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핵융합실험로 지연, 한국 책임?…전문가들 "한국 과실 없다는 결론 나와"

이채린 기자,박정연 기자 2024. 7. 22.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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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또 다른 기회" 한목소리…사업비 확보는 부담
ITER 장치에서 플라즈마를 진공상태에 가두기 위해 사용되는 진공용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는 국제핵융합실험로(ITER) 완공 일정이 2025년에서 2033년 이후로 늦춰졌다고 보도하면서 일정이 지연된 원인 중 하나로 "한국측이 제조한 부품이 납품된 시점에서 설계와 오차가 있었다"고 전했다. 천문학적인 사업비가 추가로 지출되는 사업 기간 연장과 관련해 한국의 책임을 언급한 것이다.

국내 핵융합 연구 커뮤니티는 이번 ITER 완공 지연에 대해 세간에 사실과 다른 내용이 알려지고 있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완공 시기를 늦춘 원인 중 하나로 작용한 부품 문제는 ITER 기구의 조사를 거친 결과 한국 측의 과실이 없는 것으로 결론내려졌다는 것이다.

ITER 완공일이 계속해서 미뤄지는 것과 관련한 우려의 시선에 대해서도 연구계는 조금 다른 시각이다. 핵융합실험로는 완공되기 전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유의미한 학술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실험로를 만들며 겪는 시행착오 자체가 핵융합 에너지 생성장치 제작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19일 서울 광화문 교보타워에서 열린 '핵융합에너지 기술개발 주요성과 발표 기자스터디'에서 만난 핵융합 연구자들은 ITER 완공 일정이 2025년에서 최근 2033년 이후로 늦춰진 것과 관련해 이같은 의견을 전했다.

● "ITER 부품 문제는 설계 변경·오류 때문, 한국 책임 아냐"

ITER 장치에서 플라즈마를 진공상태에 가두기 위해 사용되는 진공용기.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연구자들은 한국이 납품한 문제의 부품에 대해 "문제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고 말하면서도 "부품 설계에 오류가 있었거나 제작에 들어간 이후 설계가 변경되면서 생긴 문제로 한국 측의 과실이 아닌 것으로 결론이 내려진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정기정 ITER사업단 한국단장에 따르면 한국의 부품 오류는 두 가지 사안으로 나뉜다. 먼저 한국이 납품한 열차폐체의 결함이다.

핵융합에너지를 생성하기 위해선 초고온에서 중수소와 삼중수소(DT)를 반응시켜 만든 플라즈마를 진공상태에 가둬야 한다. 완전한 진공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선 진공용기를 열과 차단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진공용기 외벽을 두르고 있는 열차폐체의 일부가 부식된 것이다. 납품된 진공용기의 현장 인수 검사를 하는 과정에서 헬륨이 누수되면서 이같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분석 결과 진공용기 용접부위의 일부가 부식된 것으로 확인됐다. 열차폐체에는 통상 23만개 정도의 용접 부위가 있는데 이 중 3~4개 정도의 부위에 손상이 일어났다. 원인은 용접을 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열차폐체의 용접에는 염산을 사용하는 은 도금 방식이 적용됐다. 이때 사용된 염산으로 인한 부식이 발생한 것이다. 학계에선 '응력부식분열'이라고 불린다.

정 단장은 "설계할 당시만 해도 은 도금 방식을 적용하는 것이 문제점이 없을 것이라 여겨졌지만 실제 제작 후 보관 과정에서 이 방식의 문제점이 새롭게 발견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러한 방식이 열차폐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낸 것 자체도 하나의 성과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진공용기의 치수에도 문제가 있었다. ITER에 사용되는 도넛 모양의 진공용기는 9개의 섹터로 나뉜 뒤 다시 4개의 분리된 부품(세그먼트)으로 나뉜다. 진공용기를 구성하는 부품들이 워낙 복잡하기 때문에 이같은 분리 제작 과정을 거치게 된다.

ITER 장치에 사용되는 부품을 조립하기 위한 장비를 나타낸 그래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이 과정에서 당초 설계와 비교했을 때 밀리미터(mm) 단위의 오차가 생기게 됐다. 동시에 세그먼트의 조립 전략 또한 변경됐다. 한국 제조팀은 조립 방식까지 바뀐 상황에서 나중에 수리를 통해 오차를 보완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다. 하지만 결국 완성된 진공용기에서 수치의 오차가 충분히 보완되지 못했다.

ITER 기구는 2년에 걸친 조사 끝에 한국의 이러한 판단에 과실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 단장은 "최종적으로 부품 수치가 맞지 않는 부분은 큰 이슈가 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 "ITER 완공 지연은 또 다른 기회"…내년 예산확보는 '숙제'

ITER 장치의 개발 현장을 나타낸 그래픽.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이날 모인 핵융합 전문가들은 또 ITER의 지연이 한국 입장에서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영국 한국핵융합에너지연구원 원장은 "ITER의 완공까지 필요한 다양한 실험에서 한국의 KSTAR가 일종의 테스트베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최근 ITER가 새롭게 도입한 운영기술인 '컨트롤 인공지능(AI)'의 경우 KSTAR를 통해 기술에 대한 검증이 이뤄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ITER가 그간 축적한 데이터를 활용해 새로운 연구 성과를 낼 수 있다고도 말했다. 오 원장은 "핵융합 에너지 생성을 위해 지금까지 ITER가 검증한 제조 공정 등에 관련한 데이터의 가치는 18조 규모로 추산된다"며 "핵융합 실험로를 가상현실에 구현하는 '디지털 트윈' 등을 통해 한국 연구진들이 핵융합 선도국들보다 한 발 빠르게 성과를 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ITER 사업 기간이 연장되면서 늘어난 사업비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다. 국제협력 프로젝트인 ITER는 국제조약에 따라 회원국이 일정 수준의 분담금을 내야 한다. 현재 한국은 총 사업비의 9.09%를 부담하고 있다.

사업이 계속해서 지연됨에 따라 향후 정부가 예산 책정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핵융합 분야 한 연구원은 "내년 예산을 제출할 때 아무래도 눈치가 더 보일 것"이라며 "사업기간이 연장됨에 따라 필요한 총사업비를 현재 ITER 회원국이 논의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의 사업비가 필요하게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디지털 트윈 기술로 가상공간에 구현된 KSTAR.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공

[이채린 기자,박정연 기자 rini113@donga.com,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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