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지지 않는 리더 끝판왕? 점점 커지는 '정몽규 리스크' [추적+]

김다린 기자 2024. 7. 22. 13:4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더스쿠프 심층취재 추적+
행정 난맥상 드러낸 축협
축구계 안팎 “정몽규 아웃”
사퇴론에도 침묵 중인 鄭
축협 4연임 도전설도 나와
광주 붕괴 때도 ‘꼼수 사퇴’
지주사 회장직은 계속 유지
무책임으로 일관하는 리더십

# 정몽규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향한 책임론이 거셉니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을 둘러싼 실체적ㆍ절차적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났으니 축구계 수장으로서 어떻게든 책임을 지라는 겁니다.

# 그런데 일부에선 정 회장이 내년에도 축협 회장에 도전할 거란 얘기가 돕니다. "사방에서 정 회장을 비난하는데 무슨 헛소리인가" 싶지만 돌이켜보면 정 회장이라면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중대재해가 터졌을 때에도 별다른 책임을 지지 않은 채 사실상 '직職'을 유지했으니까요. 이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나가 볼까요?

최근 난맥상을 보인 축협 행정 이슈에서 정몽규 회장의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요새 몇 사람만 모이면 '대한축구협회(축협)'가 입방아에 오릅니다. 그간 숱한 행정 절차에서 난맥상을 노출한 축협이 지난 7일 홍명보 감독을 대표팀의 수장으로 앉히자 여론의 불만이 터졌습니다. 이 역시 불투명한 절차가 문제였습니다. 축협 정관에 따르면 대표팀 감독은 전력강화위원회(전강위)에서 추천해 이사회 승인을 받아 임명합니다.

그런데 지난 6월 정해성 전강위원장이 돌연 사표를 내더니, 이임생 기술본부 총괄이사가 "권한을 물려받았다"며 단독으로 홍 감독을 만나 대표팀 리더로 선임했습니다. 그것도 홍 감독의 집 앞에서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강위 위원으로 활동한 전 국가대표 박주호 선수가 "홍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 체계가 아예 없었다"고 꼬집으면서 대중의 분노는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축협을 둘러싼 여론은 사실 올해 내내 나빴습니다. '절대 임명해선 안 될 감독' 1순위였던 위르겐 클린스만을 대표팀에 앉혔다가 낭패를 봤습니다. 올해 초 막을 내린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선 '4강 탈락'이란 고배를 마셨죠. 그 이후에도 축협은 '외국인 감독을 임명하겠다'며 군불만 지핀 채 수개월을 보내다가 홍 감독을 선임했습니다. 축협이 축구팬들의 '공공의 적'으로 전락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 鄭의 축협 리더십 = 이런 난맥상의 중심엔 정몽규 축협 회장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비극의 발단인 클린스만의 선임에서부터 홍 감독 논란까지 모두 그렇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농담조로 한국 대표팀 감독 자리에 관심을 보였는데, 정몽규 회장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일이 시작됐다(1월 21일 독일 매체 슈피겔 인터뷰)." "정몽규 회장이 (대표팀 감독 선임의) 모든 권한과 책임을 줬다(7월 8일 홍명보 감독 선임 발표 기자회견)."

사실 정 회장은 대표팀 감독 선임 시스템의 기능을 되레 퇴행시켰다는 지적을 받아왔습니다. 2021년 축협은 정관을 개정해 전강위의 감독 선임 권한을 없앴습니다. 역할 또한 '대표팀 관리'에서 '대표팀 운영에 조언ㆍ자문'으로 변경했죠. 전강위의 권한을 대폭 축소한 거였는데, 당시 정 회장은 3연임에 막 성공해 축협 내에서 탄탄한 권력을 쥐고 있었습니다.

대표팀 감독 선임 이후 축협은 여론과 언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사진=뉴시스]

이 때문인지 당시 축협 안팎에선 '정 회장이 입김을 넣기 위해 전강위의 권한을 축소한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돌았죠. 정 회장은 도무지 여론을 읽지 못하는 말로 구설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클린스만 이후 감독을 찾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누구를 뽑아도 여론은 찬성 45% 대 반대 55%로 갈릴 것이다."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도 쉽지 않을 것이다. 누가 하든지 반대하는 쪽이 55%일 확률이 높다." 축협이 대표팀을 이끌 새 리더를 뽑지 못하는 이유를 여론의 과도하게 높은 눈높이로 돌려버린 겁니다.

정 회장이 거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한국 축구 퇴보시키는 정몽규 회장은 즉각 물러나야"란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한국 축구의 레전드 박지성 전북 현대 테크니컬 디렉터도 정 회장의 사퇴를 거론했습니다.

