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부품 결함에 국제 인공태양 'ITER' 지연?…기존 설계부터 오류"
"조립 절차 변경되며 부품 수리 불가피…열 차폐체는 설계부터 오류"
[서울=뉴시스]윤현성 기자 = 전세계 7개국이 함께 추진하는 국제 공동 핵융합로 'ITER(이터)'의 완공이 9년 미뤄졌다. 우리나라가 납품한 부품의 결함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긴 했으나, 납품 전 '설계' 과정에서 발생한 오류인 만큼 우리나라에는 책임 소재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22일 학계에 따르면 한국에서 ITER 사업 참여를 이끌고 있는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ITER 한국사업단의 정기정 단장은 최근 기자들과 만나 ITER 완공 연기 사유 및 한국 납품 부품에서 나타난 결함 등에 대해 설명했다.
ITER 본부는 지난 3일(현지시각) ITER의 완공 시기를 2025년에서 2034년으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ITER 본부 측이 밝힌 사유는 기술적 결함 및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수급 문제 등이었다.
ITER는 한국, 미국, 유럽연합(EU), 러시아, 일본, 중국, 인도 등 7개국이 공동 참여해 구축 중인 핵융합로다. 핵융합은 태양에서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원리를 모방하는 형태로 구현된다. 핵융합 반응을 단순화하면 1억℃ 이상의 초고온에서 수소 원자를 충돌시켜 더 무거운 헬륨으로 바꾸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핵융합 과정에서는 초고온의 '플라스마'가 생성된다. ITER 본부가 언급한 기술적 결함은 자기장을 이용해 이 플라즈마를 진공 상태에 가둬 놓는 '진공 용기'와 핵융합 과정에서 필요한 초고온과 초저온 상태를 차단하기 위한 '열 차폐체'에서 나타났다.
진공 용기는 '토카막(Tokamak)'이라고 불리는 도넛 형태의 부품이다. ITER 한국 사업단은 진공 용기를 9개 섹터로 만들고, 하나의 섹터를 또 4개의 세그먼트로 나누는 형태로 제작했다. 이렇게 조각조각 만들어진 부품들을 ITER 구축 현장에 가서 용접해 도넛 모양의 진공 용기로 제작하는 방식이다.
정 단장에 따르면 이 가장 작은 세그먼트 제작 과정에서 설계와 약간의 오차가 나타났다. 기존 계획에서는 이같은 소규모 오차는 실제 조립 과정에서 보완이 가능했기에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나, 기존 전략 및 조립·설치 절차가 바뀌면서 수리가 필요해졌다. 이에 대해 정 단장은 "절차 자체가 완전히 바뀐 만큼 오차 부품을 수리할 수 밖에 없게 됐다. 이는 ITER 본부와 회원국들 모두 이해한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핵융합 반응은 1억~1억5000만℃에 달하는 초고온에서 수소 원자를 충돌시키는 것이지만, 플라스마를 가둬두기 위한 초전도 도체 및 자석의 영역에서는 반대로 절대영도(약 -273℃) 수준의 극저온 환경이 필요하다. 이 두 환경이 교류하지 않도록 차단하는 열 차폐체가 필요한 이유다.
ITER 한국사업단은 이미 수년 전 열 차폐체를 최종 납품했는데, ITER 본부가 현장 인수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열 차폐체 용접 부위 23만곳 중 약 3개 부위에서 헬륨 유출이 발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용접 과정에서 발생하는 '응력'에 의해 미세한 균열이 나타나고, 이로 인해 부식과 누수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됐다.
ITER 본부와 한국사업단,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 등이 함께 근본적인 원인을 분석한 결과 열 차폐체에 은을 도금할 때 사용된 염산 속 염소가 부식을 일으킨 것으로 진단됐다.
은 도금을 위해서는 염산을 사용해야만 하는데, 도금 이후에도 남아있는 염산이 부식과 균열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핵융합로를 장기간 사용할 경우 부식으로 인한 헬륨 유출이 재발할 수 있는 만큼 전량 수리가 필요하다는 게 ITER 본부의 판단이었다. ITER 본부는 은 도금이 가장 반사율이 좋아 열 차폐에 효과적일 것이라고 보고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은 도금 설계를 결정한 바 있다. 한국이 ITER 기구에 가입한 2003년 전에 이미 해당 설계가 확정된 셈이다.
열 차폐체 전량 수리도 ITER 완공 연기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으나, 근본 원인인 은 도금 방식은 ITER 본부가 최초 설계 시 결정한 만큼 설계대로 납품한 한국 측의 책임은 전혀 없다는 것. 이에 ITER 본부 및 회원국들 또한 한국에 어떠한 기술적, 재무적 책임도 묻지 않기로 했다고 정 단장은 설명했다.
실제로 전량 수리 과정에서 열 차폐체를 새롭게 제작해야 하는데, 이번에도 공개 경쟁 입찰을 거쳐 기존에 납품했던 한국업체가 다시 낙찰받아 부품 납품을 맡게 됐다. 새롭게 제작되는 열 차폐체에는 은 도금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ITER 일정이 연기되면서 약 7조5000억원의 예산이 추가 투입될 수 있는데, 이와 관련한 추가 비용은 7개 회원국 모두가 기존 합의대로 납부하게 될 예정이다. 한국 또한 납품 결함과는 별개로 약 9.09% 가량의 추가 비용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만 새로운 ITER 구축 전략이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닌 만큼 합의 내용이 추후 변경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에 대해 정 단장은 "이번 부품 결함으로 핵융합 장치 개발에 있어 은 도금을 하면 안된다는 큰 교훈을 얻게 된 셈이다. 모든 회원국들이 이런 설계 오류를 통해 각국의 핵융합 장치도 개선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또한 ITER 회원국 간에는 '누구나 실수할 수 있으니 서로 손가락질을 하지 말자'라는 기본 철학이 있다. 한국 납품 부품에 결함이 나타났다 해도 결과적으로 기술적, 재무적 책임 등은 부과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hsyhs@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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