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 군인 80명 수송… 한국軍이 선택한 ‘C-390′ 타보니
국내 언론 중 처음 시험 비행 탑승
지난 21일(현지 시각) 세계 3대 에어쇼가 열리는 영국 판버러 공항. 브라질 항공기 제조업체 엠브라에르가 만든 최신 수송기 ‘C-390 밀레니엄’(이하 C-390)이 이륙 준비를 마치고 활주로를 달렸다. 수송기 엔진 소리가 커지면서 기체가 땅을 박차고 날아오르자, 수송기 벽면에 등을 대고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몸이 한쪽으로 크게 쏠렸다. 여객기가 이륙할 땐 느껴보지 못한 쏠림이었다.
기체는 곧바로 수평을 잡았다. 여객기와 비교하면 탑승객이 느끼는 진동과 엔진 소음이 컸지만, 기내에서 이동하거나 대화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마르치오 몬테이로 엠브라에르 CMO(Chief Marketing Officer·최고 마케팅 책임자)는 “일반적으로 수송기는 기체 무게를 덜기 위해 내부 마감을 최소화하기 때문에 민간 항공기보다 진동이나 내부 소음이 심하다”며 “C-390은 기체 무게를 크게 늘리지 않으면서 진동과 소음을 줄일 수 있는 최적의 균형을 찾아 디자인했다”고 말했다.
◇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전쟁에 투입돼 민간인 수송
우리나라 공군은 전·평시 수송과 구조 등 평화유지활동을 위해 2026년까지 총 7100억원을 투입해 C-390 3대를 도입하기로 했다. C-390 비행에 국내 언론이 탑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 C-390은 1시간 동안 최고 1만피트(약 3㎞) 상공을 시험 비행했는데, 이례적으로 조종석까지 모두 공개했다.
길이 35m, 높이 11.8m의 수송기 내부에는 캠핑이나 낚시할 때 쓰는 간이 의자와 같은 좌석이 설치돼 있다. C-390은 무장한 군인을 80명까지 수송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환자를 이송할 때를 대비한 간이침대도 있다.
수송기 후미 문을 열어 화물을 실을 땐 좌석을 걷어내 공간을 확보한다. 바닥 판을 뒤집으면 화물을 쉽게 옮길 수 있는 쇠 롤러가 나온다.
우리 군은 C-390을 병력이나 화물 수송, 정밀 화물 투하, 공수 지원, 의무 수송 등 다양한 임무에 활용할 계획이다. C-390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2022년, 하마스와 이스라엘이 전쟁을 벌인 지난해 각각 현지에 투입돼 브라질 국민을 대피시켰다. 브라질 공군은 화재 진압과 홍수 피해 지역에 보급품을 공급할 때도 C-390을 투입했다. 코로나 기간에는 구급차와 의료 장비를 운송했다.
지난해 방위사업청이 미국 록히드마틴(C-130J)과 에어버스(A400M) 대신 엠브라에르를 수송기 공급 업체로 선정하자 업계에서는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현재 우리 군은 에어버스 CN-235와 록히드마틴 C-130 수송기를 운영하고 있다. 엠브라에르 수송기를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에선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1969년 설립된 엠브라에르는 보잉, 에어버스, 록히드마틴과 함께 세계 주요 항공기 제작사로 꼽힌다. 최신 기종인 C-390은 터보팬 엔진이 적용된 제트 수송기로, 프로펠러 엔진을 장착한 모델보다 항속거리가 길고 탑재 능력이 강화됐다.
C-390은 최대 26톤(t)까지 적재(중형 수송기는 20t 안팎)할 수 있고, 외부 연료 탱크 시 최대 항속거리는 8500㎞에 이른다. 운항 속도 역시 경쟁 모델보다 빠른 870㎞/h다. 수송기는 보통 긴급 상황에 투입되기 때문에 빠른 속도와 긴 항속거리, 많은 적재 능력이 중요한 경쟁력이다.
◇ 우리 기업이 부품 공급… “한국과 추가 협력 기대”
C-390을 운용하는 나라는 브라질을 비롯해 포르투갈, 헝가리,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체코 등이다. 우리나라는 아시아 국가로는 처음 C-390을 도입해 엠브라에르 C-390의 7번째 고객이 됐다.
다소 실험적으로 평가되는 이번 결정에는 엠브라에르가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엠브라에르는 수송기를 제작할 때 국내 기업과 컨소시엄을 꾸렸고, 여기에 켄코아에어로스페이스, 이엠코리아(EMK), 아스트(ASTK) 등이 참여했다. 새로운 수송기 도입을 국내 기업의 새로운 고객사 확보 기회로 활용한 셈이다.
엠브라에르도 이번 계약을 상징적인 수주로 평가한다. 몬테이로 CMO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태국 등 아시아 국가의 수송기 교체 수요가 예상된다”며 “이번 한국군과 협력을 시작으로 아시아 시장에서 영역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엠브라에르는 군 수송기뿐 아니라 여객기도 생산해 세계 80개 항공사를 고객사로 두고 있다. 프란시스코 고메스 네토(Francisco Gomes Neto) 엠브라에르 CEO(최고경영자)는 “한국의 항공·우주·방위 산업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앞으로도 한국과 추가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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