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기를 막은 지구온난화…기후위기 넘어 ‘붕괴’에 이르렀다
“태어나서 이런 더위는 처음입니다. 그런데, 지구 평균기온이 1.5도에 근접하기는커녕 빙하기가 도래할 거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협회를 꾸려 선동하고 있습니다. 1.5도, 2도 하는 것들도 다 꾸민 거라고 공격하고요. 이게 말이 되나요? 제 입장에서 아주 열불이 납니다.” - 제보자 ‘탄광 속의 카나리아’(☞26회에서 이어짐)
‘하루빨리 빙하기가 도래하길 바라는 과학자협회’의 연구실은 북극의 스발바르 제도의 롱이어비엔에 있었습니다. 지구 최북단에 있는 인간의 정주지죠.
연구실 문을 여니, 순록과 북극여우가 냉장고처럼 큰 컴퓨터에 연결된 모니터의 복잡한 그래프를 보면서 기후 모델링을 하고 있었어요. 지구 평균기온으로 보이는 꺾은선 그래프가 아래로 처박히고 있었죠. 엉망진창 행성 조사반의 왓슨 요원이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곧 빙하기도 도래할 거라고 헛소문을 퍼뜨리는 사람들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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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로비스트들의 도둑질 사주
“무슨 소리죠?”
겨울이 되지 않아 하얀 털이 채 자라지 않은 북극여우 박사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어요.
“이건 지구의 기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을 때를 가정해 만든 그래프입니다. 우리가 빙하기가 도래하길 원하는 건 맞습니다. 지구의 기후 패턴상으로 보면, 빙하기가 와야 정석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의미에서 빙하기가 와야 한다는 거지, 지금의 기후변화가 거짓말이라는 뜻은 아니에요.”
홈스 반장이 물었습니다.
“그럼 1.5도가 거짓말이라는 그 전단을 만드신 적이 없다는 겁니까?”
“물론이죠. 몇 달 전, 연구실에 도둑이 들었어요. 우리를 사칭하고 다니는 화석연료 업계의 로비스트들이 사주한 짓이었죠. 그들은 얼마 전에서 빙하 댐을 짓는다고 해서 북극권 동물들에 분란을 일으켰어요.”
북극여우 박사는 꼬리를 말며 말을 이었습니다.
“우리 과학자협회에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북극곰 박사와 북극고래 박사가 있습니다. 북극곰 박사는 줄어드는 바다얼음 때문에 몸이 좋지 않으니, 북극고래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150살 넘은 나이의 북극고래 박사는 기후위기가 본격화하기 전의 감각이 있습니다.”
바다얼음 샘플링 작업을 마친 북극고래가 연구소에 들어왔습니다. 바다의 장수종답게 그는 지구의 오랜 역사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어느 지질시대를 사는지 아시오? ‘신생대 제4기 홀로세’요. 올해 새로운 지질시대로 인류세를 등재한다더니, 그 말은 쏙 들어가 버렸더군. 여하튼, 약 258만년 전에 시작한 신생대 제4기는 플라이스토세와 홀로세로 구성돼 있습니다. 플라이스토세가 쭉 이어지다가, 1만7000년 전에 바로 우리가 사는 홀로세가 시작된 거라오.”
왓슨 요원이 맞장구쳤습니다.
“북미 대륙과 유럽까지 뻗어있던 빙하가 북쪽으로 물러난 시대죠.”
“그렇소. 온난한 기후 덕분에 당신네 인간 문명이 발달했지. 하지만 제4기는 기본적으로 ‘빙하기’라오. 빙하기(ice age)는 추운 빙기(glacial periods)와 따뜻한 간빙기(inter-glacial periods)로 구성되는데, 빙기 사이에 20차례의 간빙기가 있었소. 플라이스토세 후반기 들어선 간빙기는 11만~12만 년에 한 번 나타나서 1만 년 정도 지속하는 패턴을 보이지.”
빙하기가 오지 않는 이유
왓슨 요원이 아는 척을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홀로세는 간빙기 아닙니까? 홀로세가 1만1700년 됐으니, 빙기가 올 시간이 된 거네요?”
“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잘 아는군. 실제로 1970~80년대엔 곧 빙기가 올 거라며 떠드는 과학자들이 많았소. 하지만 오지 않았지.”
“왜 오지 않았죠?”
홈스 반장이 물었습니다.
