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폭망'에 시작된 대혼돈…25일만에 바이든 후보 사퇴로 마침표

김현 특파원 2024. 7. 22.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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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사퇴]지난달 27일 TV토론 참패 이후 당내 후보사퇴 요구 봇물
대선 완주 거듭 천명했지만, 대선승리·고령 우려 불식 못 시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6일 델라웨어주 윌밍턴의 퀸 시어터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21일 (현지시간) 민주당 대선 후보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발표하며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후보 승계를 지지한다고 밝히고 있다. 2024.07.22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워싱턴=뉴스1) 김현 특파원 = 재선 도전에 나섰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1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민주당 대선후보직을 사퇴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뚜렷한 경쟁자 없이 진행된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압도적인 격차로 사실상 대선후보로 내정돼 재선 도전에 청신호를 켰다.

비슷한 시기 치러진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압승을 거두면서 두 사람은 오는 11월 대선에서 '리턴 매치' 구도를 형성했다.

양자대결 구도가 굳어지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각 당이 전당대회를 열어 대선후보를 공식 지명하기 전에 TV토론을 하자고 줄기차게 제안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토론에 소극적이었던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5월 중순께 입장 선회 조짐을 보였고, 결국 양측은 지난 6월27일 첫 TV토론 개최에 합의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의 선택은 최악의 자충수가 됐다.

지난달 27일 열린 TV토론에서 81세의 바이든 대통령은 모두가 우려했던 노쇠한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그간 수면 아래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던 '고령 리스크'를 수면 밖으로 터져나오게 하는 계기가 됐다.

TV토론이 끝나기도 전에 민주당 안팎에서 후보 교체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고, 토론 직후엔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 등 진보성향 언론들이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를 공식 촉구했다.

하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대선 캠프 관계자들은 후보 교체론에 즉각 선을 그었다.

토론이 있었던 주말 질 바이든 여사를 비롯해 바이든 대통령의 가족들은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모여 관련 논의를 한 뒤 대선 레이스를 계속 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후보 교체를 원하는 측에선 바이든 대통령에게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 질 바이든 여사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바이든 여사는 'Vote(투표하라)'라는 문구가 새겨진 원피스를 입고 행사에 참여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완주에 힘을 실었다.

바이든 대통령과 가족, 측근들의 노력에도 후보 교체론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TV토론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격차가 더 벌어졌다는 수치들이 쏟아졌고, 민주당 내부는 더 흔들렸다.

급기야 지난 2일 로이드 도겟 하원의원을 시작으로 민주당 연방 상·하원 의원들이 잇따라 후보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면서 '반기'를 들었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은 언론 인터뷰와 유세를 통해 TV토론의 저조한 성적표를 인정하면서도 지난 3년여 간의 성과를 봐달라며 후보사퇴론을 불식시키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언론 인터뷰를 할 때마다 말실수하는 게 오히려 부각되고, 라디오 인터뷰 질문을 사전에 조율한 사실조차 알려지면서 후보교체론의 불길은 꺼지지 않고 더 타올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11일 (현지시간) 워싱턴의 월터 E . 워싱턴 컨벤션 센터에서 나토 정상회의 페막 기자회견을 갖고 "난 내가 대통령으로 출마하기에 최적임자라고 생각한다. 난 트럼프를 한번 이겼고 다시 이길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2024.07.12 ⓒ AFP=뉴스1 ⓒ News1 우동명 기자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8일 민주당 의원들에게 서한을 보내 후보 교체 요구를 사실상 해당 행위로 규정하는 등 강경 대응에 나서면서 정면 돌파를 시도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정면 돌파를 시도하자 당내 반란이 잠시 주춤하는 분위기가 됐다. 당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9~11일) 정상회의와 마지막 날이었던 11일 바이든 대통령이 8개월 만에 단독 기자회견을 예정하면서 일단 지켜보자는 여론이 형성됐다.

그러나 그러한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그의 '오랜 우군'이자 당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낸시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불씨를 던졌다.

펠로시 전 의장은 바이든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10일 방송 인터뷰에서 이미 바이든 대통령이 강력한 경고장을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출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전적으로 대통령에게 달린 일"이라고 결단을 요구하는 듯한 발언을 하면서 논란을 재점화했다.

같은 날 바이든 대통령의 선거자금 모금에 앞장서 온 영화배우 조지 클루니도 NYT 기고에서 "우리는 하원도 이기지 못하고, 상원도 뺏길 것"이라며 후보 사퇴를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11일 59분간 진행한 나토 정상회의 관련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이 트럼프 전 대통령을 이길 최적임자라며 대선 캠프에서 '이길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 않는 한 사퇴를 고려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이 단독기자회견 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라고 소개한 말실수에 언론은 더 주목했다.

이에 민주당 안팎의 사퇴 요구는 갈수록 더 세졌다. 바이든 대통령 측근들 사이에선 후보 사퇴론의 배후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있다고 본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내부 갈등은 더 커졌다.

여기에 하킴 제프리스 하원 원내대표가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당내 우려를 직접 전달했고, 펠로시 전 하원의장이 오바마 전 대통령과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에 심각한 우려를 공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승리 가능성이 훨씬 줄어들었다고 측근들에게 말했다는 보도도 흘러나왔다.

이에 더해 민주당의 '큰손' 역할을 했던 기부자들이 후보 교체를 요구하며 후원을 보류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자금줄마저 옥좼다.

지난 13일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 충격을 줬던 트럼프 전 대통령 총격 사건은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후보 사퇴 요구를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게 하면서 바이든 대통령의 숨통을 열어주는 듯했다.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총격 직후 주먹을 불끈 쥔 채 "파이트(Fight·싸우자)"를 외치는 장면은 바이든 대통령의 노쇠한 모습을 더욱 대비시켰다. 총격 사건을 계기로 공화당이 똘똘 뭉치면서 민주당이 대선은 물론 상·하원 선거에서 참패할 것이라는 우려는 더욱 커졌다.

이에 물밑에선 바이든 대통령을 설득하기 위한 움직임이 지속됐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도 총격이 일어난 주말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연임 도전을 끝내라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보도됐다.

총격 사건을 겪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귀에 거즈를 붙인 채 강한 이미지를 앞세워 전당대회에서 화려한 대관식을 치르는 사이, 바이든 대통령은 설상가상으로 지난 17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걸려 트럼프 전 대통령 총격 사건 이후 재개한 유세를 하루 만에 중단하고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언론과 정치권에선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보도가 쏟아졌지만, 바이든 대통령과 대선 캠프는 전날까지만 해도 내주 선거운동 재개와 대선 완주 의지만 재확인했다.

그러나 차가워진 당심과 민심을 되돌리긴 어렵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바이든 대통령은 전날 밤 측근들을 불러 후보직 사퇴를 위한 성명 초안을 작성했고, 결국 이날 전격적인 사퇴 성명을 발표했다.

이로써 지난달 27일 TV토론을 계기로 시작된 바이든 대통령과 민주당의 대혼돈 시간은 바이든 대통령의 후보직 사퇴로 25일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현직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한 것은 1968년 린든 존슨 전 대통령 이후 56년 만이었다.

결국 자신이 지난 2020년 대선 당시 '더 젊은 세대의 민주당 지도자들과 가교 역할을 할 후보'라고 내세웠던대로 그의 정치적 여정을 마무리하게 될 전망이다.

gayunlov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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