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터무니없게 올리더니...중산층 외면한 명품업계 '흔들'
지속적인 가격 인상으로 중산층 고객을 소외시키고 있는 럭셔리 명품기업들이 생각을 재고해야 한다는 외신의 지적이 나왔다.
21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럭셔리 브랜드는 중산층 고객을 되찾아야 한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명품업계가 최상위 고객 유치에 열을 올리느라 정작 비용을 지불하는 주체가 중산층이라는 사실을 망각했다고 지적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에 따르면 전 세계 명품 매출의 절반은 연간 2,000유로(약 302만 원) 미만을 소비하는 약 3억 3,000만 명의 중산층 소비로 이뤄진다.
반면 연간 2만 유로(약 3,025만 원) 이상을 명품에 지출하는 부유층 고객은 전 세계에서 약 250만 명으로, 이들은 전체 명품 매출의 10%를 차지한다.
심지어 이러한 '큰손' 고객은 지난 10년간 주로 아시아권에서 나타났지만, 전 세계를 덮친 경기 둔화가 이들의 명품 소비를 줄이고 있다고 WSJ은 전했다.
특히 중국은 부동산 침체, 실업률 상승 등으로 경기 회복에 시일이 걸릴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다. 여기에 중국 부유층 사이에서까지 사치를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자 명품 수요 둔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미국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신용카드 지출 데이터에 따르면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연 소득 5만 달러(약 6,943만 원) 미만의 미국인들이 가장 큰 폭으로 명품 소비를 줄였다. 연 소득 12만 5,000달러(약 1억 7,356만 원) 이하의 중산층 미국인들도 물가 상승으로 인해 사치품을 구매할 여력 없이 허리띠를 졸라맸다.
지난주 영국 명품 기업 버버리는 분기 매출이 20% 이상 급감하자 최고경영자(CEO) 교체, 배당 중단이라는 강수를 내놨다.
버버리가 공개한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 22% 감소한 4억 5,800만 파운드(약 8,224억 원)를 기록했다. 특히 아시아태평양(-23%) 지역의 부진이 특히 두드러졌으며 중국 -21%, 한국 -26%를 기록했다.
시계 제조업체 스와치 역시 중국 시장에서의 급격한 수요 감소로 큰 타격을 입어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70% 감소했다. 독일의 패션 하우스 휴고 보스도 중국과 영국 중심으로 수요가 약화하면서 올해 매출과 영업 이익 예측치를 낮췄다.
이러한 명품시장의 부진은 명품 기업들이 자초한 측면이 있다고 WSJ은 지적했다. 명품업계의 가격 'N차 인상'으로 중산층 소비자들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명품 가격대가 형성된 게 가장 큰 요인이라는 설명이다.
일례로 버버리가 브랜드 '고급화'를 위해 기존 상품들보다 평균 58% 더 비싼 새 핸드백 라인을 출시한 것을 언급하며, 이러한 전략이 중산층 고객을 소외시킬뿐더러 부유층 고객의 구매를 보장하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했다.
WSJ은 일부 명품기업들이 중산층 고객을 다시 끌어들이기 위해 조용히 가격을 인하하고 있다고 전했다. '시즌 오프' 세일이 아닌 정가 상품의 가격 인하는 그간 명품 업계에서 금기시되어 왔지만 더 이상 이마저도 따질 수 없게 된 것이다.
버버리는 최근 중형 사이즈 나이트백의 가격을 22% 인하하고,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다이렉터인 디자이너가 디자인한 모든 가방의 가격을 평균 5% 내렸다.
프랑스 럭셔리 그룹 케링이 소유한 입생로랑 역시 인기 모델인 루루백의 가격을 인하했다. 지난 1월까지만 해도 2,950달러(약 409만 원)였던 스몰 사이즈 루루백은 현재 2,650달러(약 368만 원)에 판매되고 있다.
WSJ은 주요 명품기업들이 중산층 고객들을 계속 외면하는 상황에서 보다 합리적인 가격대의 브랜드가 치고 나오는 추세를 짚기도 했다. 이미 아시아에서는 서구 명품 브랜드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대의 로컬 브랜드들이 각광받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컨설팅 업체 베인앤컴퍼니의 럭셔리 수석 파트너 클라우디아 다르피지오는 "이러한 로컬 브랜드들은 중산층 고객을 소외시킬 여유가 없다"고 전했다.
디지털뉴스팀 이유나 기자
YTN 이유나 (lyn@yt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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