“인간이 일으킨 지구온난화 때문이라오. 인간이 빙기를 늦춘 거지. 인간들 참 대단하지. 그 많은 화석연료를 써서 기후 패턴까지 바꾸다니 말이오. 물론 갑자기 빙기가 들이닥칠 수 있오. 그린란드 빙하가 너무 많이 녹아 대량의 민물이 유입되면서, 대서양의 열 염분 순환 엔진이 꺼질 가능성이 있지.”
홈스와 왓슨은 연구실에서 나왔습니다. 북위 78도의 북극인데도 바람이 따뜻했습니다. 홈스 반장이 말했습니다.
“하루빨리 빙하기가 도래하길 바라는 과학자들은 정말 그렇게 되길 원하는 북극 동물들의 모임이었군. 북극 생태계는 기후변화에 훨씬 취약하니까.”
정말로 그랬습니다. 스발바르 제도의 여름 평균기온은 3~7도인데, 2020년 7월에 주도인 롱이어비엔이 23도까지 올라갔습니다. 최근 40년(1971~2017년)의 연평균 기온은 4도 올랐고, 겨울 기온은 7.3도나 올랐습니다. 같은 기간 세계 연평균 기온은 0.87도 올랐는데 말이죠.
현재의 지구온난화는 지질학적 대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홀로세 기간 이산화탄소 농도는 줄곧 260~280ppm을 유지했습니다. 다른 간빙기 때 패턴을 보면, 이산화탄소 농도는 250ppm 밑으로 떨어져야 했죠. 하지만 20세기 이후 이산화탄소 농도는 되레 폭증해 마지노선이라 불리는 400ppm을 2015년에 뚫었고, 2022년에는 420ppm마저 넘어섰습니다. 이 정도의 ‘온실가스 폭증’은 모든 지질시대를 거쳐 볼 수 없었죠.
지금 우리는 지질학적 대사건의 한가운데를 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의 기후연구소 ‘코페르니쿠스기후변화서비스’(CCCS)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23년 6월 이후, 13개월 연속으로 월 평균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6월, 7월, 8월… 하는 식으로 각 한 달의 평균기온이 가장 뜨거웠던 거죠.
그래서 어떤 이들은 기후변화 대신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라는 말을 쓰기도 합니다. 안토니오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도 2023년 여름 “세계가 기후붕괴의 징후를 목격하고 있다”는 말을 했고요.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빨갛게 익어가는 지구
기후행동추적(CAT, Climate Action Tracker) 홈페이지에 가면, 미래의 온도 변화를 보여줍니다. 현재의 정책에서 큰 변화가 없으면 2100년에는 2.7도가 오릅니다. 세계 각국이 내건 2030년 탄소 감축 달성 목표와 2050년 이후의 달성 목표를 지킬 경우 2.1도가 높아지고요. 국제사회에 약속하지 않은 것보다 강화된 조처를 해야 1.8도가 높아집니다. 결국, 1.8도가 최선인 거죠.
왓슨이 문득 생각난 듯 물었습니다.
“1도, 2도 오르는 것, 어떻게 보면 별 거 아니지 않나요? 봄, 가을에 1~2도 차이는 크게 느껴지지 않잖아요.”
홈스 반장이 대답했습니다.
“우리 중 일 년 내내 지구 평균기온에서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평균 1도 상승에는 잦은 폭염이 들어있는 거야. 게다가 기온은 모든 곳에서 같은 속도로 상승하지 않지.”
이제 ‘1.5도의 시대’에 들어섰다는 걸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일부 과학자들은 1.5도 상승을 냉정하게 인정하고, 새로운 목표를 설정해 재출발하자고 주장합니다. 비현실적인 목표에 너무 오랫동안 집착하면 패배주의에 빠진다는 거예요.
반면, 1.5도는 일종의 도덕적 목표로 기능하고 있고, 이를 포기하는 순간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며 이를 고수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1.5도 목표가 있었기에, 이 정도라도 유지했다는 거죠.
연구실에서 나와 공항을 향해 걷고 있는데, 북극고래 박사가 저 멀리 바다에서 불렀습니다.
“어이, 친구들! 온실가스 나오니 비행기 타고 가지 말게. 내가 육지까지 태워다 주지.”
태양에 지구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여름의 북극은 북극고래도 땀을 뻘뻘 흘릴 정도였습니다.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남종영 환경저널리스트·기후변화와동물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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