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모두 그에게 빚을 지고 있다"…대중문화예술인들의 스승, 故 김민기

오지원 2024. 7. 22.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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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고(故)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수로 활동하면서는 50년 넘게 불리고 있는 노래 '아침이슬'을 남겼고,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면서는 수많은 후배 대중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

이 노래뿐 아니라 1975년 이후 '꽃 피우는 아이' '상록수' 등 김민기의 노래 대부분이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그는 정치적인 탄압으로 가수 생활을 잠시 멈추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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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 학전

가수 고(故) 김민기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수로 활동하면서는 50년 넘게 불리고 있는 노래 '아침이슬'을 남겼고, 대학로 소극장 학전을 운영하면서는 수많은 후배 대중문화예술인들을 배출했다.

"K 팝이 지금 눈부신 데에는 그 뿌리가 분명 과거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레드 카펫이 있지만, 과거는 가사 하나도 마음대로 쓸 수 없는 진흙탕이었어요. 김민기 형님이 그 진흙탕 위에 엎드렸고, 저희가 그 등을 밟고 오른 거예요."

가수 박학기는 지난해 12월 '학전 어게인(AGAIN) 프로젝트' 기자회견에서 학전 설립자인 故(고) 김민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사진 = 연합뉴스
이는 고 김민기가 1971년 공식 발매한 노래 '아침이슬'의 역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침이슬'은 그가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 작곡한 노래다. 양희은이 이 노래로 1971년 데뷔했고, 같은 해 김민기의 독집 앨범에도 수록됐다.

'아침이슬'은 1975년 공식적인 금지곡으로 지정됐지만, 사람들의 입을 통해 알려지며 대표적인 민중가요로 자리 잡았다. 이후 박정희 정권 유신독재 반대 투쟁, 1987년 민주화운동 등에서 불렸다.

이 노래뿐 아니라 1975년 이후 '꽃 피우는 아이' '상록수' 등 김민기의 노래 대부분이 금지곡으로 지정됐고, 그는 정치적인 탄압으로 가수 생활을 잠시 멈추기도 했다.

사진제공 = 학전
1990년대에는 학전을 설립해 후배 예술인들을 양성하는 데 힘썼다.

"우리는 모두 김민기, 학전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박학기)

학전은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 '의형제' '개똥이' 등 대표 작품을 탄생시킨 한국 뮤지컬 성장의 중심이자, 1990년대 콘서트의 발원지로 평가돼 왔다. 이 작품을 올리는 동안 김민기는 후배 예술인들에게 공평하게 공연비를 나눠주며, 이들이 생계를 잇고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왔다. 황정민, 설경구, 김윤석, 조승우, 장현성, 배해선 등 유명 배우들이 학전을 고향이라고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학기, 동물원, 들국화, 한영애 등 많은 가수들도 학전에서 라이브 공연을 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그 중 고 김광석은 학전의 상징적인 인물로, 김광석의 추모비가 학전 앞에 세워져 있다. 이 추모비는 지난 3월 학전이 폐관하면서도 학전의 정신을 잇는 상징물로서 자리를 지키기로 결정했다.

김민기는 지난 21일 저녁 8시 26분경 지병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고, 발인은 24일 오전에 엄수된다. 장지는 천안공원묘원이다.

YTN 오지원 (bluejiwo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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