정치권도 가세했습니다. 양문석 의원(더불어민주당)은 SNS에 "언제까지 축구협회의 구태 행정에 축구팬과 현장 지도자가 분노해야 하느냐"며 "정몽규 회장의 사퇴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적었습니다. 국회에선 가을에 열릴 예정인 국정감사에서 "정 회장을 출석시키겠다"고 벼르고 있습니다.

■ 鄭의 경영 리더십 = 그렇다면 정 회장은 책임을 지고 '직職'을 내놓을까요?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는 '본업本業'에서도 그런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계추를 2022년으로 돌려볼까요?

그해 1월 17일 오전, 서울 용산 HDC현대산업개발(현산) 사옥에선 기자회견이 열렸습니다. 마이크를 잡은 건 당시 현산의 수장이던 정 회장이었습니다. "이 시간 이후 현산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

각종 책임론에 휩싸인 정몽규 회장.[사진=뉴시스]

당시 정 회장과 HDC현산은 사면초가에 처해 있었습니다. HDC현산이 시공 중이던 광주 화정동 아파트 단지가 붕괴해 노동자 6명이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불과 7개월 전 광주 학동에서 철거건물 붕괴참사가 터졌는데, 이곳 시공사 역시 HDC현산이었습니다. 직선거리로 10㎞ 안팎의 거리에 있던 두 현장에서 재난급 사고가 발생했으니, 정 회장과 HDC현산에 비난이 쏠리는 건 당연했습니다.

그럼 정 회장은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공언을 지켰을까요? 네, '절반쯤' 물러나긴 했습니다. 하지만 책임을 담보하거나 '완전한 사퇴'는 아니었습니다. 정 회장이 사퇴 의사를 밝힌 건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의 시행을 10여일 앞둔 시점이었습니다.

중대재해처벌법의 골자는 안전ㆍ보건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 피해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형사책임을 묻는 겁니다. 사고 위험을 방치한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해당 사업주는 1년 이상 징역형을 받습니다. 결과적으로 정 회장은 이 법의 시행 전에 사퇴했습니다.

정 회장의 사퇴를 두고 "위법 행위를 벌인 뒤 도망가는 꼼수"란 지적이 잇따랐던 이유입니다. 이용섭 전 광주시장도 "사퇴는 능사가 아니고 책임지는 모습도 아니다"고 비판했던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물러날 게 아니라 응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였죠.

그렇다고 정 회장이 그룹 경영에 아예 손을 뗀 것도 아니었습니다. 정몽규 회장은 그때나 지금이나 HDC그룹 회장직을 유지 중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단이 정작 HDC그룹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는지는 따져봐야 합니다.

그사이 HDC그룹의 기업가치가 훼손됐기 때문이죠. 아파트 붕괴 사고 직전 주당 1만원을 넘어섰던 HDC 주가는 한때 5000원대까지 추락했습니다. 2만원 중반대에서 횡보하던 HDC현산의 주가는 1만원을 밑돈 적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두 회사의 주가(HDC 8730원ㆍHDC현산 2만1300원ㆍ7월 18일 종가 기준)가 소폭 오르긴 했지만, 아직 사고 이전의 주가 수준을 회복하진 못했습니다. 특히 HDC현산은 지난해 국토교통부 시공능력평가 순위에서 10위 밖으로 밀려나는 굴욕을 겪기도 했습니다.

여기서도 저기서도 '책임지지 않는 리더십'을 선보인 정 회장의 '축협 수장 임기'는 내년 1월까지입니다. 축구계 안팎에선 정 회장이 4연임에 도전할 거란 얘기가 돕니다. 원래 체육단체 임원 연임은 최대 3선까지만 가능했는데 대한체육회가 지난 5월 '임원의 연임 제한' 조항을 폐지하면서 정 회장의 4선 도전이 가능해졌습니다.

정 회장이 지난 5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집행위원 선거에서 당선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4선 도전'이 '성공'으로 이어질 확률은 높습니다. 더구나 정 회장이 그룹사 회장직을 맡고 있는 HDC와 주력 계열사 HDC현산은 축협과 공식 파트너 신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계약 기간은 2028년 5월 31일까지입니다. 축협의 '돈줄'을 마련해줬다는 점에서 정 회장의 위상은 더 공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에서 어떤 쓴소리를 내뱉든 책임지지 않는 리더가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경우도 드물 겁니다. 정 회장의 문제일까요? 축협의 문제일까요?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Copyright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