야기를 세상 밖으로 꺼내는 데 집중했다. "지금도 개인 묘지에 묻혀 있다. 영화로 그분을 소개하고 세상에 받던 부당한 대우가 희석되길 바랐다"고 전했다.
영화 제목의 의미도 짚었다. 감독은 "동명의 노래(한대수)도 있지만, 그 때문에 정한 건 아니다. 당시 사람들이 행복의 나라를 바라며 나아가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지었다"고 설명했다.
◆ "이선균에게서 박 대령을 봤다"
'행복의 나라'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상관의 명령에 복종한 박태주(이선균 분)와 그의 변호인 정인후(조정석 분), 대척점에 있는 전상두(유재명 분) 등이다.
먼저 이선균이 정보부장 수행비서관 '박태주'를 연기했다. 상관의 지시로 대통령 암살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을 받는 자다. 박흥주 대령을 모티브로 해 각색된 인물.
추 감독은 "대령에 관해 조사하니, 좌우 진영을 나누지 않고 인간·군인적으로 칭찬이 자자했다"며 "이런 인물이 역사 속에 휘말렸을 때 어떤 행동을 취할지 이선균과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회상했다.
감독은 이선균의 출연 이유를 대신 전했다. 감독은 캐스팅 완성 후 직접 이선균에 출연 이유를 물었다고 했다. 이선균은 '조정석같이 좋은 배우와 연기하며 배우고 싶다'고 답했다.
감독이 감탄한 대답이었다. 추 감독은 "저렇게 좋은 배우도 아직 호기심과 열망이 크다는 걸 알았다"며 "배우는 자세로 연기하는 태도가 나를 놀라게 했다"고 회상했다.
조정석도 덧붙였다. 촬영 중 고인과 가장 많은 시간 호흡했다. "형이 분장을 처음하고 테스트 촬영할 때 눈빛 분위기 기운이 잊히지 않는다. 정말 그 시대에 산 인물처럼 보였다"고 했다.
◆ "조정석X유재명, 뜨거운 대립"
조정석은 변호사 ‘정인후’로 분했다. 박태주를 살리기 위해 재판에 뛰어들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한다. 당시 재판 기록들과 재판에 참여했던 인물을 대변한다.
조정석은 "10.26 사건에 대해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새로운 인물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며 "그분을 변호해 보고 싶은 욕망이 치솟았다"고 출연 이유를 전했다.
정인후는 영화에서 유일하게 창작된 캐릭터다. 조정석은 "유일한 가공의 인물이지만, 재판 기록을 대변한다"며 "제3자의 눈으로 인물들을 지켜볼 수 있게 해준다"고 짚었다.
가장 극심한 심리 변화를 겪기도 한다. 조정석은 "조금씩 잘못 되어가는 재판에 분노해서 심리가 변한다. 그 과정이 재미있었다"면서도 "마음의 변화를 다스리는 게 제일 어렵고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유재명은 합수부장 ‘전상두’의 얼굴을 갈아 끼웠다. 부정 재판을 주도하며 위험한 야욕을 위해 군사반란을 일으키는 거대 권력의 중심이다. 전두환이 모티브다.
유재명은 "많은 작품을 했지만 대본을 읽고 묘했다"며 "실존 인물 연기는 배우들에게도 도전이다. 자료를 찾고 외모와 말투도 분석했만 너무 의존하지 않는 것도 중요했다"고 답했다.
◆ "현장은 행복의 나라였다"
배우들과 제작진은 영화의 백미로 법정 신을 꼽았다. 추 감독은 다큐와 자료에 따라 장면을 완성했다. 보이지 않는 권위와 힘, 그에 당당히 맞서는 이미지를 보여주고자 했다.
추 감독은 "영화는 이야기이지만 시대의 기록이라고 생각했다"며 "당시 변호인단 수와 방청객 위치, 검찰관, 법관 모두 메이킹처럼 맞추려고 했다. 최대한 시대 느낌이 나게 했다"고 자신했다.
배우들 또한 "세트장에 들어가는 골목 어귀부터 가슴이 먹먹해졌다"며 "방청객이 꽉 차 있을 때 무시무시한 힘을 느꼈다. 함께 에너지를 느꼈다"고 말을 더했다.
현장은 어땠을까. 배우들은 작품 분위기와 정반대였다고 입을 모았다. 조정석은 "너무 행복의 나라였다. 감독님이 큰형님 같았다"며 "또 선균 형도 제 장난을 다 받아주셨다"고 했다.
고인과 함께한 시간을 되뇌었다. 조정석은 "선균 형은 촬영장에서 그 누구보다 집념이 대단했다. 함께 연기하는 순간 뜨거웠고. 그 아래에선 따뜻했던 형님이었다. 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목표 관객 수도 힘차게 외쳤다. 조정석은 "천만 넘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마지막으로 배우들은 "이선균의 판타지와 조정석의 힘 있는 대립이 치열하고 집요하게 펼쳐진다"고 요약했다.
영화는 다음 달 14일 개봉한다.
<사진=정영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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